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할 때 안 떠는 방법 1
사원도, 팀장도, 심지어 임원도 떤다
회사에 들어와 가장 놀랬던 점은, 직급/직책의 높낮이에 상관없이 모두가 남들 앞에 서면 "떤다"는 것이다. 나는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의 행동, 말소리만 듣고도 저 사람이 얼마나 떠는지 알 수 있는 신기한 재능을 갖고 있다. 수많은 PT, 발표 자리와 무대에서 본 나의 판단은, 모두가 '떤다'는 것이다. 즉 떨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0억짜리 경쟁 PT를 하던 그날
한번은 회사에서 중요한 경쟁 PT를 하는 날이었는데, 입찰을 따기 위해 각자 회사 대표로 나온 임원들이 우리 앞에 섰다. 적어도 임원이고, 또 수억, 수십억이 왔다갔다 하는 경쟁 PT경험이 무수히 많은 그들이기에, 이 정도 발표 쯤이야 쉽게 넘어가지 않겠나 생각했다. 하필 그 날 내가 제일 앞자리에 앉았고, 발표 공간이 참여 인원보다 적어 매우 가까이서 발표자의 육성과 행동을 관찰하고 들을 수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정말 많이들 떠시더라는 것이다. 한 2M만 떨어져도 들리지 않았을 거친 숨소리가 나에게 들렸고, 꼴깍꼴깍 침을 삼키는 초조함이 내 달팽이관을 스쳤다. 정말 놀랬다. 아.. 다들 떠는구나.
나의 대학교 학창시절
나는 유독 많이 떠는 사람이었다. 발표는 커녕, 학교 수업 때 질문이라도 하나 하려고 하면 손을 들기 직전까지 심장이 두근거림을 참을 수 없었다. '손을 들지 말까?', '질문 하지 말까?' 하는 생각이 마음 속에서 수십번을 오가다가도, 궁금한 점을 못 참는 나, 그리고 어릴 때부터 체화돼 왔던 관종으로서의 나가 발동되어, 결국은 손을 들고 떨린 채로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발표의 떨림은 아무리 발표를 많이 해도 줄어들거나 사라지지 않았다. 매 순간 떨리고 매 순간 긴장됐다. 그러나 피할 수 없었다. 진득이 앉아 시험공부를 하는 것 죽어도 싫었고, 어차피 발표 점수가 학점을 결정하는 데 큰 비중을 차지했던 터라 나는 내 전략을 시험보다 '발표'에 두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나는 떨림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떨림을 안고 가기로 결심했다.
나는 어떻게 발표에서의 두려움을 안고 갈 수 있었을까?
내가 시행착오를 거치며 알아낸 비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발표 당일을 가정한 시뮬레이션을 무수히 반복한다
흔히 학교에서 발표할 때는 피피티 전체화면을 슬라이드에 띄워 발표를 하곤 했다. 나는 집에서 컴퓨터 모니터에 피피티 전체화면을 띄워놓고 앞에 청중이 앉아있다 생각하고 '서서' 발표를 연습했다.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니터를 보고 연습하면 결국 발표할 때도 '모니터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모니터를 보고 발표했다간 낭패를 본다. 청중들은 모니터 보고 말하는 발표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스크립트가 아닌 '키 메시지'를 기억한다
나는 모든 스크립트를 쓰지 않았다. 그러나 각 장표별로 내가 전달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메시지 '1~2개'를 메모하고 써 놓았다. 발표 시간을 30분이라 가정하면, 실제 청중들이 집중해서 듣는 시간은 5분 미만도 채 되지 않는다. 결국 '5분'의 집중력을 갖는 시간에, 나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그들 머릿 속에 집어넣어야만 한다. 1개의 피피티 화면 안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며, 모든 메시지가 아닌 단 1개의 메시지가 담겨 있어야 한다.
셋째. 발표할 현장에 하루 전날 가 본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했다.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도, 내가 실전에서 설 무대가 어떤 곳인지 모르면 막연한 두려움이 몰려 온다. 마치 연예인들이 콘서트, 공연 등을 하기 전에 리허설을 하듯, 나도 뭐 대단한 발표(?)는 아니지만 그래도 미리 현장에 와 보곤 했다. 청중들은 어떻게 앉는지, 몇 명 정도 올 건지, 마이크 음량은 어떤지, 화면 크기는 어떤지,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동선은 어디까지인지 등 점검할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렇게 따로 시간을 내서 가 보면, 막상 당일에 도착했을 때 왠지 내 집 안방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빨리 이 곳에 서서 발표를 하고 싶은 조바심까지 생긴 달까?
결국 준비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준비다
준비하면 떨지 않는다
그러나 무작정 많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목적을 갖고 준비해야 한다
발표의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자
메시지 전달인지, 충격을 주는 것인지, 나의 잘남을 뽐내기 위함인지..?
뭐라도 좋다
목적에 따라 발표의 준비도 달라져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