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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달쌤 Oct 31. 2020

어쩌면 나에게도......

# 1. 데이비드 호크니 <예술가의 초상>

 음 – 파  음 – 파


 입으로 힘껏 약품 내 나는 습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귓가에 주변 소리가 반복적으로 끊겼다 이어지면서 무음의 순간마다 몸이 중력을 뒤로 하고 앞으로 나갔다.


“ 자 한 번 더...”


갈라지는 강사의 목소리에 수강생들은 느릿느릿 레인을 따라 줄줄이 지나갔다.


“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더 할 사람들은 자유 수영하시고 내일 뵙겠습니다.”

“ 아자! 아자! 힘내자!!”


 다 같이 손으로 수면을 내리치면서 오늘 수업을 마쳤음을 각자 스스로에게 알렸다. 제일 먼저 강사가 물 밖으로 몸을 힘껏 올려 나가자 수업받는 수강생들도 하나둘씩 수영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평일반 아침반이라 그런지 대부분 스케줄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난 늘 더 남아서 30분 정도를 물속 고요함을 즐기다 가곤 했다. 수영은 한 달 전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늦은 아침과 점심 사이에 나만의 시간을 만 든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겨울에 이사를 하면서 1학년에 갓 입학한 첫째 녀석과 응석 쟁이 둘째 녀석을 등 하원 시키는 일은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학교에다 휴직원을 쓰고 가정주부의 낯선 옷을 입었다. 작년 말에 아내는 1년 동안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 자리를 계약했고 올해 3월부터 아침에 일찍 나가고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오곤 했다. 문을 열자 거실 바닥에 널브러진 장난감들과 식탁 위에 남긴 음식물이 두서없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냉장고에는 이번 달 스케줄이 빡빡하게 표시된 달력과 첫째 녀석의 학원 시간표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자기 오늘 나 중간고사 시험 문제 만들어야 해서 늦어. 애들은 저녁에 냉장고에 돈가스 데워 먹여줘’


 포스트잇에 또박또박 힘 있게 쓴 글자에서 남편에 대한 믿음과 함께 잊지 말고 꼭 하라는 압박이 느껴졌다. 오늘 하루도 애들이 하원 하는 시간부터는 정신없이 바빠질 것이 눈에 선했다.


 음 – 파  음 – 파


 수업 전에 미리 와서 몸을 푸는데 어제 애들 뒤치다꺼리로 무리를 해서인지 좀처럼 몸이 나아가지 못했다. 하나둘씩 익숙한 수강생들이 물속으로 들어오고 눈인사를 하자 탄탄하고 다부진 몸매의 강사가 뒤이어 걸어왔다.


“자! 다들 주목!”


내심 목소리에 힘을 주었지만 몸의 근육과는 다르게 큰 위압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 오늘부터 저희 아침반에 함께 하게 될 수강생입니다.”

“ 이진욱 강사가 개인 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해서 이번 주부터 저녁 반 시간대 수강생들을 조정하면서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 다 같이 환영의 박수!”


 수강생들 대부분은 무심하게 박수 몇 번을 쳤다. 새로 함께할 수강생은 두 명이었다. 주로 내가 하는 아침반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아주머니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저녁 대에서 아침반으로 온 두 여자 수강생은 모두 젊어 보였다. 한 명은 보통 키에 엣 되어 보였고 눈웃음이 보이는 대학생 같았다. 다른 한 명은 키가 좀 더 컸고 몸의 곡선이 또렷했으며 민트 빛 수영복이 흰 피부를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누가 봐도 세련되고 도시적인 미인상이었다.


“ 김세아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짧지만 낮은 톤의 목소리가 외모와 맞물려 누구 하나 쉽게 말 붙일 수 없는 거리감을 느껴지게 했다. 말 많은 아침반 몇몇 아주머니들은 연신 새로운 신입 아닌 신입에 대해 품평을 하고 있었다.


