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삼림(重慶森林: Chungking Express, 1994)
비가 많이 와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
비는 언제나 좋은 핑계가 된다.
비 오는 저녁은
조금 울적해 하기에도
술을 한잔 하기에도
늦은 밤 친구를 불러내기에도
너에게 전화를 하기에도
일찍 잠들기에도
편지를 쓰기에도
영화를 보기에도
좋다
자잘자잘 빗방울이 세상과 마주치는 소리
모서리를 타고 툭 툭, 두 번째 낙하
구르고 흘러 한 순간 콰드득, 바닥 가까이 배수구로 쏟아지는 소리
팔을 베고 한참이나 귀 기울였더니
모두가 내 몸 위로 떨어져 내리는 것 같다
움찔,
시커먼 천장에는 커다란 팬이 돈다
파인애플 통조림을 서른 개나 먹고, 눈물이 마르도록 운동장을 달려도
이별은 영원히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0.01cm의 거리를 두고 당신을 스쳐 지난 누군가와
6시간이나 57시간, 혹은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사랑에 빠지게 될는지 또한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