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울산 다운초(4)
아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잘 표현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가끔식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왜 그런일이 생기는지 잘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많은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첫 담임때 난 활달하고 명량한 외향적인 아이에게도 자주 눈이 갔지만 반대로 소극적이고 뭔가 부족한 학생에게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아마 나의 초등학교 학창시절때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모습이 생각나서는 아닐까......나의 실수가 부끄러웠던 때가 기억난다.
찬수(가명)야 넌 나중에 커서 뭐하고 싶니?
저번에 소개했던 영철이도 많이 소극적이고 보살핌이 필요했지만 찬수는 휠씬 더 심했다. 우선 공부가 거의 되지 않았다. 5학년인데 읽기도 겨우하고 쓰는 것도 서툴렀다. 수학시간에 계산이나 응용은 거의 손놓다시피 했다. 요즘에는 학생기초생활 조사서에서 부모님의 직업이나 가정 형편에 대해서 알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당시에는 조사서에서 좀 더 학기초에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찬수는 조손 가정이었다. 부모님이 안계시고 할머니랑 살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옷차림도 그렇고 여러 부분에서 눈에 많이 띄었다. 지금도 많은 학생들을 만나지만 제일 안타까운 경우가 조손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는데 아무래도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난 복직후 첫 담임의 열정이 넘쳐났다. 수업은 재미있게 하려고 힘썼고 늘 아이들과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고 싶었다. 그렇다보니 내눈에는 찬수처럼 부족해 보이는 아이를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마음이 굴뚝 같았다. 찬수는 게임을 많이했다. 커서 프로 게이머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반 대부분 친구들은 게임을 다 찬수보다 잘했다. 최근에도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프로 게이머가 되고 싶다고 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 난 기필코 말린다.(?) 나도 게임을 많이 해봤지만 프로 게임어를 할 실력정도면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성격이 못됐고(?) 남들에게 이기고자 하는 투쟁심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대부분 무기력한 반 아이들은 그 세계를 공부가 필요없는 도피처로 생각한다. 어느 한주에 찬수를 오후에 붙잡고 매일 20~30분 이야기 했다. 우선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몰랐다.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찬수는 성격이 둥글고 양보를 잘했다. 그리고 동물을 아주 좋아했다. 난 사육사 관련 정보를 찾아 찬수에게 잔소리를 엄청했었다. 찬수는 선생님이 왜 이러는지 몰랐지만 자신에 대한 관심은 잘 받아 들였다.
야... 박찬수!! 또 안쓰냐? 넌 왜 안쓰는데... 선생님이 맨날 이야기 하잖아...
수업시간에 찬수는 필기를 잘하지 않았다. 쉽게 연필을 놓거나 몇자를 겨우 쓰고 눈을 찡그리고 멍하니 있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하루 종일 수업을 하다보면 이런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늘 다그칠때 마다 찬수는 고개를 숙이거나 어색하게 웃었다. 나의 관심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찬수의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개선은 커녕 내 속만 끓였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과학 전담 선생님께서 찬수가 시력이 나쁜거 아니냐고 나에게 물어 봤다. 눈을 찡그리고 글자를 잘 못쓰는 것이 아마 안보여서 그런게 아닐까하고 말씀해 주었다.
'아뿔사'
찬수는 키가 제일 커서 항상 반 뒷쪽에 앉았다. 나의 무지가 한 아이의 상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사건이었다. 찬수를 불었다.
" 찬수야, 네 자리에서 글자가 잘 안보이니?"
우물쭈물하더니 녀석이 대답했다.
" 네, 선생님 여기서 잘 안보여요. 선생님 글씨가 흐릿해요."
찬수의 대답으로 내 마음은 미안함으로 가득 찼다.
" 왜 말 안했어? 선생님이 자꾸 머라했잖아."
" 괜찮아요, 원래 잘 안보였어요."
찬수는 멋쩍게 웃었다. 난 곧바로 할머니께 문자를 남기고 찬수에게 안경을 쓰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몇날 며칠이 지나도 찬수의 얼굴에는 안경이 없었다.