“ 아이고... 곱다 고와... 나도 예전에 이럴 때가 있었는데... 처자는 언제부터 배웠니? 어디에 살아?”


 굳이 묻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이나 답을 듣고 싶다는 뜻보다는 으레 낯섦을 누그러뜨리는 습관화된 행동이었다.


 ‘그날부터였을까....’


 내 시선과 관심은 체 알아차리기도 전에 김세아 수강생에게 머물러 있을 때가 많았다. 나 또한 그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 자기.. 수영 재미있어? 어디까지 배웠는데? 저번에 평영까지 했다고 했어?”

“ 아니... 아직 평영 연습 중이야...”

“ 평영은 발차기를 잘해야지 몸이 앞으로 잘 나가더라”


 무심결에 대답하면서도 머릿속 한 공간에 민트 빛이 스쳐갔다. 어릴 때부터 물을 좋아해서 계곡이나 바다에 놀러 가면 물속에서 곧 잘 잠수하고 물속 고요함을 좋아했었다. 언젠가는 한번 정식으로 수영을 배워 보겠노라 늘 생각했었다. 하지만 처음 한 달간 배 울 때 기쁨은 어디 가고 지금 내 안에 다른 에너지가 꿈틀대고 있었다.   


“ 아참... 내일 아침에 민혁이 병원 예약해놨어... 수영 하루 빠져도 괜찮지? 예방접종을 이번 주까지 해야 되는데 깜빡하고 있었어.”

“ 응 알겠어. 집 앞에 소아과에 가면 되는 거지?”


 약간 실망스러운 어투가 나도 모르게 나와 버렸다. 다행히 아내는 나의 감정선보다는 무언가 찝찝한 일 하나를 내어 맡긴 해방감이 앞서 보였다.     


“ 그래도 자기가 있어서 내가 이렇게 일도 하고... 늘 고마워.”

가끔씩 듣는 말인데 고맙다는 말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머릿속에서 짓궂게 맴돌았다.


“ 아빠, 주사 안 맞고 약 먹으면 안 돼? 나 감기 안 걸릴 수 있어”

 사뭇 진지한 얼굴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들 녀석이 물었다. 이럴 땐 장난감 사준다는 약속보다 효과적인 말이 또 있을까.


“ 민혁이 주사 맞고 홈플러스 가자. 장난감 사줄게 ”


 말 떨어지게 무섭게 아들 녀석은 연신 “진짜지?”라고 되묻고는 얼굴빛이 주사실의 공포감에서 행복감으로 바뀐 듯했다. 병원은 한산했다. 계절이 여름에 가까워지자 소아과가 덜 붐볐다. 여긴 올 때마다 힘들었던 기억이 많았다. 동네에 젊은 부부들이 많다 보니 환절기 때 아기가 아프면 한두 시간 기다리는 일이 많았고 그때마다 조금만 증상이 있어도 병원으로 애들을 데리고 가는 아내에 대한 불만이 쌓였다. 난 기다리는 동안 오히려 더 병원에서 병이 옮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항상 불편했다. 병원 안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주로 오니 매일 이 상태를 유지하는 데는 적잖은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 이민혁... 오늘 예방 접종하러 오셨죠? 조금만 앉아 계세요”

 간호사들도 덜 바빠서인지 오늘은 예전보다 친절하고 상냥하게 말했다. 옆에 아들 녀석은 휴대폰 속에서 장난감을 찾는다고 주사 따위는 아예 잊어버린 듯했다.


