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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Sep 04. 2015

이사

뿌리내리지 못한 자의 불안


이사를 했다.



지난 10년 동안 벌써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그리고 여덟 번 째.


이 만큼 다녔으면 짐을 싸는 것도, 또 푸는 것도 익숙해 질 법 한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우선 풀어놓았던 살림살이를 다시 꾸려내는  것보다도, 잠시나마 하루의 끝에 나를 '받아던' 장소를 떠난 다는 것이 참 허다. 몇 개의 상자로 내 삶의 흔적이 정리되고, 익숙해졌던 '나'의 공간이 다시 '누군가'의 공간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다. 잘 다듬어진 곡처럼 유연하게 흘러가던 생의 리듬이 순식간에 토막 나 트럭 뒤에 실리는 것에는 좀처럼 태연해질 수가 없어 매번 텅 빈 방을 보면 서글펐다.


서면 번화가 근처, 기묘한 직사각형의 원룸. 8개월 간의 기억도 이 작은 방과 함께 엮일 것이다. 슬펐거나, 기뻤거나, 우스웠던 이 공간에서의 추억은 모두 혼자였기에 함께 기억할 이도 없이 희미해져 갈 것이다.


창 밖으로 멀어져가던 뒷 모습도, 까만 풍경도 이젠 기억 속에서만  되풀이되겠지.







이번 이사는 다른 때보다도 더 심난했다. 계약이 끝나서 지역 내의 어딘가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짐을 싸서 <엄마 집>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한동안 한국을 벗어나 있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기는 했지만, 계획이 자주 바뀌고 있는 데다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가 까탈스러우니 저질러 놓고도 '이게 맞나' 생각이 많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은 엉망이었다. 그간 버리듯 던져두었던 유행 지난 옷가지, 갖가지 이유로 사들였던 온갖 소모품,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들이 엉망으로 엉겨있었다.



지난  며칠은 계속 뭔가를  정리해야 했다. 내가 가져온  짐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서랍 속에, 창고 안에, 집 구석구석에 박혀 있던 온갖 잡동사니들까지 꺼내어 버리거나 다시 집어넣거나 새로운 쓸모를 찾아주거나 했다. 온갖 추억들에 둘러싸여 버리고 또 버리면서 '내가 이렇게 많은 것들을 사들였구나' 생각했다. 결국은 이렇게 버려질걸. 수백 권의 책을 새로 꽂으며 혀를 내둘러놓고, 다음날  홀로 남겨진 집에서 허전한 오후를 보내다 신간 소설 몇 권을 주문했다. 이젠 좀 그만 사야겠다고 애써 다짐하지 않는 것은 허전한 마음을 무엇으로라도 채워야 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제자리를 찾아가는데 머리   러워 지기만 했. 홀로 살던 집은 제 아무리 좁았어도 모두 나의 통제 아래 있었다. 컵 하나, 책 한 권 내 의도를 벗어난 것이 없었다. 나의 질서 안에서 홀로 평화로웠다.


그래서일까. 참으로 오랜만에 누군가와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려는 것이 끝내 부담스러웠다.






3         .



그러니까 요즘 나는 집에서, 나는 너무 나약하니까 이제는 누군가에게 기대지 말자는 다짐을 주로 하고 있다. 지독한 혼란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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