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것의 소멸
며칠 운동을 하지 않아 느린 달리기를 하려 공원엘 나갔다.
하늘엔 온통 먹구름이 펼쳐져 있었지만 비가 내릴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습하고 더운 날씨에도 긴 장마가 지루했는지 공원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공원의 공터엔 텐트를 가지고 나와 가족 단위로 야외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고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기를 하며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물놀이터로 탈바꿈한 놀이터엔 어른과 아이들이 어우러져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물을 첨벙거리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옆에 커다란 물총으로 물장난을 치는 어른들.
아이와 함께 물세례를 주고받으며 깔깔 거리는 가족.
어른 무리와 아이 무리 각자가 물장구를 튀기며 술래잡기를 하는 사람들.
순수한 놀이의 즐거움 앞에서 남녀노소는 모두 평등했고 그들의 얼굴과 웃음은 똑같은 표정과 소리를 내었다.
만일 지구에 처음온 외계인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인간의 연령대를 육안으론 구별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러 무리의 사람들을 지나치며 빠른 걸음과 느린 달리기를 반복하자 금세 땀이 차올라 옷이 젖어가기 시작했다.
풍경으로 보이는 것들을 스쳐 지나며 문득 '주는 것과 받는 것'이라는 게 무엇일까란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무주상보시'가 떠올랐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금강경에서 석가모니가 제자인 장로 수보리에게 행한 설법 중 들어있는 이 말은 '베푸는 것'에 대해 얘기한 문장이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에서
무주상(無住相)은 '상'이 없는 상태이고
'보시(布施)'는 '널리 이롭게 펼쳐 베푸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상(相)은 의식이든 현실이든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실재'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무주상보시를 보통 '집착 없는 베풂'이라고도 하고 '댓가를 바라지 않는 베풂'이라고도 한다.
무주상보시를 행함의 공덕에 대해 석가모니는 말씀하길
'무주상보시'의 공덕은 '감히 생각하여 헤아릴 수 없는 허공과도 같다'
라고 하셨다.
'허공(虛空)'
온 우주에서 가장 큰 것.
가장 비어있고 그 비어있음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그래서 가장 적지만 가장 많은 것.
지구의 모든 모래알보다 많은 온 우주의 별조차 그 앞에선 부끄러워지는 것.
아니 온 우주의 분자, 원자, 미립자를 모두 합한 것보다 방대하고 많은 것.
그 모두를 더한 크기를 초월하고 초월하여 더할 수 없이 커다란 것.
영원과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것.
언젠가 유튜브에서 법륜 스님의 영상을 보다 이 대목이 나왔을 때 나는 의아했었다.
'무주상보시'가 가장 높은 경지의 '베풂'이라는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한 인간이 베푸는 행위가 온 우주의 어떤 것보다 크다니!!
이게 말이 되나?
믿기지 않았다.
그때의 의문은 그때로 곧 사라졌고 사라졌던 그 의문이 오늘 달리는 도중 불쑥 떠올랐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과연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착도 없고 바람도 없이 베푸는 것을 넘어
아예 베푼다는 생각마저 소멸한 베풂.
존재 자체가 베풂으로 가득 차 있어 걸어가는 발걸음마다 베풂이 떨어지고 마주 보는 얼굴에서도 미소로 피어나는 베풂.
말을 하여도, 침묵을 하여도, 손짓을 하여도, 노래를 불러도, 걸음을 걸어도 그것 자체가 그저 하나의 '선함'이 되고 '평화'가 되며 '행복'과 '위로'가 되는 것.
오로지 자신이 가진 전부를 세상에 녹여내는 베풂.
한 인간이 그 정도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지는 차치하고 그런 존재라면 가히 허공에 비할 수 있지 않을까?
존재 자체가 오직 베풂으로 가득 차 있어 '베풂' 그 외에는 아무것는 존재.
그래서 모든 행동과 모든 행동 없음까지도 오직 베풂이 되는 존재.
베풂밖에 없어 베풂으로 가득찬 존재가 공(空)으로 가득 찬 저 허공과 다를게 뭐가 있을까.
그런데......
사실, 우리는 모두 그런 내면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베푼다는 사실을 모르니 베푼다는 인식조차 못할 뿐 아주 조금. 정말 사막의 모래 한 알 만큼이라도 그렇게 행한 적이 있지 않았을까?
무주상보시의 씨앗을 모두 품고 있지 않을까?
의문은 다시 다른 의문으로 넘어가고 생각의 초점들이 흐트러지며 사라질 때쯤 바람이 불어왔다.
아.. 시원하다
어느새 옷은 잔뜩 흘린 땀으로 젖어 있었고 땀이 흘러들어 간 눈은 따가워왔다.
그러던 중 갑자기 저기 어딘가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시원했다.
순간 그것이 바로 '무주상보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진 모른다.
어디서 끝날지도 알 수 없다.
그저 어딘가에서 불어와 어딘가에서 멎을 것이다.
나는 다만 그 중간 어디쯤에서 잠시 지나간 것이다.
때마침 달리는 중이었고 때마침 땀을 흘렸기에 한 줄기 바람에 시원함과 고마움을 느낀 것이다.
그 바람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바람이 나를 시원하게 하려고 분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를 시원하게 하였으니 나를 시원하게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를 위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공기 조차도 내가 숨을 쉬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무들도 내게 그늘을 제공하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짙게 드리운 구름도 내가 감탄을 하라고 깔려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달릴 수 있게 비가 내리지 않는 것도 아니며 나를 돕기 위해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바람 속에서 시원함을 느끼고, 공기 속에서 숨을 내쉬고, 햇볕 아래선 나무 그늘에 잠시 쉬기도 한다.
짙은 구름을 보며 감탄하기도 하고 비가 오지 않는 공원길을 편안하게 달리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무주상보시'의 세계 속에서 받는다는 인식도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받는것도 잊고 주는것 마저 잊는것.
모든 의도를 내려놓고 그저 가득찬대로 행해지는 것.
그 속에서 모든것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는 나.
참 놀라운 세상이고 놀라운 우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