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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Apr 18. 2016

피해자뿐인 광기의 역사

블러드 다이아몬드 (Blood Diamond, 2006)


내가 즐겨본 Leo의 영화는 <타이타닉>, <캐치 미 이프 유 캔>  류였다.


그래서 2010년 인셉션을 봤을 땐 적잖이 당황했다. 그리고 최근에 본 영화가 <레버넌트>, <셔터 아일랜드>, 그리고 <블러드 다이아몬드>. 이젠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취향을 조금 알 것 같다.






영화는 시에라리온의 내전을 배경으로 한다. 정부군과 반군(RUF)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며 지속되는 전쟁은 정치적 이념뿐 아니라 다이아몬드의 이권을 둘러싼 서방국가들과도 복잡한 관계를 보인다. 국내외 인사들의 미묘한 이해관계와 함께 보도 매체의 모순과 한계에 관해서도 이 영화를 조명할 수 있겠지만 나는 강제로 전쟁에 투입된 어린 소년병과 전쟁이라는 잔혹 행위 자체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해보고 싶다.




Prologue


시에라리온의 한 마을이 반군에 의해 습격당한다. 솔로몬 반디(Djimon Hounsou)는 가까스로 가족들을 탈출시키는 데 성공하지만 반군의 포로가 되어 다이아몬드 광맥으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거대한 핑크 다이아를 발견하게 되고 정부군의 습격을 틈타 다이아를 숨기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를 알게 된 반군 지도자 메드(Ntare Mwine)와 대니 아처(Leonardo Dicaprio)에 의해 추격당한다.






메드는 다이아를 찾기 위해 솔로몬의 아들, 디아 반디를 찾아 반군에 영입시킨다. 반군이 된 소년은 곧 첫 번째 살인을 마주하게 된다. 반군은 아이들의 눈을 가리고 포로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게 한다. 그렇게 축구와 학교를 사랑하던 아이는 반군의 소년 대장이 되었고 나중에는 아빠를 향해 총구를 겨누기에 이른다.


파렴치한 어른들에 의해 이루어진 첫 번째 살인 이후에 아이들은 사람을 죽였다는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합리화할 수밖에 없다. 어린 생을 관통한 죄책감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 그들은 더 적극적으로 폭력에 가담하고, 쉽게 선동되며, 살인을 정당화한다.


영화는 허구였지만 초점 잃은 아이의 눈은 피할 수 없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시에라리온의 현실은 참혹했다. 언제 무엇이 목숨을 위협할지 알 수 없는 상태라면 과연 살아남는 것이 능사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이들이 정부군이 되느냐 반군이 되느냐는 오로지 처음 발견되는 것이 어느 쪽인 가에 달려있다. 이념도 목적도 없는 가여운 아이들은 그렇게 편 갈라져 어른들의 전쟁 소모품이 된다. 가장 소름 끼치는 것은 아이들이 일단 그룹에 속한 뒤에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전쟁에 필사적으로 참여한다는 거다. 집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 가족마저 잃은 아이들은 굶주림과 죽음을 피해 어딘가에 소속되고자 하는 절박한 생존의 본능을 따라 군에 충성을 맹세한다. 자신을 사지에 몰아넣으며 거침없이 총을 쏜다. 노란 책가방을 등에 메고 총을 겨누는 소년병의 모습은 실로 기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양 측의 지도자는 똑같은 맥락의 연설을 하곤 한다.


'그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악마입니다. 그들이 우리의 가족과 친구를 죽이고 나라를 망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라를 지키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 중입니다. 우리는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쓰레기와는 다릅니다. 우리는 조국을 위합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정의라 규정하고 반대쪽을 악이라 몰아붙이며 자신의 논리에 억지 타당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에는 타당성이 없다. 서로를 증오하는 양측의 군인은 악마가 아니라 똑같은 인간이다. 어쩌면 전쟁이라는 맹목적인 폭력 행위에는 인간을 변형시키고 이성을 마비시키는 힘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살인에 대한 변명 같은 선동은 아이들을 세뇌시키고 증오를 부추긴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서로를 향한 적개심을 불태우고 결의를 다진다. 두려움 속에서 분노는 더욱 강렬해진다. 마리화나와 코카인으로 마비된 머리 속에 증오로 번진 폭력성이 활개를 친다. 이런 종류의 광기에 익숙해질수록 그들은 잔인한 것에 환호하며 폭력을 오락거리로 소비하기 시작한다. 람보와 코만도 같은 전쟁영화가 아이들의 새로운 목표가 된다. 누가 더 빨리, 잔인하게 죽이는가는 놀이가 된다. 서로의 가족과 동료를 죽이면서 쌓은 분노와 증오는 억누를 수 없는 복수심을 일으켜내고 결국 전쟁은 끊어낼 수 없는 복수의 굴레가 되고 만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애초의 명분은 부지불식간에 퇴색한다. 그리고 전쟁이 그대로의 목적이 된다. 마치 눈 앞의 현실 말고 다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오직 죽지 않기 위해 죽이는 것만이 유일한 삶이 되는 것이다. 그 삶은 그저 아이에 불과한 소년병들이 고스란히 감내해야 할 삶이기도 하다.







