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 曰, "당신이 한석봉이야?"
브런치에 글 쓰는 이유
와이프가 말한다. "당신이 무슨 한석봉이야? 왜 이렇게 맨날 글만 써"
웃음으로 승화시킨 그녀의 말이 때론 미안하면서도 또 때로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정말 궁금했다. 나는 왜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나는 글 읽기, 쓰기를 죽도록 싫어했다
어릴 적 초등학교 여름방학 숙제로 내 주던 <일기 쓰기>는 모든 과제를 통틀어 가장 하기 싫었던 숙제였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죽도록 싫어했는데, 그 이유는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글 쓰는 얌전한 성격도 아니었거니와, 밖에서는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거나 또는 비비탄 총을 들고 서바이벌 가자며 나를 기다리는 탓에 일기를 쓰고 앉았을 여력이 없었던 탓이기도 했다. 중요한 건 난 일기 쓰는 게 참 싫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전환점, 싸이월드
그러던 중 전국민의 서비스, 싸이월드가 내 청소년기에 생겨났다. 프리챌, 버디버디와 같은 실시간 의사소통 메신저는 줄을 이었지만, 친구들과 일촌을 맺고 나만의 일상, 생각을 있는 그대로 써 내려갈 수 있는 곳은 싸이월드가 유일했다. 특히 싸이월드 폴더 내 있던 <다이어리>는 내 일촌들에게 나의 오늘 하루, 그리고 내 어제에 대한 나의 소회를 가감없이 드러낼 수 있는 일종의 '해우소'와 같았다. 친구들은 마음으로 공감해 줬고, 또 댓글로서 화답했다. 처음으로 글을 쓰는 것의 재미, 기록을 남기는 것의 희열을 느꼈던 때였다.
나와 대화할 시간이 계속 줄어들다
이후 군대에서, 대학에서,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도 글을 써 내려갔다. 때로는 손으로 노트에 일기장을 써 내려가기도 했고, 때로는 에버노트 같은 메모장 앱에 내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점잖게 앉아 어느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예전처럼 일기를 쓸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와 환경은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술을 마시고 온 다음 날은 숙취 해소에 온 하루를 쏟아야 했고, 하루 일과를 끝마치고 샤워를 마친 다음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 녹초가 되어 소파와 바닥에 널부러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나는 내 밖의 세상과 소통하느라 갈수록 지쳐갔고, 정작 나 자신과의 대화할 시간이 부족해지며 더더욱 고립되고 소외되어 갔다.
브런치를 만나다
그러던 중 브런치를 만났다. 티스토리, 네이버 블로그처럼 블로그의 기능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디자인이 이쁜 일기장 역할을 하는 것 같기도 한. 처음 마주한 브런치는 나에게 '도대체 이 놈을 어디에 써 먹지?' 라고 생각들게 하는 오묘한 연구 대상이었다. 가입을 하는 데 작가로 등록하라고 하질 않나, 심지어 승인을 받아야 하는 통과 의례까지. 무슨 카드사 VIP 심사하는 것도 아니고 꽤나 기분이 나빴지만, 오히려 그것이 나의 승부욕을 자극했을 수도 있다. '니가 뭔데 나를 이래라 저래라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승인 결과를 기다렸던 것 같다.
틈 날 때 노트북을 켜다
이후 나는 좋은 생각이 날 때마다, 그리고 그것을 정제한 글로 정리하고 보고싶을 때마다 '브런치'에 접속했다. 메모장은 써 놓고 다신 안 보는 반면, 브런치는 내가 써 놓고도 다시 펼치는 매력이 있었다. 틈 날 때 글을 썼고, 틈 날 때 글을 회고했다.
집 부엌에서 쓰고 카페에서 다듬었으며, 잠 자기 직전 떠올리고 잠에서 깨어나
출근길 지하철에서 복기했다.
한석봉과 내 글의 공통점
한석봉은 어머니가 떡을 썰 때 글을 썼다. 그에게 글은 생존이었고, 곧 직업과 삶으로 연결되는 동아줄이었다. 나도 다르지 않다. 나에게도 글은 '생존'이다. 힘듦의 피로가 누적될 때면 산 정상에 올라 '메아리'를 외치듯 나는 이 곳 브런치에서 소리를 지른다. 아무도 듣지 않아도 일단 내뱉고 나면 마음 속, 머릿 속 깊은 고뇌와 스트레스가 단숨에 달아난다.
남들이 회사에서 점심 밥 먹으러 갈 때, 남들이 저녁에 사람들 만나 술 자리를 가질 때, 남들이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게임을 할 때, 난 브런치를 한다. 나에게 브런치는 '숨'이고, 나에게 브런치는 '시간'이다. 그리고 나에게 브런치는 '하루'다. 내 하루가 브런치로 채워진다는 건, 오늘 내 하루가 이야기거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있다는 건 그래도 나름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는 걸테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