" 찬수야, 너 왜 안경 안써?"
대답을 시원하게 못하고 할머니께 이야기 했다고 대충 얼무버렸다. 난 미안함과 답답함에 견딜 수 없었다.
" 마치고 좀 남아라 찬수야."
안경을 쓴 찬수는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난 찬수를 이끌고 학교 근처 안경점에 갔다. 안경점에서 시력을 재니 꽤 눈이 나빠져 있었다. 찬수는 마냥 신기한듯이 안경점 안을 돌아 다녔다. 난 찬수에게 검은 뿔테 안경을 마쳐줬다. 찬수는 안경을 쓰니 잘보인다고 좋아했다. 다음날 찬수가 안경 쓴 모습을 보자 아이들도 찬수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갔다. 평소 수업시간에 얼굴을 찡그리고 밑에만 자꾸 보던 녀석이 아는지 모르는지 수업시간에 좀 더 앞을 자주 보는 느낌이었다. 성적은 나아지지않았지만 표정이 밝아 졌다. 나의 무지로 시작된 한 학생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해결되니 나도 마음이 좋았다. 몇주가 지나고 찬수 할머니께 전화가 왔다. 몸도 성치 않고 평소에 일하시고 늦게 오시느라 찬수에게 신경을 많이 못써 줬는데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찬수야....너도 영어 페스티벌에 나가자.. 쌤이 상 줄께...
그때 우리 학교는 영어 연구학교였다. 우리반에는 필리핀에서 조기 유학을 한 개구쟁이 녀석이 있었다. 물론 영어를 잘했다. 그래서 영어 발표 패스티벌에 나가서 5학년 중에 당당히 1등을 했었다. 나도 평소에 연극에 관심이 많아서 열심히 지도했다. 그때 난 찬수를 어떻게든 발표 팀에 넣고 싶었다. 이유가 있었다. 작년부터는 안보이지만 아이들 생기부에 보면 초등학교 입학부터 지금 학년까지 상받은 목록을 볼 수 있다. 5학년 정도면 상하나쯤은 받은 흔적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찬수의 수상란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우선 찬수를 꼬득였다. 찬수는 영어를 아예 몰랐다. 난 나오기만 하면 상을 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이 녀석이 소심하고 영어는 더욱 싫어해서 자꾸 연습시간에 도망갔다. 난 찬수에게 영어로 말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역할 중에 동물로 나오는 소 울음소리를 내기만 하면 된다고 몇번이고 일렀다. 그제서야 찬수도 연습을 했고 다른 아이들도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연극에서 찬수는 소 울음 소리를 구슬프게 '음메'라고 내고 아이들과 즐겁게 잘 마무리했다.
몇주뒤 학교 상이 나왔다. 난 찬수에게 상을 주면서 칭찬을 했다. 찬수도 처음 받아보는 것이라 어리둥절했지만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러나 마칠때쯤 상장을 보관하는 방법을 몰라 책상위에 꾸찢꾸찍하게 구겨진 상장을 보고 난 또 잔소리를 하고 말았다.
그 후 찬수는......
난 첫 제자들이 너무 좋아 대구 온 2년 동안 방학 때마다 울산에 가서 아이들을 만났다. 그런데 찬수는 오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늘 같이 오라고 이야기했지만 전달이 잘 안되거나 챙겨 줄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몇년이 흘렀다. 싸이 월드의 유행이 지나고 페이스북이 뜨기 시작했다. 첫 제자들은 벌써 중3이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찬수 녀석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멀끔하게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우스겟 소리로 친구들과 대화하는 모습이었다. 난 멀쩡하게 잘 큰 찬수의 모습을 보니 그 당시 찬수를 향한 나의 걱정이 살짝 부끄러웠다.
누구나 교직을 시작하면 열정이 넘친다. 때로는 그것이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찬수는 그때 선생님을 어떻게 생각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