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번트 Jan 08. 2023

나는 왜 목표만 세우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까?


실패하는 유형 1. 목표를 숫자로 세우는 사람들

마라톤을 뛰기도 전에, 풀코스 마라톤 거리가 42.195km라는 사실에 주눅들어 용기도, 에너지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10km 마라톤도 뛰어보지 못한 사람이 풀코스 마라톤 뛰어보겠다고 덜컥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 신청하는 꼴이랄까. 무수히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목표를 수치화하라’, ‘구체적인 목표일수록 달성할 확률이 높아진다’라며 외치는 탓에, 너도 나도 내 수준과 현재는 고려하지도 않고 일단 목표를 숫자로 표시하는 데 골몰된다. 돈을 모으겠다는 목표를 세운 사람이 예금, 적금 통장도 만들지 않고, ‘나는 2023년에 1억을 모을 거야’라고 목표를 덜컥 세우는 것과 같과 다르지 않다. 거창한, 거대한 숫자를 세울 수록, 나는 거대한 계획, 엄청난 변화를 이뤄야만 할 것처럼 막중한 책임감이 생긴다. 그 책임감 때문에 행동으로 바로 움직일 것 같지만, 정작 그 숫자가 주는 막연한 무게와 중압감이 오히려 나를 짓누른다. 자면서 가위 누르듯, 매순간 움직이는 나에게 ‘넌 부족해’, ‘넌 멀었어’ 라며 채찍질 하는 도구로 쓰이는 숫자들이 나를 둘러싼다. 그것으로 내가 더 올라갈 것 같지만,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목표로 세워 둔 숫자의 반의 반, 10분의 1도 채 도달하지 못하고 방전돼 버리고 만다. 하면 할수록 지치고, 달리면 달릴수록 목표에서 멀어진다. 그것이 구체적 숫자가 주는, 실패로밖에 갈 수 없는 이유다.


실패하는 유형 2. 오늘이 아닌 내일의 숫자를 세우는 사람들

1달 뒤, 1년 뒤의 목표를 ‘숫자화’하는 사람들이다. 당장 오늘 오후, 저녁에 내가 무엇을 할 지 구체적으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1달 뒤 1년 뒤 내 모습을 숫자로 그려놓는다. 문제는 거기까지라는 거다. 최종 목표에서 역산하여, 1년 목표로부터 1달, 1달 목표로부터 1주, 1주 목표로부터 하루의 숫자들이 구체화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그 모든 계획을 숫자화하여 표현한다면, 어느새 나는 ‘계획’, ‘목표수립’만 하다가 하루를 다 보낼 터이고, 결국 그 숫자들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의 과정들은 모두 생략되거나 간과되고 만다. 하루 1시간이 주어진다면 59분을 목표/숫자 세우는 데 쓰고, 나머지 1분을 실행에 옮기는 데 쓰는 셈이랄까. 정말 구체적 숫자/수치를 세워야 한다면, 가장 중요한 대상은 내일이 아닌 ‘오늘’이 되어야 한다. 지금 움직이고 행동하는 내 현재의 삶이 어떤 수치를 달성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1달 동안 10kg을 감량하겠다는 목표를 정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 내가 몇 kg을 빼는가에 있다. 오늘 내가 2kg을 감량했다면, 내일은 1kg만 감량할 수 있다.


실패하는 유형 3. 숫자가 목표  자체가 되는 사람들

목표에 ‘내가 없는 사람들’이다. 나의 모습, 이미지는 온 데 간 데 없고, 오로지 나를 불살라 이루는 대상의 숫자만 남아 있다. 예를 들어 ‘1달 뒤 10억을 번다’라는 목표에 나라는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목표를 이루고 나면 남는 건 오로지 10억 뿐이다. 10억을 벌어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가 없다. 숫자는 도구여야 하고, 그 숫자로 달성하는 건 나의 의지와 나의 완성이 되어야 한다. 10억을 벌어 내 사업자금을 마련하겠다던가, 10억을 벌어 사회환원하되 반드시 도움이 되어야 하는 곳에 기부하겠다는 꿈이라던가 그런 것들 말이다. 10억을 벌어 부자가 되겠다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부자가 된다는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부자가 되어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결국 숫자는 목표가 될 수 없고, 숫자는 내가 사는 존재이유가 될 수 없다. 숫자는 오로지 도구로 쓰일 때만 효용가치를 지닌다. 내가 몸무게 10kg을 빼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고, 10kg를 감량하여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10kg를 감량하여 첫사랑 앞에 나타나 고백을 하고 싶다던가. 수능 올1등급을 맞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입학하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을 세우고 운영하는 오너가 되겠다는 꿈과 같은 것들 말이다.





목표는 ‘, ‘즐거움이고, ‘나의 즐거움이어야 한다

목표는 오로지 나를 위해, 나의 즐거움을 완성하기 위해 존재한다. 내가 즐거운 것이 최종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나는 엔터테인먼트를 세워 많은 사람들을 즐겁고, 환희에 차게 하는 수많은 연예인들을 기르고 싶다. 그것이 나의 즐거움이고 보람이다’ 라는 목표를 세우는 사람이 엔터사 회사를 차린다. 이쁘고 잘 생긴 애들 좀 모아서 대충 훈련시켜서 내보내면 한 몫, 한 천억은 벌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숫자가 앞서는 사람은 절대 엔터사를 제대로 운용할 수 없다.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가면 한국보다 돈을 더 많이 준다던데? 해서 떠나는 사람은 백이면 백 다 돌아오거나, 즐겁지 못한 해외생활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호주라는 새로운 곳에 나를 던져보고 싶다, 나의 가치를 시험해보고 싶다’라고 떠난 사람은 워킹홀리데이를 하든, 알바를 하든, 여행을 하든, 이민을 가든 뭘 해도 실패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목표는 돈이 아니라 ‘즐거움’, ‘나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나의 목표는 무엇인가.

숫자인가, 즐거움인가? 돈인가, 가치인가? 보여지는 것인가 보고자 하는 것인가? 얻어지는 것인가, 얻고자 하는 것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나의 목표가 내 삶의 존재가치, 존재이유와 맞닿아 있는가.

내가 없어도 다른 누군가가 이룰 수 있는 것들인가. 그렇다면 나는 왜 존재하는가.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2022년 12월, 나는 코로나에 걸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