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개를 맞춰놓은 알람이 네 개쯤 울릴 때 억지로 눈을 떴다.
아침의 침대는 어찌나도 나를 사랑하는지...
일터를 나간다는 건 곧 사냥을 나가는 것과 같은 것.
사냥을 나가지 않으면 식량을 구할 수 없고 식량을 구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오늘도 나의 생존 본능은 나를 사랑하는 침대의 애원을 애써 무시하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바깥은 여전히 춥다.
스마트폰에는 기온이 영상 3도 정도 된다고 나와 있지만 체감온도는 영하 10도라고 말하고 있다.
기모 안감이 든 바지를 입었지만 후드려치며 들어오는 찬바람에는 역부족이다.
하늘이 파랗다.
오늘 내내 하늘이 파랬다.
차가운 연파랑 하늘.
겨울의 하늘은 어찌 저리 광이 나는 것처럼 보일까.
며칠 전 친구가 여행 중 보내온 사진이 생각이 났다.
동해 바다의 풍경이었는데 시린 하늘빛에 시린 바다빛이 겨울 바다의 바로 그 색깔이었다.
하얀 파도가 바다의 대부분을 뒤덮고 있는 걸로 보아 바람이 많이 불었던 것 같다.
비록 사진이었지만 겨울바다를 보고 있으니 생각들이 그 속으로 빠져들어가 한데 같이 녹아드는 듯했다.
그 시린 풍경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조금 전 연습 삼아 두어 장 그려봤는데 영 신통치 않다.
잔뜩 긴장하고 집중해 색을 칠했건만 그릴수록 그냥 알 수 없는 색덩어리가 되어버린다.
고고한 하늘빛은 빗자루로 쓸다만 바닥처럼 되었고 수평선을 따라 길게 드리운 구름은 형체가 사라졌다.
눈이 시릴 정도로 짙푸른 바다는 눈이 부끄러울 정도로 울고 있었고 북풍을 품은 하얀 파도는......도대체 파도를 어떻게 그리는 거지?
하긴 내가 언제 바다를 그려봤나.
습작이라도 한 번 해봐야겠다.
일기를 좀 자주 쓰기로 했다.
하루에 한 번씩은 아니라도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쓰려고 한다.
최근 다이어리를 쓰면서 손글씨를 쓰는 것도 꽤 괜찮은 것 같아 일기장을 하나 마련할까 하다 우선은 그 생각은 보류하기로 했다.
어제 길을 걷다 가로수 나무 가지에 새눈이 올라와 있는 걸 보았다.
봄이 어느새 유령처럼 겨울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