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이야기
벗과의 짧은 대화로 시작된 '부자'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다.
한 두 달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던 글이었건만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고를 반복하다 석 달이 되고 넉 달이 되다 어느새 꽉 채운 9개월이 되었다.
글도 인생도 참 알 수 없다. 그래서 좋다.
이 글은 성공이나 부를 비판하려고 적은 것은 아니다. 부자가 되려고 하는 걸 폄하하거나 돈을 벌려 애쓰는 걸 질타하려 적은것도 아니다. 누구도 그것을 비난할 수 없다. 많은 돈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게 왜 비난받아야 할 일인가? 하고 싶은걸 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게 왜 잘못된 일인가? 나는 그럴 마음이 추호도 없다.
이 글을 통해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부자가 되는 방법이 꼭 하나만 있는 건 아니란 걸 말하고 싶어서다.
아울러 '부자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이 진정 나의 생각인지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보자는 것이다.
부자가 되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어쩌면 방법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돈을 버는 것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하고 있는 일이 내가 좋아하는 것인지 알아보는 게 먼저일 수 있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궁리를 하는 게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다.
무리한 투자보다 적지만 리스크가 낮은 적금이나 연금이 훨씬 더 이득일 수 있다. 더 가지고 더 모으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적게 쓰는 것이 훨씬 더 나을 수도 있다.
부자의 기준을 '어제보다 풍족한 나'로 둔다면 조금 더 즐겁게 부자로 가는길을 갈 수도 있다.
어쩌면 당신이 원하는 게 부자가 아닐 수도 있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모두가 각자의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부자가 된 것이고 누군가는 되지 못한 것이다. 누구의 잘함도 잘못도 아닌 그저 그렇게 된 것이다. 모두가 노력했지만 상황이 다를 뿐이었다. 그러니 누구도 비난받을 수 없다.
나는 부자가 아니다. 내가 부자가 아님은 여러 가지 못 미치는 역량때문이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가 가진 역량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누군가의 눈엔 그것이 부족해 보일지라도 내겐 그것이 낼 수 있는 최선의 역량이었다. 나는 확신한다. 어떤 누가 '나'대신 '나'의 삶을 산다 해도 '내'가 사는 것만큼 잘 살아내진 못할 것이라고.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돈을 위해서든 사람을 위해서든 진리를 위해서든 무엇을 위해서든 자신만의 삶을 잘 살아가길 바란다.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 마음 쓰며 살아가길 바란다.
부자도 좋고 적게 쓰기도 좋으며 만족도 좋다. 그러나 어떤 길을 걸어가든 따뜻함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타인과 세상에게, 무엇보다 '자신에게'.
사람은 스마트폰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 자동차와 비행기가 사라져도 살아갈 수 있다. 아니 지금까지 이룩한 모든 편리가 사라져 버린 세상에 내던져진대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따뜻함'이 사라진 세상에선 결코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따뜻함이 사라지는 그때. 그때가 바로 인류의 종말일지도 모른다.
나는 바란다.
내 안의 따뜻함이 보다 깊고 넓어져 당신에게 닫기를.
당신 안의 따뜻함이 보다 깊고 넓어져 나에게 닫기를.
무엇에도 따뜻하기를.
모든 순간에 따뜻하기를.
당신이 의미하는 부자에 반드시 닿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