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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트 Apr 17. 2018

나의 가치도 자리에 따라 달라진다

군대, 최종면접, 카페창업




SKY출신 대학생이 군대를 갈 때


육군 훈련소다. 조금 친해진 훈련병 동기들과 통성명을 한다. 어디 학교를 나왔냐고 묻다가 SKY라고 답한다. 그때부터 내 이름은 SKY가 되었다. 육군에서 SKY대학을 나온 친구는 많지 않아서, 별 거 아닌 대학 네임벨류가 나를 기억하는 주요 소재로 활용된다. 심지어 조교도 우스갯소리로 나를 그렇게 부른다. "야, 스카이!"


만약 내가 카투샤나 공군을 갔다면 어땠을까. 그곳에는 SKY 대학을 나온 동기들이 매우 많다.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큰 관심사나 큰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수준의 확인 정도에서 끝난다. 나중에 자대 배치를 받을 때는 학교보다 실질적인 능력이 중요해진다. 해외에 산 경험이 있어서 영어를 잘하는지, 공군 자대배치 시험 점수가 높은지, 혹은 공군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특별한 업무 기술이나 스킬이 있는지, 그것도 아니면 혹시 공군본부에 높으신 분 중 지인 또는 친인척이 있는지의 여부 말이다.



비 SKY출신 대학생이 최종면접을 볼 때


최종 면접장이다. 나는 비SKY 출신으로, 처음부터 오르지도 못할 나무는 오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이 삼성, 현대 주요 대기업에 입사지원서를 쓸 때, 나는 애초에 중견기업, 대기업 중에서도 경쟁이 높지 않은 곳에 집중해서 썼다. 아니나 다를까 서류는 무조건 합격이었다. 면접도 무난했다. 그렇게 최종 면접장에 왔다. 하고자 하는 일,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잘 정리해 무사히 면접을 마쳤다.


만약 내가 삼성, 현대, 그 중에서도 가장 경쟁이 치열한 부서에 지원했다면 어땠을까. 그곳에는 SKY대학을 나온 지원자들이 내옆에 앉아있다. 학교는 SKY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남들보다 열심히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나는, 어찌 됐건 최종면접까지 올라오는 데 성공했다. 면접장에 들어갔다. 가운데 앉은 내 양쪽에는 모두 SKY대학과 카이스트 대학을 나온 후보자가 함께 앉아 있다. 어차피 대학으로 비빌 수 없는 나는, 나만의 강점과 실력을 어필해야 한다. CPA자격증이 있다던가, 완벽한 영어 구사능력이 있다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대기업에서 인턴 경험을 남들보다 많이 해 봐서 대기업에 들어와서도 금방 퇴사하지 않겠다던가 하는 등의 것들 말이다.



퇴직금으로 카페를 차리려고 할 때


나는 퇴직했다. 퇴직금과 저축금 일부를 모아 카페를 창업하려 한다. 커피는 회사 점심시간에 마셔본 게 다지만, 할 수 있는 거라곤 카페 창업밖에 없는 것 같다. 시장조사를 한다. 글로벌 커피체인부터, 국내 중견 커피체인, 그리고 개인 자영업자까지 그야말로 '커피시장 포화상태'다. 내 자리는 없을 것만 같다. 커피는 잘 모르지만, 커피를 마시는 직장인들의 심리는 잘 안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면서 직장인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카페를 만든다. 시끄럽고 떠들고, 딱딱한 의자만 놓여져있는 카페가 다수인데, 편하게 언제든 와서 쉬다 갈 수 있는 카페라니. 휴식을 필요로 하는 직장인들이 카페를 찾기 시작한다.


만약 내가 커피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커피 맛으로 승부하는 카페를 차렸다면 어땠을까. 커피를 수년에서 수십년 공부한 사람들이 블럭마다 카페를 차렸다. 누구는 영국, 누구는 남미까지 가서 커피를 배웠다는데, 커피 전문점이 이렇게 넘쳐나니 결국 1, 2개 진짜 맛있는 카페를 제외하고는 무한경쟁이다. 2,500원에 팔던 커피를, 이제는 1,200원에 판다. 그래도 사람이 안 온다. 2000원에 1+1으로 전략을 바꾼다. 그래도 사람이 안 온다. 이제는 아예 길거리로 나가 무료 시음행사를 한다. 무료로 준다고 하는데도 사람들이 나를 피한다. 도대체가 길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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