It's shit shit world



매디 보웬(Jennifer Connelly)은 말한다. 이것 외에 다른 말로 이 부조리한 세계를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종류의 대량 학살과 유혈 사태는 늘 욕지기가 인다. 이유 없이 팔이 잘리고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폭력에 미쳐가는 군인들을 보면서, 생기를 잃은 눈동자를 마주하면서 수도 없이 메스꺼움을 느꼈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왜 전쟁에 휘말려야 했을까. 인간사에 끊인 적이 없는 것이 전쟁이라지만 흘깃 보기에도 외부의 개입이 분명했다. 서로를 죽고 죽이는 것에 의문하던 솔로몬 마저 자식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괴성과 함께 살인하고 만다. 모든 전쟁에는 어떤 굳은 의지를 가진 사람일지라도 결국에는 포기하게 만드는 거대한 부조리가 있다. 서로 죽이고 죽였지만 전선에 있었던 사람 중에 피해자가 아닌 사람은 없다. 결국엔 모두가 폭력과 잔인한 전쟁의 피해자다.















영화가 끝났다. 그러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내전과 분쟁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어딘가에서 폭탄 테러나 무자비한 폭격이 일어나 마을 하나가 사라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모든 종류의 폭력과 학살을 비롯한 유혈사태에 반대한다. 그것이 영원히 가능하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T.I.A (This Is Africa)라는 말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한 가지 염려되는 것은 당신이 스크린 뒤의 관객으로서 전쟁의 참상을 방관한 것은 아닌가 하는거다. 우리는 지독한 현실의 관중이 아니라 거대한 비참에 대한 한 명의 책임자가 되어야 한다. 전쟁은 아프가니스탄이나 팔레스타인, 혹은 저 먼 아프리카의 나라들에만 국한되는 사건이 아니다. 스포츠 뉴스와 일기 예보 사이에서 파괴와 살육의 현장을 보면서 사람들은 전쟁을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 나와는 관련 없는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착각하지 말라. 전쟁을 자신과는 먼 타국의 현실로 떨어뜨려놓는 일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전쟁의 위험은 어디에나 있으며 지금도,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그러므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타인으로 구분하는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모두는 같은 시대를 사는 똑같은 인간이며 그들의 고통이 (블러드 다이아몬드와 같이) 우리의 욕심과 맞닿아 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모두가 가해자고 또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그 책임은 함께 짊어져야 할 몫이 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전쟁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고루한 말로 그들의 고통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2003년 아프리카 분쟁지역에서 생산되는 다이아몬드의 킴벌리 협약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전쟁을 더 이상 정책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켈로그-브리앙 조약과 같이 유명무실할 뿐이다. 나는 다시 전쟁의 포악함과 광기, 잔혹함에 대해 생각한다. 전쟁은 끔찍하다. 하지만 외면해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전쟁을 향한 마크 트웨인의 절규에 가까운 비난과 전쟁에 관한 유명한 기록 사진 두 장을 첨부합니다.

전쟁의 유해함과 애먼 죽음들에 대해,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참혹한 결과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해요.



에디 애덤스, 「처형당하는 베트콩 포로」, 사이공, 1968
로버트 카파, 「어느 공화군 병사의 죽음」



오, 우리의 하나님. 저희가 저희의 포탄들로 저들의 병사를 갈갈이 찢어발겨 피를 흘리게 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저들의 부상자들이 내지르는 비명과 고통의 몸부림으로 천둥과도 같은 대포 소리를 잠재울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사격으로 저들의 소박한 집을 황폐화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도저히 치유할 수 없는 슬픔으로 아무런 죄도 없는 저들의 미망인이 자신의 심장을 쥐어짜게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저들의 어린아이가 의지할 데 없이 누더기를 걸친 채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폐허가 된 땅을 방황하게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_Mark Twain, 《The war pr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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