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 적막을 깬 일면식도 없는 임원의 호통
이 프로젝트는 4개월 전부터 시작했던 거다
보아 하니 내가 2주 동안 함께하게 된 이 프로젝트는, 사실 4개월 전부터 이미 시작된 일이었다. 각 분야별, 담당 계열사별로 모두 맡은 일이 있었고, 그 일들이 완료되면 최종 보고서를 하나로 취합해서 쓰고 상부에 보고 후 최종 종료하는 일이었다. 즉, 이 프로젝트에 원래 내 자리는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완벽한 조합일 것만 같았던 일이 쉽게 마무리가 되지 않았나 보다. 워드니, PPT니, 보고서를 한 보름 동안 썼는데, 생각만큼 목차나 흐름이 잘 작성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참여 계열사만 4곳이 넘고, 각 분야별로 전문성과 내용의 깊이가 다르다 보니 그 결을 한 데로 모아 '1가지의 톤(Tone)'으로 보고서를 정리하는 게 참 쉽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보름 간의 보고서들을 보니, 이리저리 내용구성은 다 들어가 있는데 보고의 목적도, 내용도, 무엇을 강조하고 뺄 것인지에 대한 의사결정조차 되지 않은 채, 지난 4개월 간 한 일들을 구구절절 Ctrl+c, Ctrl+v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 이게 내가 할일이구나. 4개월의 노력을 2주의 정리로 마무리하는 작업'
뭐 어렵지 않겠네. 쉽게 말해, 모두가 차려놓은 밥상에 나는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거였다.
그런 마음으로, 단 하루 만에 보고서 초안을 작성했다. 그리고 메일 수신, 참조를 거쳐 해당 총괄 임원을 포함한 담당 구성원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수신인 제위, 보고서 초안을 송부드리오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저녁 8시 경 노트북을 끄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야근 한 2시간 한 보람도 있고, 또 아주 클리어하게 그분들의 니즈를 반영해 보고서 틀을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믿었다. 이제 잘 보완해서 보고만 하면 되겠구나.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 그런데...
오전 출근, 하자마자 임원의 사무실 방문
우리 구성원들의 노트북, 모니터, 마시던 커피 잔이 널부러진 누추한 사무실에, 임원 분이 오셨다. 그것도 출근 하자마자, 코트를 채 놓기도 전에 의자 하나를 빼곤 자리를 잡으신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이런 식으로 보고서 쓸 거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지"
눈도 마주치지 않으신다.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희미한 웃음, 미소마저 감돈다. 당최 알 수가 없다.
?
?
?
어안이 벙벙한 나는, 무슨 말씀인가 싶어 가만히 들어보았다.
폰트가 어떻고, 내용이 어떻고, 색상이 어떻고...
?
?
?
그냥 뭔가 다 마음에 안 들어 보이셨다. 그러더니 한 말씀 하고 사라지셨다
"이제부터 내가 직접 챙길 테니, 이따 다시 봅시다"
그렇게 진짜 2주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