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1월 07일
저번주부터 목 뒤, 귀, 구레나룻 부근에서 길어진 머리가 느껴지며 지저분하고 부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싫어하는 것 중 하나인 이발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아니 이놈의 머리는 아무것도 안 하는데 왜 이렇게 꼬박꼬박 길어지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나는 전형적인 대한민국 탈모인의 한 사람으로 남들보다 머리가 몇 배는 더 없는데도 말이다.
탈모를 주려면 머리가 길어지게 하지 말던지 머리가 길어지게 하려면 탈모를 주지 말던지.
이러니 신이 공평하지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래도 탈모로 스트레스를 받진 않는다.
빠지는 체질이라 빠지는 거니 거기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다.
아예 없다고 할 순 없겠지만 탈모로 스트레스를 겪는 주변 분들에 비하면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수준이다.
게다가 내가 또 브루스 윌리스나 빈 디젤, 제이슨 스타뎀처럼 은근 탈모가 어울리는 스타일이기도 하다(는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하기 싫은 이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지저분한 느낌을 계속 가지고 살아갈 순 없으니 하기는 해야 한다.
마침 오늘 회사도 일찍 마치고 해서 저번주부터 (하기 싫지만)하려고 했었던 이발을 하기로 했다.
이발할 때가 되면 작년부터 집 근처 아파트 작은 상가에 있는 미용실에 간다.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머리가 빨리 자라는 편이 아니라 보통 한 달 반에서 두 달에 한 번 정도 이발을 하니 자주 간다고는 할 수 없겠다.
미용실은 상가의 2층에 위치해 있는데 특이하게도 2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 벽 쪽에 센서가 부착되어 있어 누군가 2층으로 올라오게 되면 '딩동'하는 차임벨이 울리게 된다.
처음 이 미용실에 왔을 때 그 소리가 되게 커서 좀 놀라기도 했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 소리 때문에 그곳에 오는 손님 절반정도는 커트를 포기하고 돌아갈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선 대기하는 시간이 거의 없다.
미용실은 50대 중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인상 좋은 여성 원장님이 혼자 운영하시는데 손님이 두 명 이상 있는 걸 본 적이 없다.
내가 이용하는 시간이 특히 손님이 없을 때라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오늘도 역시 미용실엔 아저씨 한 분만 커트를 하고 계셨는데 십 분정도 기다리니 내 차례가 돌아왔다.
그렇지 않아도 귀찮은 이발인데 많이 안 기다려서 좋다.
잠시 후 미용실 전용 의자에 앉아 목수건과 천을 두르고 의례적인 인사와 형식적인 안부들 몇 마디를 한 후 이발이 시작되었다.
앞서 얘기했듯 나는 탈모인이고 그것에 관해 크게 스트레스가 없는 편이라 헤어스타일에도 크게 관심이 없다.
커트를 하시는 분이 나보다는 머리에 대해 잘 알 것이고 경험도 많으실 것이니 그냥 목 뒤와, 귀, 구레나룻에 걸리는 느낌이 없게끔 잘라만 주면 오케이다.
그래서 머리를 어떻게 하실 거냐는 질문에 내 대답은 항상 "짧게요"이다.
이때까지 그렇게 머리를 맡겨서 내가 불만이었던 적은 없다.
학창 시절엔 쥐 파먹은 머리로 만들었다고 해서 집에 돌아와 몇 번 혼난 적은 있지만 말이다.
이 미용실도 이제 일 년 정도 다니니 따로 얘기 없이 의자에 앉기만 해도 알아서 커트를 해주신다.
한 곳을 계속 다니면 이게 참 좋다.
그런데 머리를 깎을 때면 미용사 분들은 종종 내 머리를 보고 '머리가 좀 풍성해진 것 같다'라고 얘기하는데 이게 일종의 립 서비스인지 진심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건 이 미용실도 그렇고 저번에 다녔던 곳도 그랬고 그 저번에 다녔던 곳도 그랬으니 말이다.
오늘도 역시 원장님께선 내 머리를 보고 머리가 풍성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내 머리숱이 더 늘어난 것 같지는 않다.
만일 그분들의 말처럼 내 머리숱이 풍성해지고 있었다면 지금쯤은 라푼젤이 되어 있겠지.
아무튼 이발이 시작되고 전기 이발기가 윙하고 돌아가며 머리를 잘라내기 시작한다.
내 비록 머리숱도 없고 남은 머리는 짧기까지 하지만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느낌은 난다.
그리고 그 느낌이 참 좋다.
그 때문인지 이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느낌이 나는 것과 동시에 슬슬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아아 머리를 깎을 때 쏟아지는 그 잠의 달콤함이란....
머리를 깎을 땐 정말 모든 걸 다 놓아버리고 침이야 흐르든 말든 입을 반쯤 벌린 채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리고 싶은 유혹에 휩싸이게 된다.
하지만 지성인이고 문화인이며 사회적 지위와 명성이 있는 민주사회의 일원으로서 그런 낯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줘서는 안 된다는 이성이 강력하게 작용해 쏟아지는 잠과 힘겨운 사투를 벌인다.
오늘도 잠과 이성 사이에서 얼마나 피비린내 나는 사투를 벌였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머리를 깎는 중간중간 몇 초간은 나도 모르게 의식이 날아가버리곤 했다.
아아 내 소원 중 하나는 한 시간 정도 머리를 깎으며 세상모르게 잠드는 것이다.
그렇게 꿈과 현실을 오가다 보니 어느새 커트가 끝이 났다.
어쨌든 이번에도 이성이 승리했다.
낯부끄러운 모습은 안보였으니 말이다.
아니 나 혼자만의 생각인가?
머리를 감고 거울을 보니 깔끔해진 모습이 환하게 보인다.
느낌도 좋다.
머리를 깎고 나면 머리카락이 잘라져 나갔다는 그 느낌이 있다.
머리카락 끝이 시원하고 좀 예민해진 그런 느낌 말이다.
이렇게 이번 이발도 끝이 났다.
커트 상태를 보니 다음 이발은 한 달 반정도 뒤가 되겠다.
그때까진 또 귀찮을 걱정 없이 지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