“ 딸랑 ” “ 딸랑 ”


 병원 데스크 앞에 문이 열렸다. 그리고 검은 원피스에 늘씬한 여인과 창백하지만 엄마를 닮은 여자애가 들어왔다. 한눈에 수영장에서 어제 본 새로운 수강생임을 알아보았다. 데스크에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딸과 함께 내가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앉았다. 옆모습에서 무언가 매력이 절제된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딸아이도 엄마처럼 하얀 피부에 자그마한 얼굴, 긴 다리와 팔이 눈에 띄었고 조용히 가져온 동화책 하나를 읽고 있었다. 순간 아는 척을 해야 하는지 아니하고 싶은지 마음의 갈등과 설렘으로 몇 초가 흘렀다. 간호사가 아들 이름을 불었다. 그제 서야 민혁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아픔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생각났는지 얼굴에 걱정이 올라왔다.


“ 자... 민혁이 아빠 보고 있으세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아들에 애잔함도 잠시였다.


“ 민혁이 씩씩하네... 울지도 않고 잘했어요.”

잠깐 찡그림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찼다. 흥분된 목소리가 병원에서 울렸다.


“ 아빠,,, 빨리 가자... 나 팽이 살까? 공룡 살까? 아니다 레고도 갖고 싶어”

 대답을 듣기보다는 생각나는 대로 말하느라 정신없었다. 접수대에서 진료비를 계산하는 동안에 아들의 흥분된 목소리도 두 모녀의 시선을 끌지는 못했다. 두 사람은 무심한 모습으로 책과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 좋아? 민혁이 또 하루만 가지고 놀면 다음엔 안 사준다.”

 지켜지질 않을 아빠의 엄포에 아들 역시 매일 가지고 놀겠다는 지키지 못할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병원에서 김세아 수강생이 나를 알아봤을까’


 헛된 질문을 떠올리며 내일 아침에 수영장을 꼭 가야겠다는 나만의 다짐을 하고 있었다.     


 음 – 파 음 – 파


 난 지금 어느 때보다도 물과 혼연일체가 되어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앞쪽 몇 미터 앞에는 김세아 수강생의 우아한 발길질이 드문드문 보였다. 수업이 시작될 때 눈인사를 했었다. 아주 옅은 미소를 보자 어제 병원에서 나를 알아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어 번 레인을 따라 턴을 한 뒤 강사가 설명을 이어갔다.


“ 오늘은 수영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접영의 기본자세를 배워보겠습니다. 접영은 허리 움직임이 중요해요. 그리고 두 발끝을 모아 물을 세차게 차고...”


 들어도 직접 해보지 않고는 알 듯 말 듯 한 설명이 이어졌다. 말 끝나기 무섭게 강사는 탄탄한 어깻죽지 근육을 보이면서 접영의 시범을 보여 주었다. 수강생들의 입에서는 감탄이 이어져 나왔다. 난 앞에 김세아 수강생에게 정신이 팔려서 미쳐 내 이름을 듣지 못했다.


“ 김지혁 수강생!!”

 강사가 몇 번이고 내 이름을 부르자 그제 서야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우리 아침반 수영 에이스가 한번 내가 설명한 거 듣고 얼마나 잘하는 지볼까요?”


 순간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불안과 함께 부끄러움이 미리 몰려왔다. 사실 자유형, 배영, 평영은 대학교 때 학교에서 배우고 실습을 해서 큰 부담은 없었지만 접영은 정말 해본 적도 없는 딴 세상 영법이었다. 내 앞에 몇몇 수강생들이 레인 옆으로 길을 터주자 몇 미터 앞에 선 강사의 기대찬 시선이 보였다. 그토록 가까워 보였던 반대쪽 출발선이 아마득하게 멀리 보이면서 심장소리가 강하게 들렸다. 강사는 손짓으로 어서 해보라고 보이지 않는 줄로 나를 당기는 것 같았다.


“ 첨벙 ”  “ 첨벙 ”


 몸은 제자리에서 몇 미터는커녕 몇 센티를 움직였을까 싶다. 힘껏 발을 차고 허리를 움직여도 매 마찬가지였다. 죄지은 것 마냥 고개를 숙인 채 일어섰다. 강사의 얼굴에는 머쓱하면서도 이 상황을 무마시키려는 말이 필요한 듯 보였다.


