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과 밤, 두 개의 일기
1. 아침
오전에 은행에 볼일이 있어 잠시 들렀다 출근하는데 색깔이 조금 변한 메타세쿼이아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아침 유독 떨어진 기온도 계절이 변했다는 걸 느끼게 했지만 조금씩 잎을 물들여가는 메타세쿼이아는 가을이 왔다는 느낌을 더없이 주었다.
언제 저 짙푸른 잎의 색을 저렇게 바꾸었을까?
도시의 나무들 중 메타세쿼이아는 낙엽을 늦게 떨어트리는 편에 속한다.
은행과 단풍과 플라타너스와 벚나무들이 잎을 모두 떨어트리는 동안 메타세쿼이아는 자신의 잎을 천천히 붉은 노랑으로 바꾸고 찬바람이 몇 차례 불고난 후에야 그제야 잎들을 떨어트린다.
붉은 노랑으로 물든 그 잎도 아름답지만 잔잔한 잎들이 몇 날에 걸쳐 수수수 떨어지는 모습도 아름답다.
조금 과하게 비유하자면 가을의 벚꽃이라 해도 괜찮을 것이다.
늦은 출근길엔 신호등과 자동차와 건물과 하늘과 메타세쿼이아가 함께 있었다.
나무도 부지런하지만 도시의 사람들도 부지런하다.
어떤 이는 운전을 하고 어떤 이는 걸어가며 타인은 알 수 없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어느새 물든 나무에 때때로 경이로움을 느끼듯 나무도 사람을 보며 그런 느낌을 가질 것 같다.
만일 나무가 자신의 반복되는 일상을 잠시 쉬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말이다.
아무것도 없던 공터는 어느새 건물이 뚝딱 지어져 있을 것이고 젊었던 사람은 늙고 어렸던 사람은 자라 있을 것이다.
쓸쓸히 걸어가는 사람도 볼 것이고 웃으며 걸어가는 사람도 볼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는 다르지만 인간들 역시 자신처럼 존재하고 살아가고 늙어감을 생각할 것이다.
비록 자신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로 늙어가겠지만.
'당신의 가을이 아름답기를'
이렇게 적으며 나의 친구에게 사진을 보냈다.
너의 가을이 아름답길 바라며 나의 가을도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그렇게 기억되는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다.
2. 밤
해가 많이 짧아졌다.
오후 6시를 조금 넘겼음에도 주변은 벌써 어둑하다.
아마 6시 30분쯤엔 완전히 어두워질 것이다.
깜깜해진 도로를 운전하며 퇴근하며 아침에 보았던 메타세쿼이아가 있던 도로의 풍경이 떠올랐다.
지금은 그 풍경과 사뭇 다르다.
도로엔 발갛게 조금씩 물들어가는 나무가 보이는 대신 길게 늘어선 자동차의 후미등만 잔뜩 보이고 있다.
오늘은 금요일.
불금이라 불리는 날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차량이 더 많은 것 같다.
내일도 모레도 일을 나가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들 중 대다수는 연휴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차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평소보다 서두르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1시간 정도 차의 후미등을 보며 달리고 있자니 문득 사람은 서로 함께 위해줄 수밖에 없는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인류라는 종은 지금껏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저 많은 차들은 각자의 자리로 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얽혀있고 위하고 있는 자신만의 자리로 말이다.
우리는 서로 얽혀있다.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이 한데 뒤섞여 절대 풀 수 없는 타래로 엉켜 들어 모두가 함께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평생 무언가를 배우고 무언가를 잊으며 또 무언가를 가지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을 통해 얻은 지식과 지혜를 서로 나누고 가르치고 배우며 살아간다.
잘못된 지식과 지혜도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는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나누려고 한다.
그 나눔이 혹 잘못된 것이라도 적어도 그것을 나누는 사람의 의도는 아마도 선한 것일 것이다.
가르치지 않는 지식과 베풀지 않는 지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경험을 공유하고 지식을 나누고 계승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혼자만의 생각이 도대체 무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만일 사람이 혼자만의 지식과 지혜에 조용한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였다면 애당초 인류는 공룡과 함께 멸종했을 것이다.
결과가 어떻든, 결국에 우리의 의도만큼은 선함으로 서로를 감싸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족하면 부족한 만큼, 어설프면 어설픈 만큼, 잘못되면 잘못된 만큼 서로를 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른 것들이 옳은 것으로 뒤바뀌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최초의 의도만큼은 선한 것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인간이 지금까지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은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