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 웅~
낮은 진동음이 매트리스를 흔든다. 곧이어 정화된 맑은 공기가 침실을 채우고 서서히 방안이 밝아진다. 이제 바다가 투사될 차례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아름다운 바다가 사방 벽면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파도 소리와 함께 하이든의 교향곡 94번이 흘러나오면 L씨 부부는 행복한 기분으로 짐에서 깨어난다.
<잘 주무셨나요? 아침이 준비되었습니다. 오늘의 메뉴는 유기농 호밀로 만든 갓 구운 빵과 트리플A 등급의 신선한 커피입니다.>
휴머노이드의 밝은 음성이 식사가 준비되었음을 알린다. 부부는 미리 준비된 차가운 물 한잔을 마신 뒤 익숙한 걸음으로 주방으로 향한다. 식탁엔 L씨 가족을 위한 3인분의 식사가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차려져 있다. 풍경은 숲이다. 울창한 나무가 식탁 주위에 둘러서있고 바닥엔 풀과 이끼가 가득하다. 나무들 사이로 다람쥐 몇 마리도 보인다.
<좋은 아침입니다 L님, J님. 편안히 앉아 맛있게 드세요. L.주니어는 지금 내려옵니다.>
식탁 옆에 서있던 휴머노이드가 밝게 인사를 건넨다. 잠시 후 L.주니어가 잠이 덜 깬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들어온다. 그들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숲의 한가운데 둘러앉아 조용히 식사를 시작한다. 그동안 휴머노이드는 오늘의 일정을 간략히 보여주며 중요 사항을 얘기한다.
<..... 중요 사항입니다. 시민권 갱신까지 7일이 남았습니다.>
L씨 부부가 주니어를 잠시 바라보다 다시 식사를 한다. 휴머노이드는 다음 준비를 위해 조용히 자리를 뜬다. 그 모습을 숲의 다람쥐가 물끄러미 바라보다 휙 하고 사라진다.
에록 시민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된다. 개인에 맞춘 알고리즘이 최적의 환경을 준비하고 시민은 만족한다. 일상도 마찬가지다. 만족은 에록 시민 모두에게 주어지는 의무이자 권리였다. 오류는 없었다.
"꿈의 도시"
사람들은 에록을 그렇게 불렀다.
일과 후의 시간.
L씨 부부는 휴머노이드의 시중을 받으며 도시의 야경이 보이는 테라스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휴식이었다. 하지만 어딘지 초조해 보였다. 그들은 테이블에 놓인 와인과 음식엔 손도 대지 않고 각자의 개인용 패널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휴우"
한참을 집중하던 L씨가 미간을 만지작거리다 한숨을 쉬며 아내 J에게 묻는다.
"될까?"
"...."
L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J는 대답 없이 자신의 패널만 묵묵히 바라본다. 그가 보는 패널엔 L과 마찬가지로 빨간색으로 적힌 선명한 글씨가 띄워져 있다.
"어렵겠지?"
"....."
L의 말에 J는 입술만 살짝 움직일 뿐 여전히 대답이 없다.
L은 대기 중인 휴머노이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 생각은 어때?"
<솔직히 말씀드려 현재 상태론 시민권 갱신은 매우 불투명합니다. Civic Score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니어의 성적이 개선될 확률이 매우 낮습니다. 원하신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법을 제시해 드리겠습니다.>
L은 대답대신 자신의 패널을 다시금 들여다본다.
그리곤 한참을 그렇게 하다 휴머노이드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말없는 시선에 휴머노이드가 대답한다.
<L. 부부님께 프로젝트 SWAP(스왑)을 추천드립니다. SWAP은 시민권 갱신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하고 합리적 선택입니다. 또한 앞으로도 시민권 갱신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선택에 고민이 된다면 이성적 판단을 하실 수 있도록 몇 가지 참고 자료를 추천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주니어가 SWAP을..."
L은 말끝을 흐린다.
그의 말을 받아 침묵하던 아내 J가 입을 연다.
"1, 2등급 스토어의 시민들은 이미 다 신청했대. 이제 남은 자리도 얼마 없다는 소문이 돌아."