“ 자 다들 봤죠? 접영은 우리 반 에이스도 이렇게 힘들어요... 더 열심히 해야겠죠? 다시 발차기로 출발 ”

“ 총각, 오늘 왜 이리 힘이 없어... 총각이 그래도 우리 반에서 제일 잘하잖아”


 옆에선 아주머니의 위로의 말이 더욱 나를 더욱 위축되게 했다. 김세아 수강생과 눈이 마주쳤다. 늘 차가워 보이고 무표정한 표정과는 사뭇 달랐다. 마치 재미있는 장면을 보고 웃는 듯 보였다. 힘없이 레인을 따라 몸을 움직였다. 머릿속에는 온통 나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반대편 터치패드를 찍고 다시 자유형으로 가는 중에 출발선에서 김세아 수강생 주위에 아주머니들이 몰려 웅성웅성 이는 모습이 보였다.


“ 아이고 어쩌누.. 귀에서 피 난다 피나... 빨리 약 발라야겠어...”

주변 아주머니들은 근심 어린 말과 함께 자신이 마치 그런 일을 당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 괜찮아요? 얼른 1층 데스크 탑 옆에 의무실 알죠? 빨리 가보세요 ”

강사의 걱정스러운 말투가 한층 더 분위기를 묘하게 만들었다.


“ 귀걸이가 레인에 스쳐서 떨어졌나 봐요. 죄송합니다.”


 그녀는 한 아주머니가 수건 하나를 주자 귀에 대고 물 밖으로 나갔다.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조급해하거나 망설임이 없었다. 보통 수영할 때는 목걸이, 팔찌는 빼는 것 같은데 귀걸이는 사실 잘 모를 법하기도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첫날부터 귀에 반짝이는 작은 나비 모양의 다이아 같은 것을 본 것 같기도 했다. 강사는 수영할 때 귀걸이나 머리핀, 목걸이 등을 빼고 수영할 것을 당부하고 수강생들도 하나둘씩 물 밖으로 나갔다. 난 곧바로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나비 모양 귀걸이’


 수영이 누군가 왜 좋냐고 나에게 물어본다면 스스럼없이 물속에서 온몸을 감싸는 부드러운 압박감 그리고 세상의 모든 소리가 물속에서 음소거가 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물놀이를 가면 늘 잠수를 했고 심지어 목욕탕에서도 자주 물속에 온몸을 넣곤 했으니 말이다.

 투명한 물속 푸른빛 바닥에 있을 법한 귀걸이는 잘 보이지 않았다. 수영장 물은 깨끗한 편이어서 수경이나 수모가 떨어지면 곧 잘 보이는데 귀걸이는 크기부터가 달라서인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연거푸 물속으로 머리부터 들어가 바닥을 살펴봤지만 보이는 것은 수영장 유리 천정에서 들어오는 아침 햇살과 그에 비친 푸른 바닥에 하늘거리는 물 그림자뿐이었다. 갑자기 예전에 갔었던 신혼여행지가 떠올랐다. 난생 첨 스노클링을 할 때에 사이판 마나가하섬에서 말디 맑은 푸른 물속 산호와 열대어들에 푹 빠져 몇 시간을 잠수했었던 그때가...


‘11시 30분’


 수영장 벽 한 편에 걸린 디지털시계가 나의 발을 현실로 당겨 왔다. 30분 동안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실망감과 허탈함이 몰려왔다. 30분의 행복감은 어디로 가버린 건지...

