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6월 01일
며칠 전 컨버스 신발을 두 켤레 주문했다.
브랜드가 주는 느낌이 나와는 꽤나 거리감이 있어 그동안 늘 망설이고 포기하다 나름은 큰 마음을 먹고 주문하였다.
내가 이 신발에 처음 관심을 가진 건 야마시타 카즈미의 '불가사의한 소년'이란 만화를 보고 나서이다.
이 만화의 주인공이 종종 신고 다니는 게 바로 이 컨버스 신발인데 셔츠 하나에 롤업 한 청바지를 입고 복사뼈까지 올라오는 컨버스를 신은 주인공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 없었다. '불가사의한 소년'에서 주인공의 가볍고 여리 고 호기심 많고 청량하고 자유롭고, 연약하면서도 반항적이며 때론 변덕스러운 이미지는 바로 이 컨버스로 완성된다.
특히 그 자유로움!!
극 중 주인공이 하늘을 나는 장면이 있는데 마치 헤르메스의 신발을 신은 듯했다.
그렇지만 만화의 주인공이 가진 수많은 이미지가 나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나는 자유롭지도 반항적이지도 않으며, 더욱이 청춘과의 거리는 몇 만 광년이나 된다.
하지만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더 늙기 전에 신어 봐야지!!!"
분명 나와는 안 맞는 이미지이긴 하지만 그래도 1년 후, 10년 후의 나보다는 지금이 더 그 이미지에 가까울 것이다. 사실 나는 마음에 든 것을 가지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 그게 비싸든 아니든 말이다. 좋아하는 것을 가진다는 건 내가 가진 관념에 반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살아온 날들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좁은 관념일지라도 되도록 지키려 애쓰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관념으로 인해 누구 하나 피해본일 없기에 후회할 이유도 없다.
그렇지만 일상을 다시 쌓아나가고 있는 지금 기존의 생각들을 조금씩 바꿔보려 한다. 어울리지 않는 컨버스를 사는 것도 그런 행동의 연장이다.
그런데 어울리든 어울리지 않든 예전부터 신어보고 싶던걸 사게 되니 기분은 좋다.
신발 하나에 이렇게 기분이 좋아질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살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살짝 든다.
아직 도착은 안 했지만 아마 오늘 저녁이나 내일 오전쯤엔 도착을 할 것이고 나는 새로 산 그 신발을 신고 동네 주변을 어슬렁거려 볼 것이다.
비록 자유롭고 반항적이지도 않으며, 더욱이 청춘과는 몇 만 광년이나 떨어진 나지만 컨버스를 신고 기분 좋은 얼굴로 동네를 걷다 보면 마치 마술처럼 멋진 곳에 가 닿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