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1월 04일
출장을 가는 날 아침 늦잠을 잤다.
동료의 전화가 아니었으면 일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지난밤 자다 깨어서 배 반 개를 먹고 한 시간을 이리 뒹굴 저리 뒹굴거렸던 탓이다.
대충 세수만 하고 나서는데 부은 눈이 느껴졌다.
느낌상 점심이 지나도록 부어있을 것 같다.
어느새 얼굴의 붓기가 잘 안 빠지는 나이가 된 것이다.
첫 번째 목적지인 순천에 도착해 거기서 일을 하는 분들과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일을 마쳤다.
가끔 이런 의례적인 말들을 상대와 주고받다 보면 상대가 혹시 게임 속에 나오는 NPC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서로 정해진 말들을 정해진 패턴으로 하고 나면 상대는 다시 상대의 세계로 돌아가 또 다른 여행자가 말을 붙여주길 기다리고 나는 또 나의 던전으로 모험을 가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이곳에 다시 오는 날까지 그분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NPC일수도 있겠지.
이곳에 오는 동안 평소보다 좀 얌전히 운전한 것 같아 내심 마음이 조금 좋다.
덕분에 늦잠으로 상했던 마음이 약간은 풀어진다.
근처에 처음 보는 식당이 있어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는데 맛은 그저 그렇다.
성의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그런 음식이다.
좀 늦게 식당을 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음식들이 좀 식어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일하는 분들은 친절해서 그 맛에 기분 좋게 식사를 했다.
카운터를 보는 아저씨는 무료해서인지 유튜브를 보고 계셨다.
요즘은 다들 유튜브를 보는 것 같다.
성의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밥을 친절함에 기분 좋게 먹고 마찬가지로 친절한 옆가게에서 커피를 하나 사서 다음 목적지인 광주로 향했다.
가는 동안 녹지 않은 눈들이 제법 보였다.
지난주 눈이 많이 오긴 왔나 보다.
광주에서의 일 역시 일사천리로 끝내고 마지막 목적지인 전주로 향했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기온이 좀 떨어졌다.
낮에는 차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제법 따뜻했지만 이제는 히터를 좀 켜지 않으면 발이 시려올 정도의 날씨가 되었다.
전주에서의 일 역시 무탈히 끝나 근처에 숙소를 잡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출장땐 늘 그렇듯 모텔을 잡고 편의점에 들러 도시락과 얼음컵 커피를 하나 사서 다시 모텔로 돌아왔다.
신기한게도 편의점 직원분 역시 엄청 친절했다.
오늘은 내게 친절 천사가 오는 날인가 보다.
출장때 저녁을 도시락으로 하는건 그게 제일 편해서이다.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되지만 굳이 식당을 찾는 것도 귀찮고 모텔에서 그냥 도시락을 먹는 게 제일 편해 출장의 마지막 식사는 늘 도시락이다.
얼음컵 커피는 욕조에서 먹으려는 용도이다.
출장, 특히 겨울 출장에는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그고 아이스커피를 마셔주는 맛이 정말 좋다.
뭔가 천만장자가 된 느낌이랄까?
출장때마다 모텔에 숙박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또 하나 있다.
욕조에 몸을 담글 때에는 샤워를 다 하고 나서 담그는 게 더 좋다는 것이다.
예전엔 욕조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씻었는데 그것보단 씻고 욕조에 몸을 담갔다 나올 때 그냥 한 번 샤워기로 몸을 씻는 게 훨씬 기분이 좋다.
다들 아는 것이었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이 비밀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거기다 아이스커피까지 있으면 더할 나위가 없다.
오늘은 일 외에 새해 목표로 해야 할 개인적인 다른 일정도 있었지만 시간이 늦어 절반쯤은 하지 못했다.
그래도 몇 가지라도 놓치지 않고 해서 그리 나쁜 날은 아니다.
이제 다이어리를 쓰고 명상을 하고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이렇게 오늘의 시시한 하루가 또 지나간다.
시시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