 마음을 가라앉히고 되짚어 보았다. 분명 귀걸이가 떨어졌다고 했으니 물속 말고는 어디 갈 곳이 없었다. 수영장 물은 어디로 흐를까...라는 생각이 닿자마자 각 모서리 부근에 물을 빼는 은색 배수 판 덮개가 보였다. 배수 판 근처에도 귀걸이 모양은 보이지 않았다. 가끔씩 화장실 세면대 물이 잘 안 내려갈 때 바닥의 은색 배수 판 덮개를 빼고 물의 흐름을 막는 머리카락이나 물 떼 덩어리를 빼내곤 했었다. 숨을 깊이 들이 마 쉰 다음 힘껏 머리를 배수 판 쪽으로 밀어 넣었다. 손 끝 손톱으로 은색 배수 판 덮개 구멍을 잡고 살짝 들어 보았다. 검은 배수 구멍 틈 사이에 작은 나비 한 마리가 끼어 있었다.


“ 자기 오늘 수영 잘했어? 나도 수영 같이 배우면 좋을 텐데 ”

 아내는 함께하지 못함에 대한 궁금함과 내심 같이 수영을 하고 싶은 마음을 이야기했다. 아내도 운동에 관심이 많아 결혼 전에는 하프 마라톤을 뛰었고 결혼하고 출산 전에는 필라테스에 푹 빠져 누구보다도 운동을 열심히 했었다.


“ 어... 이제 접영을 시작했어... 생각보다 어렵더라”

 오늘 내 모습을 보았다면 아내는 엄청 웃었을 것이다. 그리고 왠지 김세아 수강생도 그때 웃었을 것 같았다.


“ 이번 주말에 애들 데리고 놀러 갈까? 미세먼지도 덜하고 애들이 좋아할 것 같아.”

 주말에 애 둘이랑 집에 있는 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차라리 나가는 것이 육체적으로는 피곤할지라도 정신 건강에는 휠 씬 좋기도 했다. 애들도 나가서 활동하는 것을 늘 원하고 있었다. 첫째는 놀러 간다는 말에 벌써 신나서 어디 가는지 물어보고 덩달아 둘째도 기분이 좋은지 방방 뛰었다.


 며칠 동안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상처가 아물려면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나름대로 나만의 이유로 마음의 아쉬움을 달랬다. 애꿎은 나비 귀걸이는 꽃을 찾지 못해 내 손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새롭게 배우는 접영은 그때 겪은 일 때문인지 자신감이 부족해서인지 쉽사리 익히기가 어려웠다. 수영을 처음 배울 때의 생기와 즐거움이 점점 줄어들었다.


 일주일일 정도 지났을까... 드디어 김세아 수강생이 나타났다. 강사는 괜찮은지 안부를 물었고 어색한 미소로 괜찮음을 알렸다. 여느 때처럼 부드러운 영법으로 수영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귀걸이를 어떻게 줄지 수영하는 동안 답 없는 질문을 계속했다. 수영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는 부리나케 탈의실로 갔다. 어디서 기다려야 할지 몰랐다. 혹시라도 지하 주차장으로 바로 가버리면 내일 수영 수업시간에 이야기해야 하나 하는 망설임을 이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입구 근처 의자에 앉아 기다린 지 10여분이 지났다. 몇몇 수강생들이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흰색 티셔츠에 밝은 하늘색 청바지를 입고 긴 머리를 늘어뜨리면서 나왔다. 더 선명하고 환해 보였다. 앉은자리에서 쉽게 발길이 떨어지진 않았다.


“ 저기요. 안녕하세요. 아침 수영반에서 같이 하는 수강생입니다.”

“ 혹시 저번에 귀걸이 수영장에서 잃어버리셨죠?”


 떨리는 목소리는 숨길 수 없었다. 손에 들고 있는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그냥 주기 뭐해서 집에 있던 작은 정사각형의 선물 상자 속에 귀걸이를 넣어 놓았었다.


“ 어떻게 찾으셨어요? 사실 그날 잃어버리고 수영장에 이야기는 해놨었는데 연락이 없어서 포기했었어요. 고마워요”


 어색함 주위를 둘러 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먼저 이야기했다.

“ 댁이 근처신가 봐요.”