"그래도...이게 우리끼리 결정할 문제일까?"
"당신도 알잖아. 갱신이 안되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가 중요한 게 아냐. 주니어를 생각해야지."
"......."
L은 침묵하고 둘의 시선이 휴머노이드에게로 향한다.
<프로젝트 SWAP은 확실히 올바른 선택이며 시민권 갱신을 통과할 거의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갱신이 거절될 경우 에록에 대한 모든 권리는 박탈되고 즉시 도시를 떠나야 합니다. 이건 누구에게도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프로젝트 SWAP은 분명 가족 모두에게 올바른 선택입니다. 원하신다면 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게 프로젝트 SWAP의 과학적 근거나 관련 영상을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L씨 부부는 프로젝트와 관련된 영상을 요청했다.
<알겠습니다. 관련 영상들 중 최근까지 가장 높은 호응을 얻고 있는 광고 홍보 영상을 패널로 전송해 드리겠습니다. 다른 영상이나 자료가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부부의 패널에서 곧 영상 하나가 자동 재생되었다.
<에록 시민 조항>
행정법률 제3조 1항부터 3항 중.
에록의 시민권 및 갱신에 관한 일반 사항 요약
A. 에록 거주자는 시민권자로 한정한다.
B. 시민권자는 에록이 제공하는 모든 혜택을 받는다.
C. 에록의 모든 시민은 혼인 및 자녀를 두어야 한다.
(혼인은 시민권자만 가능하다.)
D. 시민권은 획득 이후 종합 평가를 통해 매 5년마다 갱신한다.
E. 갱신 평가 기준.
- 자녀의 정규 교육 성적(80%)
- 가족의 에록 기여도(20%)
F. 시민권이 박탈된 자는 에록에서 즉시 퇴거한다.
자세한 내용은 각 휴머노이드에 문의한다.
(중략)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잖아!"
"너...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왜! 틀려? 틀리냐구!"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깐..... 나도 너 같은 애가 태어나길 바랐는 줄 아니?!"
“어떻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네 성적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내가 지금 나 좋으라고 이렇게 하는 줄 알아?!"
(아이는 빨개진 얼굴로 말없이 흘겨보다 갑자기 홱하고 방을 나간다)
(화면이 정지되고 배경이 바뀌며 곧이어 인기 배우가 등장한다)
이런 상황, 많이들 겪어 보셨죠?
참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사실, 진심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감정이 격해지면 마음에도 없는 말이 나오기도 하죠.
왜 이런 상황이 생기는 걸까요?
네, 그렇습니다. 성적 때문입니다.
아이가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를 해줘도, 지금보다 조금만 더 성적이 올라줘도 아무 걱정 없을 텐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아이의 성적은 늘 떨어지기만 하죠. 남들 하는 거 다 해줘도 말입니다.
에록에서 성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무리 설명해도 아이는 들을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게 바로 자신의 미래라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죠.
최소한 부모에 대한 존중심이라도 가져준다면 좋으련만... 하아...
(배우가 잠시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쉰다.)
예, 저도 잘 압니다. 저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부모니까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노력이 부족해서? 집중력 때문에? 이해력 때문에? 아니면 유전 때문에?
아니, 아닙니다. 그런 건 모두 아주 작은 부분일 뿐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의 모든 노력이 실패한 것도 바로 그런 작은 것에만 신경을 썼기 때문입니다.
그럼 내 아이는 공부를 잘할 수 없는 걸까요?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답은 있습니다.
이제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아야 합니다. 본질을 바꿔야 합니다.
성적이 뛰어난 아이, 부모를 존중하는 아이.
이제 여러분도 가질 수 있습니다.
슈퍼 AI와 에록의 차세대 기술이 만들어낸 혁신적 모델.
바로 프로젝트 SWAP(스왑)이 그렇게 만들어 드립니다.
이제 갈등은 끝입니다.
지금 개인용 휴머노이드로 즉시 예약하세요. 합리적 비용과 최고의 결과를 약속합니다.
(배우가 한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며 속삭이듯 말한다)
이제 예약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광고 영상이 끝나자 휴머노이드가 말을 이었다.
