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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Jun 08. 2016

당신의 꿈

하늘을 우러러 한 점,


엄마가 부탁을 해와서 동네 펍에서 일주일 정도 아르바이트를 했다. 작은 동네라 그런지 일을 하는 동안 엄마 초등학교 동창이라거나 아빠 동호회 회원, 무슨무슨 회장 아저씨, 윗집 아줌마 등등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내가 누구네 딸이라는 말을 듣고 나면 하나같이 물어왔다.


몇 살이니

학교는 어디니

취직은 했니



의아할 것 없는 수순이었다. 그러나 이상했던 것은 와중에 몇몇이


아, 이런 거 물어보면 안 되지


하고 답을 하기도 전에 꼬리를 내렸다는 것이다.


저런 종류의 질문은 언제나 실례였지만 그것 또한 관심이라며 아랑곳 않던 것이 오지랖 넓은 어른들이다. 그 치들이 이렇게 쉬쉬할 정도면 청년 실업이니 불안정 고용이니 하는 문제가 어지간히 심하긴 한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민망한 듯 질문을 거 은근슬쩍 자신의 아들, 딸 이야기를 털어놓다. 조심스럽고 모호하게, 에둘러 두루뭉술. 커다란 불안감과 마지못한 긍정을 숨기지 못한 채.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었던 거다.






지난 해 누군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꿈이 뭐야?

뭘 하고 싶어?



어디 학교를 다니는지, 무엇을 전공하는지는 수없이 답했어도 꿈이 뭐냐는 질문은 너무도 오랜만이었다. 말문이 막혔다. 퍼뜩 떠오르는 것들은 뜬 구름 같았고 명확히 보여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어서 바보같이 대답도 못하고 얼버무렸다. '꿈'이라는 단어 시냅스 호 기제를 곤두세우고, 그로 인해 사고가 정지해버린듯 했다. 망연자실했다. 꿈이라는 단어에 방어태세를 갖추고 위축되다니. 예전엔 뭔가 어슴푸레하더라도 어영부영 대 할 수 있었는데 그 마저도 하질 못했다. 원대한 소망에 비해 빈약한 능력과 보이지 않는 성과는 기어이 터진 입을 다물게 했다. 여물지 못한 나는 부끄럽지 않았으나 꿈을 말할 수 없는 나는 부끄러웠다.



Cairns, AU (2016)



초등학교 땐 무엇을 써야 할지도 모르면서 막연히 쓰는 일을 하고 싶어 했었다. 그럼에도 '실용'이나 '안정' 같은, 일반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가치에 따른 주위의 강요 같은 권유를 따라 간호사, 선생님, 공무원 등을 장래희망 칸에 써넣었다(세상에, 장래희망이 공무원이라니). 중학교 때는 장난처럼 슈퍼맨이나 초싸이언, 해적왕 같은 걸  친구들과 킬킬댔고, 고등학교 쯤엔 최대한의 타협으로 건축을 지향했으나 우후죽순 생겨나는 재미없는 사각형의 아파트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결국은 뜻도 없고 멋도 없는 공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지금 도무지 뭘 하고 싶은지 혹은 뭘 할 수 있을지 조차 갈피를 못 잡고 헤매이고 있다.












나는 심히 미적지근한 인간으로 일생의 대부분을 그저 성실하게만 살아왔다. 지난 시간을 샅샅이 상기해봐도 강제된 것이든 자발적인 것이든 죽어라고 열심히 기억이 없다. 그저 '할 만큼'을 을 뿐. 다분히 수동적인 삶이었다. 그래서 의욕적인 사람들을 보며 불편함과 이질감, 동경을 함께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저 물처럼 굽이치며 흘러온 내 삶에는 없는 것.



최근 들어 자주 의문한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능력은 열정으로 얻을 수 있나?

열정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나?


-


무엇하나 특출난 것 없는 보통의 인간은

무얼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되는 걸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실마리를 찾아 어둠을 더듬으면서

그런 생각들을 곱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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