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번트 Apr 13. 2018

옳고 그름을 따지는 바보들의 사회

4월 13일




모든 작품, 결과에는'의도와 목적'이 담겨 있다. 특정 지역에 위치한 건축물을 짓기로 결심한 것은 '건물 소유주'의 의도가, 해당 건축물을 어떤 모양과 컨셉으로 지을 것인가 하는 결정에는 '건축가'의 의도가, 그 건축물을 이용 또는 거주하고자 하는 결정에는 실제 거주인, 세입자의 의도가 반영돼 있다.


심지어 상대방이 나한테 하는 안부인사 카톡에도 목적이 있고, 같이 커피를 마시는데 내가 돈을 먼저 내겠다고 나서는 사람의 행동에도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이다. 절대 이유없이 일어나는 행동,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문제는 우리가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결과만 놓고 잘잘못을 왈가왈부할 때 발생한다. 니가 틀렸니, 내가 옳았니 하면서 특정 결과를 놓고 도덕적 판단, 지식적 우위를 논하는 것이다.


길에서 담배를 피며 걸어가는 '길빵맨'을 보고, 저 몰상식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한다. 그러나 길빵맨의 생각은 다르다. 길빵맨이 길을 걸어가며 담배를 피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한 자리에서 담배를 필만한 곳이 없었다든지, 아니면 심리적으로 타인의 코까지 고려할 심적 여유가 없었다든지, 혹은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는 길은 개인의 사유공간이 아니니 내 자유라고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을 모른 채 '당신 길에서 담배피면 안 돼!' 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나의 자유를 위해 상대의 자유를 강압하는 결과를 낳고 만다.


최근 공무원 한국사 시험 출제를 놓고, 한 한국사 강사가 욕설을 한 것이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그 욕설도 결국 출제자의 의도를 잘 몰랐기 때문에 욕설이 먼저 튀어나온 것과 다름 아니다. 공무원 한국사 시험은 시험응시자들이 향후 공무원이 되었을 때의 한국사적 지식을 평가하고자 함이 아니다. 애초에 한국사 시험은 '변별력'을 가려 합격자와 탈락자를 가리기 위한 시험이다.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놓고 충분히 응용하면 좋은 문제가 나올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과연 좋은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또한 결국 변별력을 가리기 위해 명료한 역사적 사실을 일부러 꼬는 것은 아닌가? 오지선다형 시험은 애초에 사고력, 지식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암기력, 암기공부의 절대량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그것이 '시험(exam)'이라는 제도를 만든 사람들의 의도다. 수능, 토익, 한국사, 공무원시험, 입사시험 모두 마찬가지다.


의도를 읽어야 한다. 상대가 의도한 바를 간파해야 한다. 상대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면 상대가 하는 행동, 말 한 마디가 다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무작정 열심히 한다고 되는 사회가 아니다. 열심히 앞만 보고 살면, 그 어떤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내 의도, 내 고집만 앞세우는 바보 멍청이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혼자가 되는 것이다. 1인 가구, 히키코모리, 비혼주의, 사람을 만나기보다 강아지를 키우는 것, 모두 동일한 결과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 안다고 하는 그런 개인들이 집합한 사회가, 지금 21세기 대한민국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발 가게에 들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