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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12일

내 안의 신성(神聖) 혹은 영성(靈性)

by 천우주


때론 소소하고 때론 소소하지 않은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일들은 모두 나의 바람과는 아무 상관없이 일어났다.

지금의 내 모습도 내가 바란 모습은 아니다.

나는 보다 지적이고 보다 유능하며 보다 뛰어나고 보다 사랑받고 보다 존경받는 사람이어야 했다.

하지만 살아갈수록 나는 보다 평범하고 보다 눈에 띄지 않으며 보다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갔다.


파람.

하늘의 파람과 바다의 파람을 닮은 넓고 자유로운 존재.

끝없는 동경의 대상이며 전설과 생명의 시작인 존재.

그런 존재이고자 했지만 나는 하늘도 아니었고 바다도 아니었다.

그저 하늘의 파람 아래, 그리고 바다의 파람 곁에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 중 하나였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자신 있게 외치며 팔을 뻗어 하늘을 가리키던 손가락은 어느덧 굽어져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고개를 반쯤 숙인 채 땅을 바라보며 걷는다.

그리고 두 발을 가진 인간은 땅을 딛으며 살아가야 하는 거란 걸 알게 된다.

마음대로 되는 일이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오래전 내가 했던 기도가 하나 있다.

'더도 덜도 말고 행한 대로만 받게 해 주소서'

인과를 알고 겸손의 마음으로 한 기도는 아니었다.

불행이 가득하다 생각했던 내 삶에서 제발 내가 원하지도 않은 그런 불행만은 더는 없게 해 달라는 뜻의 기도였다.

주변의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지내고 있었고 내가 그런 환경이었으면 그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무언가가 되었을 거라는 생각의 기도였다.

그래서 더 좋은 조건도 바라지 않으니 그저 지금의 불행한 조건들만 좀 없애달라는 뜻의 기도였다.

그러면 내가 가진 알 수 없는 비범함으로 나보다 조건 좋은 그들을 쉽게 뛰어넘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의 기도였다.


기도는 현실이 되었다.

나는 내가 행한 일들의 결과를 고스란히 받았다.

그 결과들을 보며 내가 무엇을 하던 나는 그에 합당한 결과를 받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바라지는 않았지만 내가 선택하고 행동한 일들은 모두 그에 맞는 결과가 되어 내게 돌아왔다.

그것이 당연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평범함이 그리고 때로의 어리석음이 잘못된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뛰어남만이 평가받을 가치가 있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하늘은 하늘로서 존재하고 바다는 바다로서 존재하고 나는 나로 존재하면 되는 거란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만큼 불행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걸 알게 되면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세상 어떤 사람들도 자신의 삶 전부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며 살아가진 않는다는 걸.

내가 가진 고민들과 고통만큼 그들도 그들 각자의 고민과 고통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잘 지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를 유지하고 나를 잘 다독거리며 나와 함께 살아가는 게 우선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야 타인을 볼 수 있고 세상을 볼 수 있다.

증오와 질투에 사로잡히지 않고 볼 수 있다.


내가 지금껏 알아낸 건 그것이다.

내가 무엇을 하든 타인이 무엇을 하든 재산이 얼마가 있든 지위가 어떻든 그런 것은 모두 부차적인 것이다.

중요한 건 미움과 원망이 없는 것.

따뜻한 마음이 함께 하는 것.

내가 잘 지내야 너도 잘 지낸다는 것.


인간에겐 신성 혹은 영성이 있다고들 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삼위가 일체 하며 성령은 인간에게 깃든다.

곧 인간은 신성이 깃든 존재이다.

내가 곧 부처이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내 안에 신성과 붓다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내가 나와 함께하는 따뜻한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온기의 성질이 원래 그러하듯 따뜻함은 나에게서 바깥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늦은 밤 두서없이 글을 써봅니다.

내가 알아낸 것들이라곤 했지만 사실 아직 잘 모르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나는 아직도 때론 방황하며 때론 어리석습니다.

때론 나와 세상을 미워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잘 지내려고도 합니다.

나와 화해하고 세상과 화해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어쩌면 나의 방황과 어리석음은 끝이 안 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잘 지내보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부디 잘 지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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