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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트 Mar 09. 2023

꼭 급행을 탈 필요는 없잖아

1박 2일 출장 후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빡빡한 1박 2일 지방출장을 마치고 어느새 눈 떠 보니 오송역이다. 이제 서울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하필 마지막 종착역인 서울역에 도착하는 시간이 퇴근시간 피크타임인 6시경이라, 벌써부터 지하철 타고 집으로 갈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네이버 지도로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조회하니, 1호선을 거쳐 9호선으로 환승해서 가는 방법이 가장 빠르단다. '에? 9호선?' 9호선이라면 퇴근시간 6시에 그 어떤 지하철 노선보다도 막히는 지하철 노선이 아닌가. 그런데 별 수 있나. 집에 빨리 가는 게 중요했던 나에게, 9호선을 타면 30분 밖에 안 걸리고 다른 노선을 타면 50분이 걸린다 하니 20분이나 단축되는 9호선에 끼여 타는 것이 나름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였다.


나도 모르게 <1호선 탑승, 9호선 환승> 노선으로 발길을 움직이려 할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 늦으면 어때? 그렇게 끼여서 지하철 안에 갇혀 30분 만에 집에 도착하는 것보단, 20분 더 걸리더라도 편하게 널널하게 집을 오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빠르지만 빡빡한 길 or 느리지만 여유로운 길> 2가지의 길 속에서 나는 결국 후자를 택했다. 그렇게 원래 생각했던 노선과 전혀 다른 4호선을 타고 내려와 2호선에서 환승하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이 쉽지만 낯설었던 선택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 3가지를 깨달았다. 




1. 나는 늘 '빠른 삶'을 택하는 사람이었다

왜 이렇게 느린 삶이 낯선가 했더니, 지금껏 나는 느린 삶, 느린 길을 택해본 적이 없었다. 가야할 길이 같아도 결국 남들은 정도를 걸을 때 늘 '빨리감기'를 하며 살아왔다. 한달치 일을 3일에 몰아서 하고, 조금 돌아가고 쉬어가도 되는 여행을 굳이 스케쥴 빡빡하게 짜서 쉴 틈 없이 움직이는 패키지 상품처럼 다녔다. 


2. 느린 게 느린 것이 아니더라

분명 지도상으로는 후자를 택한 길이 20분 더 걸리는 것이었으나, 막상 집으로 와 보니 그 정도의 차이가 나지도 않았다. 지도에서는 GPS가 지도상에서 움직이는 거리로 시간을 재지만, 지도가 여전히 재지 못하는 시간들, 소위 변수가 많았다. 예컨대 지하철을 갈아탈 때 환승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라던지, 또는 지하철이 도착하는 시간과 간격이 맞지 않아 바로 타지 못하고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과 같은 것들 말이다. 이리저리 다 따지고 보니 결국 도착했을 때 시간이 전자를 택했을 때 예상했던 소요시간과 거의 비슷했다.


3. 생각한 대로 세상일이 돌아갈 때의 짜릿함이 꽤 크다

뭔가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흐를수록 내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고 느낀다. 그런데 별 것 아닌 집 가는 길 정하기 안에서, 내가 생각한 대로 일이 펼쳐지자 그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9호선보다 사람이 적은 4호선 안의 모습, 캐리어를 쉽게 끌고 갈 수 있도록 환승역 이동거리와 도보가 최대한 편리할 것 등 내 경험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던 과거 데이터들을 모두 끌어모아 최적의 선택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여전히 몸으로 부딪친 경험은 웬만한 구글링보다 더 가치가 있고, 또 살아있는 지식에 다름 아니었다. 




Be intentional, Not by Accident

"우연히가 아닌, 주도적인 사람"을 뜻한다. 삶의 수많은 선택에 대한 옳고 그름은, 결과 그 자체가 아닌 내 선택에 대한 믿음으로 결정된다. 내 선택에 대한 믿음, 예컨대 <빠른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느린 삶을 살 것인가?>와 같은 이분법적 선택의 기로에서 정답을 찾을 게 아니라, 내 선택에 대한 근거와 믿음을 갖고 자신있게 앞으로 한발짝 나아가는 것. 그것이 곧 옳은 선택이다. 


우선순위는 항상 내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부모가, 친구가, 직장 상사가 "넌 틀렸어"라고 해도, 내가 스스로 "맞다"고 믿는다면 흔들리지 않고 그 길을 걸어야 한다. 설사 결과가 내 예상과 달랐다 하더라도, 그 책임은 온전히 나의 것이고, 그 실패의 경험조차 온전히 내 것이다. 


반대로 부모, 친구, 직장 상사가 "맞아"라고 했던 길을 걸으며 승승장구하며 탄탄대로의 길을 걷더라도, 그건 진정한 성공이라 할 수 없다. 그 성공에는 '나'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없으면 나의 성공도, 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패하지 않는 껍데기 성공보단, 실패하더라도 성장하는 알찬 성공이 진정한 완성에 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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