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
주말,
오랜만에 약속이 잡혔다.
약속 시간이 되어 도착한 초저녁의 시내 거리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웃음과 활기가 만연했다.
오늘 만난 이들 모두 오랜만에 보는지라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고 서로의 근황을 얘기하며 떠들썩한 가게에 앉아 몇 시간 동안 먹고 마시며 이야기했다.
나는 떠들썩한 분위기 속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웃음과 스치는 체념, 그리고 그들만의 희망을 보았다.
만남이 끝나고 시내를 빠져나올 땐 이미 새벽이었다.
그리고 그곳엔 어느새 초저녁의 그 웃음과 활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거리엔 아까보다 더욱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왠지 그곳엔 처량한 웃음과 고뇌만 남은 듯했다.
다 늦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다른 삶을 살며 다른 고민들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이들의 기쁜 재회는 시간이 갈수록 어딘지 침울해지고 그 침울함을 떨치려 다시 애써 기운을 내고 호탕하게 웃는다.
좋은 직업을 가졌지만 가족 문제로 힘들어하는 이, 가정이란 틀 속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책임과 의무를 다잡으며 버티고 있는 이, 자신의 꿈과 희망을 실현하고 싶지만 어떤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 연인과의 문제로 고민하는 이, 자식들의 문제로 고민하는 이, 오늘 만난 이들 모두 그들의 가슴속에 남모를 슬픔과 고민이 가득했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현실을 버티고 살아가고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
결은 같을지라도 저마다의 느낌은 다른 고민들.
그렇지만 어느 하나 애쓰며 살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살아가기 위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노력하며 버티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고민이 작든 크든, 그것이 불필요한 것이든 의미 없는 것이든 상관없이 그들 모두는 세상에 던져져 자신이 배운 기술, 자신이 가진 능력을 다하여 나름의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약속 장소에 가기 전 커피를 하나 사러 들른 어느 커피점에서 모자를 삐딱하게 쓴 채 붉게 충혈된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야외 테이블에 앉아 나에게 택시를 잡아 달라고 정중히 부탁하던 어떤 사람도 그 번들거리는 눈 속엔 치열히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흔적이 있었다.
그렇게 각자의 자리, 각자의 세상에서 버둥이고 있었다.
오늘 만난 아는 이들과 모르는 이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당신의 어떤 슬픔이 당신을 이렇게 힘들게 만들었나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진 않았다.
나 역시 나의 자리 나의 세상에서 버둥이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스스로 잘 지내고 싶다.
잘되진 않지만 그렇게 하려고 한다.
그래서 언젠가 그게 된다면 나의 잘 지냄이 나와 관계를 맺는 이들 모두가 잘 지내는 것에 하나의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나의 슬픔과 고뇌가 옅어감에 따라 그들의 슬픔과 애씀도 하나 정도는 줄어들었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잘 지내려 한다.
뜻대로 되지 않아 다른 이들의 슬픔과 애씀을 줄이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나 하나는 도울 수 있으니.
집을 나서며 계단 밑 돌틈과 흙바닥에 어느새 쑥 자라 있는 엉겅퀴를 보았다.
며칠 전 내린 비로 쑥 자랐나 보다.
아마도 곧 제초를 당할 테지만 엉겅퀴는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지금 현재를 살고 있었다.
주어진 시간,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해 생명을 뻗어내고 있는 것이다.
강함이란 저런 것이 아닐까?
잘 지냄이란 저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