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1월 24일
자정이 되어가자 바깥에서 바람 몰아치는 소리가 거세게 들려온다.
닫아놓은 문이 흔들거리고 아파트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짐승의 울음마냥 윙윙거린다.
몇 차례 안전문자에서 알려주었듯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려나 보다.
오랜만에 믹스커피를 타서 마셔본다.
예전엔 믹스커피를 꽤나 즐겨마셨었다.
하루에 열 잔 넘게 마시는 것이 기본이었으니 제법 마신축에 속한다고 해도 괜찮으리라.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아메리카노의 맛을 알고 나서부터는 신기하게도 믹스 커피를 딱 끊었다.
대신 요즘은 아메리카노를 대여섯잔씩 마시고 있다.
이젠 이것도 화장실을 너무 자주 가게 되어 좀 줄이려고는 하고 있지만.
조금 전 브런치북 하나를 읽다 잠시 울었다.
지구 사는 까만별 작가님이 쓴 '8학년 국민일기'란 글이다.
엄마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야기를 딸이 쓰는 형식의 글인데 너무 좋은 글이었고 감동적인 글이었다.
울 때가 좀 되었다고도 생각은 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괜시리 슬픈 노래가 자꾸 맴돌고 입으로도 수시로 흥얼거리며 다녔었으니까.
나는 가끔 운다.
영화를 보다가도 울고 드라마를 보다가도 운다.
어느 날 그냥 슬픔이 차여 올라와 울기도 한다.
슬픔 역시 다른 감정들처럼 가슴 한쪽에 조금씩 쌓인다.
평소엔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다 가슴의 눈물통이 찰랑거릴 때쯤 작은 돌 하나라도 그 통에 담기면 마침내 쌓아왔던 눈물이 흘러나오게 된다.
간혹 작은 돌이 아니라 큰 돌이 하나 떨어지는 날엔 세상 서럽게 펑펑 울기도 한다.
운다는 게 부끄럽지는 않다.
부끄러울 일이 아니니깐.
눈물통을 비우고 나면 얼마간은 후련해진다.
나도 모르게 눈물통으로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좀 더 젊었을 때 지금은 좀 떨어져 지내는 나의 벗은 내가 가만있을 때면 슬퍼 보인다고 했다.
딱히 슬픈 이유는 없었지만 항상 무언가 슬픔의 감정이 얼굴 한쪽에 드리웠었나 보다.
그때나 그전의 사진들을 보면 내가 봐도 슬퍼 보이기는 하다.
지금은 예전만큼 슬픔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내게 있어서 '슬픔'이란 내가 가진 중요한 '감정' 중 하나이다.
'물'은 몸을 씻고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과장적인 비유일 수 있겠지만 '눈물'도 마음을 씻고 감정을 처음으로 새롭게 하는데 꼭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내게 슬픔과 눈물이란 그런 의미를 뜻하기도 한다.
조금 전 울다가 문득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내가 못 배웠다는 것이다.
'못 배웠다'라는 단어가 머리에 그냥 떠올랐다.
학교를 다니지 않아 못 배웠다는 게 아니라 삶에 있어 중요한 것들, 나 아닌 다른 이들을 대하는 자세, 당연히 겪었어야 할 경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이런 것들을 못 배웠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는 무지했고 눈치로 느끼는 걸 안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못 배웠고 그러므로 배워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앞으로 배울게 많아졌으니 심심하지는 않겠다.
자화상 하나를 방금 스케치 해봤다.
아직 슬픔이 좀 덜 풀린 것 같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오면 풀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