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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Mar 14. 2016

11.


여전히 뜨거운 하루였다, 같은 건 생략하도록 하자.

빠뚜남에 다녀오긴 했는데 이젠 어디 어디를 다녀왔다고 쓰는 건 의미 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밤의 방콕은 아름답다.


맥주 한 잔 일 줄 알았던 밤나들이는 자연스럽게 펍으로 이어졌다.

기분이 좋았다. 평소보다 반 박자쯤 빨라진 어투와 두 톤쯤 높아진 목소리로 재잘재잘, 나는 말이 많았던 것 같다. J와 나는 그 무렵 SNS 친구가 되었는데 쏟아내다시피 써 놓은 글이 민망해 읽지 말 것을 당부했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는 이유를 자기만족이라 하지만 실은 말하고 싶고 이해받고 싶은 거 아냐?



말문이 막혔다. 맞다. 이해받고 싶었다.

그러나 어두운 내면의 이야기들, 미숙하고 어리석을 것이 분명한 이야기를 보이고 싶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었다.


나는 알아주길 바라는 걸까? 모르길 바라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해주길 바라는 걸까?










돌아오는 길, 밤하늘에는 똑 떨어진 반달이 고개를 괴고 있었다.


J는 글 쓰는데 도움이 될 거라며 하이쿠(俳句:일본 고유의 단시형)를 권했다.

먼저 해보라 했더니 하늘을 바라보며


음- 저 달은 나머지 반쪽을 기다리는 것 같아.

구름이 지나가고 유혹해도 흔들리지 않고 나머지 반을 기다리는 거지.


해왔다.



세상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때였던 것 같다.



친구와 닮은 구석이 많다고 생각했던 그는 단 한 가지가 아주 달랐다.

그는 사람을 사랑했고 삶을 사랑했고 세계를 사랑했다.


뭐랄까-,

아름다웠다.













어두운 길을 걸어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마구 따뜻하고 둥글어 소리 없이 미소 짓게 만드는 그런 말들이었다. 포근하고 따뜻해서 주체 못 하고 빠져들 것 같았다. 하루 종일이라도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싶었다. 욕심이 났다.



훌훌 털듯 말하는 이야기가,

수많은 시간과 다채로운 경험과 이런저런 삶의 굴곡이


그냥 다, 달빛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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