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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트 Mar 17. 2019

나는 왜 자꾸 힘들어질까?

우리가 살아가며 '문제'라고 일컫는 많은 문제들은, 거의 대부분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깜박이를 미리 넣지 않고 황급히 차선을 변경하려고 하는 와중에 옆 차선 차와 사고가 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도중 상대 팀원과의 충분한 커뮤니케이션 없이 일을 섣불리 진행하면서 전혀 다른 방향의 결과물이 도출되고, 동네의 분위기와 거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충분한 연구도 없이 섣불리 카페를 차린 초보 사장님의 무모함이 가게 폐업을 낳는다.


말, 목소리, 입으로만 하는 것이 소통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소통을 위해 존재한다. 자동차 회사는 디자인의 차별화로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전달하려고 하고, 소개팅 또는 맞선을 보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옷과 악세서리로 자신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중요한 회의 도중 아무 말도 없이 스마트폰만 바라보는 사장님의 행동만으로, 이 회의가 얼마나 잘못 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백번의 말보다 한번의 강렬한 눈빛이 주요한 인상을 남기기도 하는 것, 그것은 소통을 위한 수단에는 우선순위가 없으며 소통의 수단은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립되고 있다면, 혹은 이미 고립되었다면, 본인은 '소통에 실패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제 아무리 잘났더라도 만약 고립돼 있다면, 그것은 실로 못난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궁극적으로 '소통'에서 비롯되고, '통함'에서비롯되기에, '고립'됐다면 필히 불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립이 좋다고, 그게 왜 나쁘냐고 반문하는 이들은, 고립의 안정에 취해 그것이 잘못 됐는지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나가면 실수하고 실패하고, 자꾸 부딪치고 깎여나가기 때문에 그 과정이 너무 아프기 때문에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혹은 애초에 고립되고 단순화된 삶이 그 사람의 삶의 수준에 정확히 부합하기 때문이다. 도시 생활을 할 수준이 안 되는 사람이 시골에서 급격히 상경할 경우, 많은 사람들과의 부딪침에 지쳐 도시생활의 잘못됨만 불평불만할 것이다. 자신이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왔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소통에도 수준이 있다. 가지 말아야 할 자리에 가서 소통을 말해서도 안 되고, 소통이 높고 낮음의 수준에 관계없이 전방위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서도 안 된다. 물과 기름은 소통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서로 섞일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 그 자체가 소통이다.


혹시 고립돼 있다면, 혹시 어떤 문제들에 갇혀 풀지 못하고 있다면, 혹시 자꾸 힘들어지고 있다면, 내가 잘못 소통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혼자 옳다고, 나만 다 맞다고 생각하면서 혼자 울타리를 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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