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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첫 발표

초등학교 1학년 대표 학예회 개회사 in 강당

by 저스틴


엄마,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자

나는 1학년 반장이었다. 그리고 열성적이었던 나의 어머니가 학교에 어떠한 기여를 했는지 모르지만(?), 아니면 정말 내가 뭔가 무대에 설 만한 깜냥이 되어 보여서였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나에게 전교 학예회 개회사를 낭독할 기회가 주어졌다. 이름도 잘 모르는 다른 반 여자 아이와의 개회사 낭독.


별 일 없을 것이다. 그냥 잘 읽기만 하면.

그냥 A4에 써 있는 3,4마디 잘 읽고 내려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도 선생님이 써 준 것들이었고, 여자 아이와 소리를 맞춰 읽으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조건도 있었다. 손을 잡고 읽어야 했고, 들어가고 나올 땐 발을 맞춰야 했다. 특히 나갈 때가 중요했다. 우리 바로 다음 타자들이 우리 나가는 발걸음에 맞춰 들어오기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렵지 않다. 그냥 나가기만 하면 되니까.


무대에 오르기 직전

가슴이 쿵쾅쿵쾅. 대강당에 줄맞춰 앉아있는 수많은 학생들,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들, 학부모들까지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심지어 학예회의 문을 여는 첫인사라, 다들 엄숙한 분위기에 긴장감이 고조되는 대강당 분위기. 그들과 나를 가르는 건 내 키보다 2배는 높아 보이는 나무 판자로 된 칸막이. 내 앞에 보이는 건 무대로 오르는 위태로워 보이는 계단 하나. 그러던 중 사회자가 마이크를 집어 든다. "자, 이제 개회사가 있겠습니다. 1학년 000 어린이, 000 어린이가 낭독하겠습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짝짝짝...


무대 한가운데 섰다

나는 검은 정장을 입고, 파트너는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무대 정중앙에 섰다. 우리 목소리를 더 크게 들으려는 무리가 있었는지, 아니면 우리가 무대 스케일에 쫄아 목소리를 못 낼 게 걱정되었는지, 우리 앞에는 큼지막한 스탠딩 마이크 2대가 우리 키에 맞게 이미 서 있었다. 낯선 마이크 앞에 선 나는 같이 오른 파트너의 손을 꽉 지었다. 인사를 하고, A4에 써 있는 글을 달달 외워서 그대로 읽었다. 뭐 문제 없이.. 자 이렇게 쉽게 끝나겠지..? 어느덧 멘트가 마무리 되고 마무리 인사도 올렸다. 자 이제 끝났다. 예행 연습대로 나가야 할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꽈당!

나는 넘어졌다. 눈 깜짝할 새에 넘어졌다. 그냥 걸어가면 되는데, 내가 파트너의 손을 잡고 나가던 찰나, 갑자기 뒤에 서 있던 선생님이 그 쪽이 아니라 반대쪽으로 내려가라신다. 분명 예행 연습때는 이 방향으로 내려가라고 했는데... 영문을 모르는 나는, 예행연습에 없던 방향에 당황했다. 여자 파트너 아이 또한 어쩔 줄 몰라 나의 리드만 기다린다. 난, 방향을 선회했다. 선생님이 내려오라는 대로 방향을 급히 틀고 여자 아이의 손을 끌었다. 그러던 중 나는 대강당 무대 위 널판지 같은 판자 중 일부 위로 튀어오른 그 곳에 발을 걸려 넘어졌다. 관객석에서는 학생들의 웅성웅성, 키득키득 하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얼굴이 발개진 나는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여자 파트너의 손을 내팽개 치고 아까 대기하던 나무 판넬 뒤로 몸을 숨겼다.


그렇게 나의 첫 발표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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