<괜찮으시면 최근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영상 하나를 더 재생하겠습니다. 프로젝트 SWAP에 참여한 연구팀장의 영상입니다.>
(손가락을 쓸어 넘기며)
이제 SWAP(스왑)~ 하세요
모두에게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립니다
디스플레이에 프로젝트 SWAP의 카피라이터가 크게 표시되었다 사라지며 가족으로 보이는 한쌍의 부부와 아이 하나가 화면에 나타난다. 그들은 정면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잠시 후, 그들의 일상이 짧게 짧게 전환되며 지나간다. 놀이, 식사, 산책 같은 모습이 지나가고 아이의 공부하는 모습과 시험을 치는 모습도 지나간다. 자랑스레 성적표를 보여주는 모습도 나온다. 그 부분은 유독 느리고 길다. 그리고 환하게 웃는 아이의 얼굴이 화면에 가득 찬다.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L씨 부부는 그렇게 사랑스러운 표정의 아이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주니어에게도 다른 아이에게도. 그 표정은 어떤 오류도 없는 자신감과 긍정 그 자체였다. 아니 그런 표정을 본 적이 있긴 했다. 아주 오래전에. 세상에 막 태어나 환하게 웃던 아이의 모습에서.
아이가 행복한 표정으로 부모에게 말한다.
<사랑해요>
부부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리곤 시선을 카메라로 향한다. 그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부부가 묻는다.
지금 아이가 정말, 당신이 원하던 아이인가요?
영상이 끝나고 L씨 부부는 휴머노이드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에 휴머노이드가 짧게 대답한다.
<이제 갱신도 예약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부부는 손가락을 쓸어 넘겨 패널을 종료하고 휴머노이드에게 프로젝트 등록을 요청했다.
프로젝트 SWAP
1. 자신의 아이를 반납한다.
2. 반납된 아이를 휴머노이드 아이로 교환받는다.
3. 휴머노이드 아이는 기존의 아이와 완전히 동일하게 제작된다.
4. 프로젝트 참가자는 시민권 1회 갱신을 보장한다.
자세한 내용은 각 휴머노이드에 문의한다.
프로젝트 SWAP이 모두 끝나고 L씨 부부는 시민권 갱신을 무사히 마쳤다. 갱신을 끝낸 부부의 옆엔 SWAP된 L.주니어가 순수한 얼굴로 환히 웃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젠 아무 걱정도 없었다.
L씨 부부만 그런 게 아니라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시민이 그랬다. 그들은 이제 에록이 주는 혜택과 평화를 언제까지나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편리가 주는 만족 속에서 반납의 날에 있었던 일들을 천천히 잊어갈 것이다.
프로젝트 SWAP의 첫 번째 절차인 반납은 에록의 특별 조례에 따라 모든 가정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그날, 에록은 고요했다. 울음도 없었고 비명도 없었다. 반항도 없었으며 애원도 없었다. 오직 떠나는 아이들만 있었을 뿐이다.
반납에 대한 모든 절차는 각 가정의 휴머노이드가 도맡았다. 그들(혹은 그것)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집안의 모든 소리를 제거하는 Mute였다. 그다음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른다. 누구도 그 일을 얘기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것을 물어보지 않았다. 오직 각자의 기억에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반납된 아이가 떠나는 모습은 몇몇의 눈에 띄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본 이들은 이렇게 얘기했다.
"붉어진 얼굴의 아이가 고개를 숙인 채 휴머노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조용히 걸어 나왔어요. 그리곤 준비된 차량에 순순히 올라 자리에 앉았죠. 그 과정에서 어떤 마찰이나 소동도 없었습니다. 차량 안엔 몇몇의 다른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고개만 떨구고 있을 뿐 어떤 대화도 하지 않았어요. 어쩌면 그곳에도 Mute가 진행되었는지도 모르죠. 차량이 출발하기 전 아이를 데리고 온 휴머노이드가 차창으로 다가갔어요. 그리곤 고개 숙인 아이에게 애정 어린 눈빛을 보내며 이렇게 얘기했죠."
<다 너를 위해서야.>
"잠시 후 아무 일 없다는 듯 차량은 떠나갔습니다. 아주 조용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