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리 안녕”
비 개인 아침 울리는 종소리 같은 맑은 소리.
'...... 아! 팀장님... 안... 안녕하세요.'
귀를 통해 들어왔다 짧은 떨림과 함께 사라지는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댄다.
얼굴이 빨개진다.
K팀장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 어디 목소리뿐인가. 빼어난 외모와 깔끔한 매너까지.
완벽한 이 남자는 마주할 때마다 도저히 더듬대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그의 완벽함의 정점은 목소리도 외모도 아니다. '미소'다. 완벽한 외형에서 빚어지는 더욱 완벽한 미소. 최후의 만찬 뒤 나오는 완벽한 디저트.
“그래요, 우리 김대리, 오늘 하루도 힘내요”
더없이 완벽한 미소로 인사하고 자리로 돌아가는 K팀장은 마주치는 팀원들에게도 의례적 인사를 한다. 의례적 인사. 그렇다. 그들에게 하는 인사는 의례적이다. '미소'가 빠졌기 때문이다. 미소는 오직 나에게만 허락된다.
잠시 후 따가운 시선들이 등 뒤에 꽃혀 든다. 하지만 어쩌랴. 내가 원해서 그런 것도 아닌데.
K팀장은 에이스다. 그것도 '슈퍼'가 붙은 '슈퍼 에이스'.
우수한 업무 능력과 실적으로 최연소 팀장이 된 그는 외모까지 완벽해 누구나 좋아한다. 하지만 그는 차갑다. 누구에게도 미소 짓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미소를 짓는 경우는 오직 하나. 나와 인사할 때뿐이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나는 외모로나 업무로나 회사 내 누구와 견주어도 평범한 사람이다.
다만 한 가지 추정할 수 있는 건 그가 나에게 어떤 종류의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호기심에서 비롯한건지 아니면 인간적인 매력 때문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그런데 나에게 정말 특별하고 매력적인 부분이 있을까?
모르겠다. 몰라도 좋다. 이유가 뭐가 됐든 세상이 환해지는 그 미소가 나를 향해 있다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하지만... 마음 한편엔 그와의 관계가 조금만, 아니 한 발만이라도 더 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띠링~~]
휴대폰 메신저에서 알람소리가 났다.
누구지?
응? K팀장?
화들짝 주위를 둘러본다. K팀장은 묵묵히 업무 중이다.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슬쩍 꺼내 아무도 몰래 메신저를 열어본다.
[오늘 저녁, 괜찮다면 식사 같이 하실래요?]
[불편하면 미뤄도 되니 부담 갖진 말고요]
식사? 갑자기?
아..... 뭐지? 왜지? 이유가 뭐지?
혹시?
아니 그럴 때도 되었나? 그가 부임한 지 3개월이니...
설마? 아닐 거야.
그래도...
머릿속에 오만가지 상상과 이유가 번개처럼 지나간다.
안된다고 할까? 아니, 아니지. 그럴 순 없지.
내 직감이 말한다. 이것은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기회라고! 이유 따위야 뭐가 됐든 놓칠 순 없다.
나는 번개처럼 손가락을 움직인다.
[네. 괜찮습니다.]
될 대로 되라지.
퇴근 시간.
오늘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K팀장에게 답을 보낸 후 반쯤 넋이 나가 있었으니. 기억하는 건 길고 긴 하루였다는 것뿐이다.
나는 약속 시간을 맞추기 위해 회사를 나와 주변을 잠시 어슬렁대다 택시를 잡고 K팀장이 알려준 주소로 향했다. 그는 메시지로 그곳이 특별한 날에만 찾는 곳이라 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간단한 내용을 보냈지만 '특별한 날'이란 대목이 너무도 강렬해 나머지는 다 잊어버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택시가 어느새 약속 장소인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도심 외곽의 어딘가였다.
레스토랑은 큰길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어 눈에 띄진 않았지만 공들여 관리한 정원과 화려한 외관을 가진 한 눈에도 고급스러운 곳이었다. 무엇보다 아주 좋은 향기가 났다. 공기 중에 은은히 스민 그 향기는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분이 들게 했다.
잘 손질된 향기로운 정원을 지나 입구에 도착하니 단정하고 세련되게 차려입은 직원이 나를 맞았다. 그는 내 이름을 확인하더니 무전으로 무언갈 확인한 후 자리로 안내했다. 그는 나를 안내하며 K팀장이 조금 전 도착했다고 말하며 몇 가지를 얘기했다.
"이곳은 회원 전용이라 원칙적으론 비회원은 입장이 불가하지만 오랜 단골인 K팀장님의 지인이라 특별히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홍보 행위는 금지되어 있어 사진 촬영은 불가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의 말에 왠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더부살이를 시작하는 콩쥐의 마음이랄까? 아니면 신데렐라? 누가 되었든 결론은 왕자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좋아지진 않았다.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K팀장은 하얀 보를 드리운 식탁 앞에 고대의 조각상처럼 무표정히 앉아있었다. 하지만 다가오는 나를 발견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을 환히 바꾸며 빛나는 미소로 반겼다. 그는 부드럽게 일어나 익숙한 솜씨로 의자를 빼곤 내게 권했다. 나는 살짝 고민이 들었다.
'뭘 주문해야 하지?'
낯설고 고급스러운 이곳에서 어떤 걸 시켜야 할지 감도 오질 않았다. 하지만 내 생각을 미리 알아차린 듯 주문은 벌써 되어있었다. K팀장이 했던 것이다. 그는 허락 없이 메뉴를 골라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사과는요 팀장님. 감사할 따름입니다.'
요리가 나오기 전 그는 주문한 음식에 관한 간단한 설명과 이런저런 얘기들을 했지만 불행히도 난 그와 단 둘이 마주했단 사실에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열심히 웃으며 고개는 끄덕였다.
잠시 후 요리가 나왔다. 지금껏 보지 못한 아름다운 요리였다.
뭘로 만들었는지 짐작도 되지 않았지만 섬세하고 독특한 플래이팅(plating)과 매혹적인 향기에 저절로 군침이 돌았다. 완벽한 '미식(美食)'이었다.
그런데 내 표정이 너무 과했을까? K팀장이 나를 보며 만족스러운 듯 빙긋 웃었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먹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나는 그가 가르쳐준 방법대로 눈앞에 놓인 요리를 정성스레 잘라 한 조각 살짝 베어 물었다. 순간,
세상이 멈춘 듯했다.
아!!
"어때요? 괜찮아요?"
동그랗게 눈을 뜨고 멈춰있는 나를 보며 K팀장이 물었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맛있음"이었다. 그 느낌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눈앞의 K팀장이 잠시나마 사라질 정도였다.
K팀장은 좀 전보다 더욱 만족스런 표정을 짓곤 우아하고 익숙한 동작으로 자신 앞에 놓인 나이프와 포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기품이 넘치는 그 모습으로 잠시 멈춘채 뜸을 들였다. 마치 눈으로 먼저 요리를 음미하는 듯 했다. 이윽고 그의 입가에서 서서히, 아주 서서히 미소가 번져나갔다.
그것은 똑같은 미소였다.
완벽한 외모에서 나오는 완벽한 미소.
그의 완벽함을 모두 압축해 놓은 미소.
세상이 환해지는 미소.
최후의 만찬 뒤 완벽한 디저트 같은 미소.
나 외엔 누구에게도 짓지 않던,
나를 보며 짓던 그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