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송대관 선생님이 별세하셨다는 기사를 인터넷에서 보았다.
순간 마음 한켠이 아려왔다.
그를 잘 알아서는 아니다.
송대관 선생님에 대해 내가 아는 거라곤 기사나 방송으로 접한 피상적 모습뿐 그 외 달리 아는 건 없다.
그럼에도 지금껏 수많은 연예인의 부고 중 유독 그의 별세에 마음이 흔들린 까닭은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는 '차표 한 장'이란 노래를 좋아하셨다.
'차표 한 장 손에 들고 떠나야 하네~~'로 시작하는 바로 그 노래. 그 노래를 아버지는 참 좋아하셨다.
타고난 음치에 부끄럼도 많은 경상도 남자였던 아버지는 방송에서 그 노래가 나올 때마다 흥이 동한 얼굴로 음도 박자도 맞지 않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언젠가 가족이 노래방엘 갔던 적이 있다. 거기서도 아버진 음정 박자가 하나도 맞지 않는 엉터리 차표 한 장을 참 열심히도 불렀다.
차표 한 장 손에 들고 어디를 그렇게 가고 싶으셨을까?
송대관과 아버지는 거의 같은 연배지만 아버지의 차편이 조금 빨랐던 까닭에 오래전에 먼 길을 홀로 떠나셨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외롭게 자랐고 외롭게 어른이 되었다.
가족을 이루고서도 그 외로움은 가시지 않았다.
머무르지 못했고 불안해했다.
늘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했다. 차표 한 장 손에 들고 자유로이 날아가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어디에도 가지 못했다. 몸만 큰 어른이었지 아이의 여린 마음을 그대로 가졌던 아버지는 정을 끊고 떠나지도 못했으며 현실을 보듬고 행복해하지도 못했다. 늘 혼자였고 고독해했다. 가족 속에서도 그랬고 가족 밖에서도 그랬다. 늘 정에 목말라하면서도 그 정을 제대로 받아본 적 없었기에 주는 법도 몰랐다.
아버지는 그렇게 갈 곳 없는 그 마음을 차표 한 장이란 노래로 달랬다. 음정 박자 하나도 맞지 않게 따라 부르던 그 눈빛엔 외로움과 쓸쓸함과 사그라진 희망과 동경이 어른거렸다. 그리고 결국 차표 한 장 손에 들고 홀로 먼 길을 떠나셨다. 너무 좋아 한 번 가면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그 길, 그 여행을.
정을 줄지도, 받을지도 몰랐던 그였지만 그가 가진 최선으로 가족을 사랑하였다.
어린 내 뺨을 부비던 그 까슬한 턱, 내 이름을 부를 때 부끄럽게 들어있던 낮고 진한 다정함, 넘어지던 나를 잡아채던 굵고 억센 그의 손, 새카맣게 그을린 팔, 쇠약한 몸을 끌고 기어코 찾아왔던 훈련소 퇴소식, 그리고 모습들, 웃음들, 목소리들, 눈빛들, 그 밖의 많은 것들.
아버진 정녕 그의 최선으로 나를 사랑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내게 조금이라도 따뜻한 구석이 있다면 그건 모두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의 덕분이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차표 한 장이 떠오른다.
차표 한 장 손에 들고 자유로이 웃으며 훨훨 떠나는 그 모습이 상상된다.
그래서 송대관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그의 노래덕에 아버지의 마지막 여행길이 쓸쓸하지만은 않았을 거라 생각하기에.
그것이 그의 부고가 마음을 흔든 까닭이다.
송대관 선생님도 많은 고생을 하셨다고 들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도 파란만장한 인생을 사셨으리라. 그럼에도 자신의 최선을 다해 사셨으리라. 가족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면서. 그렇게 사시다 차표 한 장 손에 들고 떠나셨으리라. 사람 좋은 순한 웃음 지으시면서.
염치없지만 그곳에 가셔서 아버지를 만난다면 사인 한 장 해주시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다.
송대관 선생님 사인 한 장이면 아버지는 세상 다 가진 아이처럼 뛸 듯이 기뻐하리라.
혹시 어려우시다면 그곳에서도 좋은 노래 많이 불러주셨으면 좋겠다.
노래만으로도 아버지에겐 힘이 될 테니.
송대관 선생님,
좋은 노래 불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살아생전 아버지께 기쁨을 주셔 감사드립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마음 다해 기원합니다.
그곳에서 평안하십시오.
<2025년 2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