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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덕 10시간전

7화 수련관 풍경

왜 태극권?


수련관은 늘 조용하다.
그렇다고 적막한 것은 아니다.


내가 다니는 수련관은 낡은 건물들이 오목조목 들어서있는 작고 오래된 동네에 위치해 있다. 삼면을 큰 도로가 둘러싸고 있고 한 면은 하천이 지나고 있는 갇힌 모양새의 이 동네는 크기 또한 작다. 하천과 도로가 싸고 있는 이곳을 골목골목 다 돌아보는덴 30분이면 충분하다. 그러다 보니 사람의 드나듦 또한 많지 않아 곳곳에 문을 닫은 상점들도 쉽게 눈에 띄고 철거가 예정된 오래된 빈 아파트는 조용한 이곳에 쓸쓸함을 더한다.

비록 조용하고 쓸쓸한 느낌을 풍기는 작고 오래된 동네지만 이곳 또한 사람 사는 곳이라 있을 건 다 있다. 식당도 있고 교회도 있고 슈퍼도 있고 마트도 있다. 작긴 하지만 시장이라 불릴만한 곳도 있고 목욕탕, 헬스장, 술집, 미장원 등의 시설들도 빠짐없이 들어와 있다. 갇힌 모양새의 작은 동네라 그렇지 걸어서 30분 내외의 거리에 시내 중심지와 대형마트, 학교와 병원 그리고 공원 등 도시의 편의 시설들이 모두 있기에 주거지론 별다른 손색없는 곳이다. 또한 이곳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화내고 즐기며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바로 이곳에 내가 다니는 태극권 수련관이 자리하고 있다.


수련관이 있는 건물은 조용한 동네에 걸맞게 조용하고 차분하게 서있다. 오래전 문을 닫은 가게의 간판이 여전히 걸려있고 건물 주변을 따라 여러 차들이 빙 둘러 주차되어 있다. 수련관을 들어서기 전 나는 항상 잠시 주춤하곤 한다. 새어 나오는 빛도 없고 들려오는 소리도 없어 아무도 없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는 달리 잠긴 것 같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에선 항상 사부님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내부로 들어서면 수련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붓글씨가 있는 표구와 작은 탁자, 그리고 두세 개의 작은 나무 벤치, 사무실 겸 응접실로 쓰이는 공간에 놓여있는 기다란 탁자와 그 위에 올려진 다기들. 수련관 한 켠의 크지 않은 책꽂이엔 여러 주제의 오래된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다. 불행히도 그중 내가 읽은 책은 없다. 작은 테이블도 하나 놓여 있는데 그곳엔 시립 도서관 마크가 붙은 대여된 책이 올려져 있기도 하다. 전체적인 풍경은 조용하고 편안하다. 특별한 가구나 장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여러 가지 집기와 가구들이 각자의 자리에 맞게 배치되어 있어 안정되고 균형 잡힌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낡긴 했다. 건물 자체가 낡았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바랬다'는 느낌을 주진 않는다. 오래되고 낡았지만 살아있고 움직이는 조용한 활기가 깃들어 있어 바래고 퇴색된 느낌은 없다. 아마도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사부님이 많은 고심과 수고를 들였으리라.


내부는 넓은 편은 아니지만 수련하기엔 충분할 정도의 공간이다. 수련생이 많다면 조금은 비좁겠지만  지금의 수련생 숫자론 충분한 넓이다. 그렇다. 이곳은 수련생이 많지 않다. 아직 자세히는 모르지만 수련생을 모두 합하고 사부님까지 더해도 채 열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 나이대가 있는 분들이다. 내 나이도 어디 가서 작다고 할 수 없는데 여기선 아마 막내뻘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론 아직도 막내 대접을 받을 수 있어 좋긴 하다(그렇다고 귀염을 받진 않는다).

가르치는 방식은 여느곳과 비슷할 것이다. 사부님이 먼저 동작을 선보이고 설명하면 수련생들은 그것을 따라 한다. 그 과정에서 교정해야 할 부분에 대해 교정하고 그 과정들을 반복하며 하나씩 하나씩 배우고 익혀나간다. 사람이 적어 좋은 점은 배우는 데 있어 일대일로 코칭받을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덕분에 좀 더 상세하게 동작들을 배울 수 있고 연습할 수 있다. 체득을 할 기회가 많은 것이다.

수련 시 복장은 자유롭다. 따로 지정된 도복이 있는 게 아니라 몸을 움직이기 편안한 복장이면 된다. 나는 주로 반팔티나 피케티에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수련을 한다. 덕분에 모두들 제각각의 복장이지만 그게 또 편안하고 자유로운 느낌을 준다.

승급이나 승단도 없다. 다만 협회 자체의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지도자 자격을 득할 순 있다. 그 외에도 자격을 득하는 방법이 몇 가지 더 있지만 이곳에선 그것보다 전통적 방식의 '인정'이 좀 더 중요성을 지니지 않을까 한다. 스승이 정식으로 '제자'를 인정하는 방식 말이다. 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다.


수련은 부드럽고 조용하게 진행된다. 태극권은 대개의 무술과 달리 기합이나 빠르고 격한 움직임이 없기에 큰 소리가 필요치 않다. 자신의 몸과 움직임을 관찰하고 느끼며 수련하기에 부드럽고 조용할 수밖에 없다. 때때로 수련자들의 움직임이 생각만큼 잘 따라와 주지 않으면 사부님도 답답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재촉이나 조급함을 표하진 않는다. 무술은 체득이니 움직이다 보면 될 거라고 말씀하실 뿐이다.

그래서 수련을 하는 내내 평온한 분위기가 유지된다. 그렇다고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느리고 천천히 움직이는 게 태극권의 수련방식이지만 이것도 무술이고 운동이므로 많은 에너지가 쓰인다. 빠르고 강하게 힘을 내진 않지만 천천히 확실하게 동작을 취하며 전신의 기운을 사용해야 하기에 보기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태극권의 장점 중 하나는 바로 천천히 하는 것에 있다. 그렇기에 부상의 염려가 없다. 더욱이 안 쓰던 신체를 구석구석 활용하게 되므로 건강 증진의 효과는 확실하게 있다. 부상의 걱정 없이 건강해질 수 있는 확실한 운동인 셈이다.

아직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대화를 못해봤지만 사람들도 좋다. 사부님은 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아낌없이 가르쳐주려 하고 수련하시는 분들은 모두 성실하다. 무엇보다 좋아해서 배운다는 게 느껴진다. 겉보기 화려하지도, 대외적으로 유명하지도 않은 태극권을 계속 수련한다는 건 어떤 이유에서든 좋아해서이리라.


수련관이 있는 동네는 도로와 하천에 막힌 작고 조용한 곳이다. 사람의 드나듦이 적어 쓸쓸함과 황량함도 배어나지만 들여다보면 이곳에도 있을 건 다 있고 많은 사람들이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쓸쓸함 속에 그곳만의 활기가 있고 생활이 있다. 갇혀 있지만 갇혀 있지 않고 조용하지만 적막하진 않다.

수련관도 그렇다. 늘 조용하지만 적막하지는 않다. 그 속에서 적은 숫자이지만 태극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모여 수련하고 있다. 그들의 움직임으로 이곳은 생기를 머금고 활기를 띤다. 오늘도 그곳에선 사람들이 부드럽고 고요하게 몸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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