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 로즈, 빼빼로데이 ...
빼빼로데이, 로즈데이,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소위 '00데이'는 열 손가락을 다 합해도 헤아리지 못할 만큼 그 수가 많고 다양해졌다. 이 무수한 데이들이 탄생한 기원은 제각각이며, 기원에 대한 논란도 분분하다. 중요한 것은 기원의 팩트(Fact)가 아니라, 누가 이 '데이'를 키우고 조장했는가 하는 점이다.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데이'들의 성공, 성황으로 이익을 보는 무리들, 바로 '기업들'이다. 예컨대 빼빼로, 발렌타인, 화이트데이의 경우는 '식품 제조 기업'이 큰 수혜를 볼 것이다. 평소에도 팔던 똑같은 빼빼로, 사탕, 초콜릿이지만, 이날 하루를 위해 특별 상품을 기획하거나 마케팅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한다. 평소보다 많은 재고를 미리 확보해, 과거 세일즈 데이터에 기반해 물량 부족에 대비한다.
두번째 수혜 대상자는 '유통 기업'이다. 소비자와 가장 근접한 이들은, 실질적으로 소비자가 돈을 꺼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는다. 편의점 입구 앞 도로를 점거하여 초콜릿을 진열해 놓는 모습이 대표적이며, 자체적으로 '00데이'를 알리는 현수막과 포스터를 매장 곳곳에 부착한다. 하이앤드 브랜드는 고가 기획 상품을 마련해, 제품과 함께 이쁜 선물용 포장 서비스를 제공한다. 때로는 리미티드 에디션 한정판을 강조해, 제조원가와 전혀 무관한 고가격 설정으로 재미를 보기도 한다.
세번째이자 마지막 수혜 대상자, 가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은 '선물을 받는 이들'이다. 연인 관계에서는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될 것이고, 부부 사이가 될 수도 있고, 친구관계나 썸을 타는 관계일 수도 있다.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00데이'를 마치 현실에 있는 것마냥 가시화시키는 역할의 선봉장을 맡는다. 카톡, SNS를 통해 '00데이'임을 가장 적극적으로 알리기도 하고, 때로는 매력적인 그들 자체의 존재만으로도 '00데이'가 성립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아무리 식품, 유통 기업들이 발버둥을 쳐도, 이들이 없다면 '00데이'는 존재 이유가 없다. 초콜릿, 사탕, 빼빼로, 꽃은 수단에 불과할 뿐, 결국 이들에게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 속에서 '마음'을 전하기 위한 개인들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 관계의 영원성을 활용해, 중간 단계에서 매력적인 '수단'이 되고자 자처하는 기업들도 더욱 더 다양해질 것이다. 무엇이든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그 대상이 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