 

 낮은 톤이지만 차분하고 상냥한 목소리였다.

“ 네, 5분 정도 거리에 그린아파트에 살아요.”

“ 댁은 어디세요?”

“ 저는 맞은편 서우아파트예요. 수영장에 아침마다 걸어서 오시겠네요?”


 몇 마디를 주고받은 뒤 말이 끊겼다. 긴장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버렸다.  

“ 딸아이는 괜찮은가요?”

“ 네?”

 순간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어떻게 알았을까 라는 목소리였다.


“ 지난주 수요일 아침에 꿈나무 소아과에 딸아이와 오셨길래요. 저도 아들 예방주사 때문에 갔었거든요”

 난 오해를 살까 봐 뒷말을 재빨리 이었다.

“ 네, 딸이 감기에 걸려서요. 제가 병원 데리고 잠깐 왔었어요.”


아파트 근처에 다다르자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오늘 고마워요. 내일 뵐게요.”

집으로 오는 길에 마지막에 들었던 말이 자꾸 생각났다.


 그 일후에 수영 수업이 마치면 난 연습하지 않고 곧바로 나갔다. 매일은 아니지만 서너 번 마주치면서 수영에 관해 이야기하고 애가 있다면 부담 없이 나눌 수 있는 자녀에 대해 이것저것 말했다. 5분여 정도 함께 걸을 때마다 집이 이렇게나 가까웠다는 것을 매번 더 실감했다. 이야기 중에 그녀는 한 달에 2번 정도 딸아이를 만난다고 했었다. 아마 남편과는 이혼하고 아이는 남편 쪽에서 키우고 있는 듯했다. 더 묻지는 않았지만 마음 한 편에는 이상한 안도감과 함께 나 스스로의 마음의 문이 저절로 활짝 열리는 것 같았다.


 오늘도 긴장감은 있었지만 주말에 안부를 묻고 접영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말할 때 나처럼 크게 긴장하지는 않았고 이따금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사실 내 나이에 각자 결혼한 남녀라면 인사만 하고 각자의 길로 가는 게 익숙한데 나도 나란히 걸어가는 것이 나만의 마음은 아닌가 하고 바보 같은 생각도 했다.


“ 지혁 씨 혹시 커피 좋아하세요?”

“ 좋아한 다 긴 보다 아메리카노 자주 마셔요. 주로 테이크아웃으로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 안 바쁘시면 커피 제가 대접해도 될까요? 저번에 귀걸이도 찾아 주셨는데 고맙단 말만 했네요.”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가늠이 안 되었다. 걸으면서 옆모습만 잠깐씩 봤는데 정면으로는 부끄러워서 보기도 힘들었다. 어쩌면 내가 살아서 직접 본 사람 중에 이런 예쁘고 우아한 외모를 접해본 기억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 네. 괜찮아요. 근처에 아시는 곳이라도 있을까요?”

 들뜬 마음을 숨길 수 없었는지 목소리 끝이 올라가면서 약간 갈라졌다.  


“ 아니요”

미소와 함께 그녀는 짧지만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제가 직접 내려 드린 다구요. 예전에 커피에 관심이 많아서 배웠어요. 괜찮으세요?”

그녀에 돌발적인 초대에 난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를 따라가면서 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고 어느덧 그녀의 집 앞에 와 있었다.


“ 집에 볼 건 많이 없어요. 잠시 앉아계시면 커피 드릴게요,”


 집 내부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전체적으로 물건들이 잘 정돈되어 있었고 분위기는 모던했으며 바닥은 헤링본 모양의 진회색 카펫이 덮여 있었다. 거실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화이트풍의 수납장과 TV 선반이 놓여있었고 양쪽에는 공기 정화 식물로 보이는 넓은 잎의 알로카시아와 몬스테라가 자리 잡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벽면에 프린팅 한 그림들이 곳곳에 걸려있는 것이었다. 그림풍이 주로 현대 미술 작품 같았다. 그중에서도 소파 뒤에는 내가 최근에 관심 있게 본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가의 초상>이 걸려있었다. 그림 속에서 붉은 재킷을 입은 한 남성이 물끄러미 물속에서 잠수하는 한 남자를 무심하게 쳐다보는 그림이었다.  


