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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Apr 16. 2016

내 안의 분노를 삼키는 법

트럼보 (2015)


영화 <트럼보>를 보았다.

 

1950년대 할리우드 전성기, 공산당원이라는 이유 하나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삶의 터전인 영화계에서 배척당해야 했던 작가들의 설움과 그 속에서도 스러지지 않은 신념과 의지, 그리고 와중에도 무거운 가장의 책임이 고스란하다. 메인플롯과 서브플롯이 모두 묵직한 이야기를 담고 러닝타임 내내 빡빡하게 이어졌기 때문에 주의집중 결핍지병처럼 안고 사는 나에게는 강한 의지를 필요로 하는 영화였다. 이 놀라운 작가의 일대기를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긴장을 유지했는데 그것이 과도했는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엔 어쩔 수 없이 너덜너덜 해졌다. 그러한 노력에도 두어 번쯤 엉뚱한 생각 빠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참지 못하고 빠져버린 엉뚱한 생각은 '내 안의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 법'에 관한 거였다.


영화에서 할리우드 10(일종의 블랙리스트)을 핍박하는 데 앞장서는 건 헤다 호퍼(Helen Mirren)다. 화려한 모자를 쓴 그녀는 속이 부글부글 끓을 정도로 얄밉게 사사건건 간섭하고 사람들을 협박·매수하며 비탄에 빠진 사람들의 안타까운 시도를 잔인하게 짓이긴다. 그 놀라운 집념은 민주주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투쟁보다는 전쟁에 아들을 내보낸 어머니로서의 적개심에 더 가까워 보였는데, 어쨌든 그녀는 무시무시한 모성애로 반공주의에 앞장서 트럼보와 이념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탄압하고 매도하는데 열과 성을 기울인다.


바로 거기서 나는 인간 트럼보의 납득하기 어려운 일면을 발견했다. 헤다 호퍼는 단순히 반대라기보다도 증오에 가까운 감정으로 그를 대한다. 모든 노력을 수포로 만들고 재기를 막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트럼보는 그런 그녀를 향해 한 마디 비난도, 원망도 하지 않았다. 불쾌함을 내비친 적도 없다. 오히려 침을 뱉는 호퍼에게 격식을 갖추고 씁쓸하게나마 미까지 지어보인다. 그것은 내 입장에서는 어떤 차원을 넘어선 행동으로 비쳤다.


여태 나는 나름대로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대게 어렵지 않게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반되는 의견이 나의 삶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호퍼와 같은 집요함으로 누군가 나를 찍어 누르려 한다면 역시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 것이다. 도대체 어떤 마음을 가지면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데 열정적인 인간을 온화한 태도로 대할 수 있는 걸까? 그가 너무도 태연했으므로 오히려 내가 속이 탔다. 한 순간에 삶을 고꾸라뜨린 불행의 명백한 원인제공자, 너무도 손쉬운 증오의 대상이 존재하는 데도 그는 의연했다. 그의 분노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영화는 트럼보가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굳센 인간이었음을 보여줄 뿐, 담배와 술· 각성제를 털어 넣으며 밤낮없이 생계를 위해 글을 쓰던 때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단서조차 남기지 않는다. 망망한 마음으로 수없이 그의 입장에 서보았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다.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그를 닮고 싶었다. 나를 이그러지게 하는 뜨겁고 해로운 감정으로부터, 분노와 시기와 질투로부터 그처럼 초연하고 싶었다. 꼬박 일주일을 매달렸지만 이해의 발 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언젠가 그 홧홧한 감정이 나를 덮치면, 말없이 돌아서던 트럼보의 뒷모습이 떠오를 것 같다. 두 번의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빛나는 재능보다도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그의 사람됨이 더욱 선명하게 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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