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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May 25. 2016

어린 어른

괜찮아, 모두가 처음인 오늘이니까


나는 스무 살이 훨씬 넘도록 어린이 채널을 즐겨 시청했고 비눗방울과 물총, 풍선 같은 장난감을 사 모았으며 예쁜 그림책이라면 사족을 못썼다. 그렇 피터팬의 친구로 오래도록 남고 싶었는데 사실 그건 유아동경한 무의식의 몸부림이었나 보다. 아이로 남고 싶던 인간의 귀여운 수작(?)이었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그런 뻔한 수작으로 사람들을 속이기엔 무리가 있었는지 아이 답다는 말 대신 조숙하다거나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일찍 현실과 조우하고 그것을 외면하려 버둥대는 동안 아랑곳 않고 시간은 흘렀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더니 성인이라는 범주에 속해 있었다. 지갑 속의 주민등록증은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어른이라 느끼게 한 적이 없지만 ‘아, 나도 조금은 어른에 가까워졌나 보다.’ 생각하게 한 순간이 몇 있었다.      






01.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야


영화에서도 일상에서도 사람들은 어슴푸레 웃으며 이 말을 참 자주 했다. 예전엔 아무리 들어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니, 무엇을 말인가? 그 이후 몇 번의 다툼과 사소한 상실, 나름의 이별을 경험했다. 그러면서 어느샌가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시간은 모든 것은 아니어도 많은 것을 해결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언젠가부터 일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거나 실패로 좌절하게 될 때면 생각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그러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안지만 한편으론 허무하기도 했다. 내 인생의 사건들에서 한걸음 물러나 흘러가라고 멀찍이 비켜서는 모습을 보며 ‘나도 조금은 커버렸을까’ 쌉쓰름해 웃었다. 몇 년 후, 시간은 희미해지고 무디게 만들 뿐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 마저 알게 되었지만 맥락에 맞지 않으니 내버려두자.




02.

영원한 것은 없다


불변이나 영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지칭하는 단어다. 사실은 딱히 바란 적도 없었고 바라게 될 줄도 몰랐다. 그런데 살다 보니 영원했으면 하는 순간들이 생기더라.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영원하기를, 그리고 변치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삶은 빛난다거나 행복하다는 이유로 하나의 순간에 고정되어 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모두가 흘러갔다. 흐름 속에서 변치 않는 것은 없었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시간들이 흘다. 흐름을 따라 사람도 변하고 계절도 변하고 관계도 변했다. 이불속에 숨죽이기도 하고 어느 날은 못 참아 터뜨리기도 하면서 제법 고통스럽게 영원한 것은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이따금 찾아오는 간직하고픈 순간 앞에서 ‘영원한 건 없어’ 타이르듯 고개를 저으면서 참을 수 없이 씁쓸했다. 영원에 대한 기대마저도 부정하게 되다니. 역시, 어른일까.




03.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나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저마다 다르다)만큼이나 찰리 채플린의 이 유명한 인용을 좋아했다. 그러나 몇 번이나 찾아보면서도 좀처럼 정확히 기억하지를 못했다. 떠올리려 할 때마다 도대체 인생이란 놈이 가까이 보면 희극 인지 비극인지, 멀리서 보면 우스워 보일지 슬퍼 보일지 감이 오질 않았다. 노트를 뒤져 문장을 찾아내고 나선 매번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헷갈리지가 않더라. 구분하지 못했던 지난날이 의문스러울 만큼 확연하게 가까이 보는 인생은 비극이었고, 지나고 나면 희극이었다. 분명한 확신 앞에서 생각했다. ‘그렇구나, 나 이만큼 자랐구나.’












스스로 어른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낀 건 하나같이 쓰디쓴 순간들이었다. 이상과 정의, 높이 평가하던 가치를 은근슬쩍 내려놓고, 조금 수동적인 태도로 방관자의 자리에 서고, 삶을 비극으로 받아들이기를 허용한 순간들. 한 걸음 물러서고 낙담하고 포기하고 내려놓던 타협의 찰나들.


그러고 보면 ‘나는 훌륭한 어른이에요.’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어른은 본 적이 없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그랬다. 모두 어영부영 그 자리에 서게 된 것 같았다. 그들 또한 나와 같이 말랑하고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들도 이전에는 오늘을 살아본 적이 없어서, 어른이 되기 전에는 어른이었던 적이 없어서 불안해하고 있었다. 모두 시간이 흘러 어쩌다 어른이 되었을 뿐이다. 어쩌다, 어른.






아이와 어른을 구분하는 경계는 무엇인가, 어른이 된다는 건 무얼 의미할까. 우리는 어른을 너무 강인하고 완벽한 존재로 보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인간은 죽는 날 까지도 약하고 불완전하며, 어른이 된다는 건 그저 그 연약함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아이라기엔 너무 많이 자랐고

어른이라기엔 아직 어리고 여린,

모두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


강하지 않아도 괜찮아.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모두에게 처음인 오늘이니까

서툴러도 실수해도

괜찮아.



열심히 하라고 다그치거나

없는 힘을 내라고 응원하거나

다 잘될 거라는 터무니없는 위 대신 괜찮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다만 다시없을 당신의 하루가 나중에라도 돌이켜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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