“ 이 그림 아세요? 지혁 씨 그림 좋아하시나 봐요.”


 난 그녀의 이야기보다 나와 그녀의 거리에서 놀랐다. 사람과의 거리로 어느 정도 친밀도를 알 수 있는데 그녀의 반발 티셔츠 끝이 마치 나의 팔에 닿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옆을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


“ 교육대학교 다닐 때 미술 과여서 그림을 자주 접하긴 했어요. 그림은 잘 못 그리지만요.”

내 말에 그녀는 웃었다.


“ 그래도 저희 집에 온 사람 중에 이렇게 이 그림을 지긋이 보는 사람은 처음인걸요.”

“ 보통은 잠깐 보거나 눈길도 안 주는데 지혁 씨는 좀 달라서요.”

“ 잠깐만요 커피 드릴게요.”


 그녀는 커피를 가지러 잠시 주방 쪽으로 갔다. 진한 커피 내음이 주방을 넘어 거실 공간을 가득 채웠다. 난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기된 나의 모습과 함께 매우 친절한 그녀 모습에 당황을 넘어서 그녀의 마음이 정말 궁금해졌다.


“ 지혁 씨는 그림에서 물 밖 남자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녀는 물음에 내가 약간 뜸을 들이자 먼저 이야기했다.


“ 전 자기 자신의 마음인 것 같아요. 물 밖에서는 세상의 많은 규범을 지켜야 하잖아요. 사회적 위치에  얽매여서 어쩔 수 없이 보이는 것 때문에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에 맞는 옷을 입잖아요. 대신 물속에서는 얽매일 필요도 없고 누군가의 목소리도 들을 필요 없으니 온전하게 자신의 욕망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잖아요.”


그녀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그림을 보고 있었다.


“ 전 가끔씩 저 물속 남자처럼 살고 싶어요.”

 그녀는 그림을 보면서 자신이 아직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말투나 동작 하나하나가 마치 내 귀에는 자신의 마음이 열려 있으니 언제든지 더 깊은 관계를 원한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 카톡 ” “ 카톡 ”

긴장감을 깨트리며 메신저 소리가 크게 울렸다.


‘자기.. 오늘 소언이 유치원에서 놀다가 넘어져서 다쳤데요. 지금 하원 바로 부탁해요 ㅠㅠ’


 메시지를 확인한 후 김세아 수강생에게 사정을 짧게 이야기하고 허겁지겁 나왔다. 둘째 녀석은 이마를 찧어 크게 혹이 나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인상을 찡그리더니 곧바로 울음을 터트렸다.


“ 아빠. 아빠.”

 혀 짧은 목소리로 나를 부를 때 마음에 안쓰러움이 몰려왔다.


저녁때 아내는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아내는 연신 둘째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울상이 되었다.

“ 자기. 나 수영 이제 그만 갈래. 두 달 정도 하니 몸도 힘들고 소언이 점심 먹고 빨리 하원 시킬게.”


내 말에 아내는 깜짝 놀랐다.

“ 소언이 많이 힘들 텐데 괜찮겠어?”

조심스럽지만 나의 결심을 말리고 싶진 않아 보였다.

“ 그냥 자꾸 다치고 예전에 첫 째 녀석보다 둘째한테 요즘 너무 소홀하게 대한 것 같아서.”


 그날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아까 본 그림에서 그 남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물속에 자유로운 모습이 부러워 그대로 뛰어들면 입고 있던 옷은 다 젖어버릴 것이다. 옷을 말리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버려야 할지도 모를 테니까.


‘어쩌면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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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li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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