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덕 Mar 02. 2023

치히로상

외로움과 공허에 관한 이야기

이미지출처: 네이버 영화

치히로상(2023)

제공: 넷플릭스

러닝타임: 131분

감독: 아이즈미 리키야

출연: 아리무라 카스미, 와카바 류야, 사쿠마 유이, 이치카와 미와코 등



넷플릭스에서 제공하는 '치히로상'에 대한 짧은 설명은 이렇다.



바닷가 도시락 집에서 일하는 전직 성 노동자
사람을 끄는 힘을 가진 그녀가 당신의 가슴을 훈훈하게 해 준다
야스다 히로유키의 잔잔한 치유계 만화 시리즈가 원작



설명만 봐서는 감동의 '휴먼 스토리' 같지만 이 영화는 '감동의 휴먼 스토리' 영화가 아니다.


'외로움과 공허'에 관한 영화이다.


그리고 그 속에 낯선 기괴함과 어둠이 있다.

넷플릭스의 설명처럼 치히로상이 '사람을 끄는 힘'이 있는 건 맞다.

사람들은 솔직하고 꾸밈없고 친절한 그녀에게 자석처럼 끌려온다.

그렇지만 그녀가 솔직하고 꾸밈없고 친절한 이유는 그녀가 따뜻하고 다감해서가 아니라 텅 비어 있어서이다.

그녀가 가진 외로움과 고독은 공허를 만들고 공허는 그 속에 말 그대로 무엇도 담지 않는다.

다만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과거나 미래에 붙잡혀 있지 않고 항상 현재에 머문다.


바닷가에 발을 담그고 석양을 바라본다던지 휴식 시간에 가게 뒤편 벤치에 앉아 바람을 느낀다던지 고양이를 흉내 낸다던지 하는 현실에 동화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치히로가 비어있어서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아 인식과 완전한 비움에 의해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에 의해 생긴 가슴속 공허로 인해 현실밖에는 머무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공허는 너무도 커 과거도 미래도 담을 수 없이 그냥 지나가버리기 때문이다.

아니 현실에 머무른다기보다 그저 찰나를 지나간다고 보는 편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과거와 미래와 마찬가지로 현재 역시 그 공허를 그저 지나갈 뿐이니까.


치히로가 일했던 마사지 가게의 점장은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마치 '유령' 같았다고 회상한다.

그녀에겐 생명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삶에 대한 욕구'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죽을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살아도 그만이었고 죽어도 그만이었다.

삶과 죽음은 치히로에겐 경계 없이 똑같은 것이었다.

그녀가 마사지 가게에 일하게 된 것도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그녀가 찾았던 그 시간 그 거리에서 그곳만이 간판에 불을 밝혀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그런 생각도 없었을 테지만) 쓰러질 때까지 걷다가 그저 종말을 맞으려다 우연히 불이 켜진 가게에 발을 들였고 그곳이 마사지 가게였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들른 곳이 만일 CIA나 MI6 같은 곳이었다면 틀림없이 그녀는 스파이나 암살자가 되었을 것이다.

어벤저스였다면 히어로가 되었을 것이다.


치히로가 어느 노숙자를 대하는 태도 또한 그러하다.

누구나 피하거나 무시하는 존재인 노숙자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가 말을 건네고 도시락을 주고 집으로 데려와 목욕도 시켜준다.

노숙자가 아니라더라도 낯선 존재를 조금의 경계도 없이 그토록 무방비하게 받아들인다는 건 적어도 내가 보기엔 정상적인 행동은 아니다.

텅 비어있기에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으면 좋겠지만 사실 그녀는 그 모든 게 아무렇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해도 좋고 저렇게 해도 좋을 뿐이다.

다만, 어린 시절 그녀의 외로움에 잠깐의 빛을 보여준 '치히로'란 여인 때문에 그녀는 그녀와 같은 외로움을 가진 사람에게 자신만의 명함을 내미는 것이다.


그녀의 공허가 가족, 그중에서도 엄마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건 영화에서 시사하지만 그게 정확히 어떤 이유였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치히로는 왜 그토록 외로워했을까?

왜 그토록 텅 빈 사람이 되어야만 했을까?

자신과 이해하고 공감할 누군가가 곁에 없었기 때문일까?



'우리는 모두 인간이라는 상자 속의 외계인이다'
그래서 사람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각자 다른 별에서 왔으니까


치히로가 마사지 가게에 있을 때 오던 어느 손님의 말이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명함을 주었던 '치히로 상'의 기억과 '사람은 모두 외계인이라는' 인식.

어쩌면 치히로의 공허엔 단지 이 두 가지만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공허하면서도 자신과 비슷한 이에게 손을 내밀고 같은 별에서 온 존재가 누구인지 알아보는지도.

하지만 공허하기에 결국 그 모든 것들도 그녀를 통과해 버린다.

그렇지만 그 두 가지가 있기에 그녀는 공허의 한편에 어떤 목적의식을 분명히 갖고 비록 '유령'이기는 하나 아무렇게는 살지 않는 것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모두 문제 있는 가정을 가지고 있다.

고등학생인 쿠니코와 벳칭, 꼬맹이 마코토(이 영화에서 치히로 다음으로 좋았던 배우가 이 녀석이다. 정말 배역에 딱 어울리는 녀석을 도대체 어디서 찾았는지!!!), 잠깐 스쳐갔던 남자(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스미마셍ㅠㅠ), 벤또가게 주인인 타에씨 부부도.

점장과 바질 언니는 가정사에 대한 얘기는 나오지 않지만 혼자 지낸다는 부분과 치히로를 좋아하고 따른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들에게 가정적인 문제, 그리고 외로움과 결핍이 있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영화가 훈훈한 영화였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치히로를 제외하곤 그녀와 가까웠던 바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나름의 행복과 안정을 찾았지만 그들은 그저 풍경일 뿐이다.

마치 바닷가처럼.

치히로의 현재에 잠깐의 존재감을 느끼겐 해주지만 결국 지나가버리고 마는 그런 풍경.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치히로를 집중한다.

그래서 그녀의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해졌든 아니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만일 그녀가 바다 마을에 계속 머물렀다면 행복한 마무리가 되었을 것이고 훈훈한 영화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떠났다.

자신의 별에서 온 존재를 찾았다고 스스로 얘기했음에도 그녀는 떠났다.

또 다른 외계인들을 찾으러.

자신은 모르겠지만 자신의 안식처 역시 찾으러.


그러고 보면 그녀는 실상 현재에 머무르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의식은 어린 시절 도토리를 쥐고 있던 그곳에 갇혀있는 것이다.

그때 그녀의 존재 거의 대부분을 그곳에 두고 왔기에 그녀는 거의 껍데기만 가진채 살아갈 뿐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신과 같은 별에서 온 존재를 찾았음에도, 아버지 같은 존재 역시 만났음에도 머무를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그녀를 따뜻이 대한다 하더라도 그건 결국 껍데기의 그녀일 뿐이니까.

진정한 그녀의 존재는 과거에 못 박혀 있어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좀 우울하게 쓴 리뷰이긴 하지만 130분이란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았으니 충분히 재밌게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굳이 외로움이나 고독에만 치우치지 않고 본다면 나름 훈훈한 영화이기도 하다.

실제로 전반적으로 훈훈한 내용들도 많고 음악이나 풍경들도 참 좋다.

그렇지만 시체유기는..... 좀...

문화차이겠지만 일전 '행복 목욕탕'도 그렇고 사람을 그냥 파묻는다는 게 나는 기괴했다.

(그게 고독과 뭔 상관있냐 싶기도 하고....)

매거진의 이전글 패터슨(201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