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 그리고 소, 마지막엔 용서와 용사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티비를 보지 않아 날씨는 거의 풍문으로만 알기에 오늘 비가 온다는 것도 친구가 얘기를 해서야 알게 되었다.
봄비인가? 봄비겠지.
창문을 열어놔도 그리 춥지 않으니 봄비가 맞는가 보다.
계절이 바뀔 때면 비가 자주 온다.
계절에 따라 비는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하기도 하고 추워지게 하기도 한다.
한여름의 장맛비는 본격적인 더위의 시작 전 몸풀기이기도 하고.
그러고 보면 비는 계절의 융단 같은건가 보다.
비가 깔아놓은 대지위로 계절의 여신이 사뿐히 그 길을 밟고 나타나니깐.
오늘도 출장이다.
밤 10시경 숙소를 잡고 들어와 근처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하나 사와 빗소릴 들으며 저녁을 해결했다.
출장의 저녁식사는 거의 편의점 도시락을 이용하는데 편리하기도 하고 나름 맛도 괜찮아서이다.
특히나 오늘은 저녁이 늦어 그런지 도시락 맛이 더욱 좋다.
평소엔 편의점 음식을 먹지 않지만 어째 출장길 도시락은 이다지도 맛있을까?
전자레인지에 돌린 인스턴트 도시락을 맛있게 먹고 있자니 문득 어제 친구가 한 얘기가 떠올랐다.
서로 다녀본 맛집에 관해서 얘기하는데 별안간 친구가 이렇게 얘길 했다.
'그래도 내가 니보다는 미식가지'
식당들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날아든 좀 뜬금없는 미식가 고백이기도 했고 평소 먹는 것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 취향이라고 생각하던 터라 갑자기 들어온 친구의 말에 한 순간 멍해졌다.
그런 식으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냥 '니가 더 미식가다'라고 깔끔히 인정했다.
실상 나는 맛에 있어서는 좀 둔한 편이다.
무얼 먹든 그리 가리지 않으니 말이다.
또한 좋아하는 음식이 거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거의 유일하게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 게 국수 정도다.
(안먹어본 신기한 이름의 음식들이 눈에 들어오면 궁금해지긴 하지만)
그래서 나는 누가 뭘 먹으러 가자고 하면 늘상 '아무꺼나'이다.
이건 상대를 배려한다기보다 실제 뭘 먹어도 딱히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든 내 입에는 적당히 괜찮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음식이 없다고 해서 싫어하는 음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깐 예를 들자면... 지금 미국의 뉴욕에 스티븐이란 31살의 사람이 있는데 나는 그 사람을 딱히 좋아하진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현재 뉴욕에 31살 된 스티븐은 분명 실존 인물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람을 내가 딱히 싫어하지도 않는다.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한 번 만나자고 하면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고 또, 일부러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할 이유도 없다.
비유가 좀 엉뚱하지만 음식에 대한 내 기호는 대충 그런 정도이다.
헌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이게 좀 웃긴 구석이 있다.
한 번도 그런 걸로 비교할 생각을 안 해봤지만 막상 친구가 자기가 더 낫다고 하니 내심 한구석엔 묘하게 인정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왔던 거다.
입맛, 그게 뭐라고 이런 마음이 올라오는지 참...
나도 아직 많이 애 같은가 보다.
신체 성장은 애저녁에 끝냈지만 마음 성장은 아직 갈 길이 한참 남은 것 같다.
오늘은 저번 글에 썼던 소 녀석도 생각났다.
착한 눈으로 흰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가던 녀석.
어제 자기 전 그 녀석을 한 번 스케치해보려고 갤러리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어디론가의 허공을 멍하니 본다고 생각했던 녀석의 눈이 실은 나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코뚜레에 사슬을 둘러 트럭 짐칸의 쇠울타리에 묶여있어 고개를 못 돌려서 그런지 눈알만 살짝 돌린채 꽤나 뻔뻔한(내가 보기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마치 '점마는 뭐꼬?'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말 그대로 소가 닭 보듯 하는 눈으로 나를 보는 소를 보자니 웃음이 났다.
그러고 보니 그때 그 길이 청도 쪽으로 가는 방향이었으니 어쩌면 소싸움에 나가는 녀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림을 그리려 보니 뿔도 제법 단단하고 날카롭고 어깨와 몸통의 근육도 튼실한 게 싸움소 같이 생긴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다시보니 생각외로 매력적인 녀석이었다.
방금 전 유튜브로 강의 하나를 반쯤 들었다.
다 듣고 싶었지만 이제는 잠도 자야 하고 일기도 써야 해서 나머진 내일이나 그다음 날 듣기로 했다.
김주환 교수가 하는 '용서'에 관한 강의였는데 강의를 들으며 끄적거린 낙서가 재밌어서 마지막으로 하나 올리고 자러 가야겠다.
강의는 아주 유익했다.
혹여나 링크는 그림 아래에 걸어두도록 하겠다.
오늘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내리는 비와 함께 따뜻한 봄 꿈 꾸소서.
https://youtube.com/watch?v=EUfrg6bFaIo&feature=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