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ter is coming
얼마 전 경기도와 강원도 쪽으로 여행 아닌 여행을 다녀왔다.
딱히 어디를 보려고 간 것이 아니라 그냥 차를 타고 '산책'을 한다는 생각으로 돌아다녔다.
낯선 곳들이었지만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가고 있었고 자연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먼 길을 다녀본 건 군대에서이다.
강원도 쪽에서 복무를 했었는데 휴가가 되면 TMO라 불리는 군 전용 좌석 열차를 타던지 고속버스를 타던지 해서 집이 있는 남쪽나라까지 왔었다.
5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하루 만에 내가 있는 곳이 전혀 다른 곳으로 바뀐다는 사실이 나는 좀 놀라웠다.
휴가를 떠나기 전만 하더라도 나는 전혀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불과 5시간 남짓만에 익숙한 곳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생활을 또 한다는 게 좀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였다.
마치 내가 두 개의 세상을 넘나드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군대 전까지만 해도 먼 거리라는 게 고작해야 시내버스 종점 정도인 거리만 다녀봤으니 제법 신기하게 생각할 만도 하다.
그렇게 본다면 이번 여행길이 2,000km는 족히 되었으니 나는 두 세계만이 아닌 다차원의 세계를 수차례나 넘나든 게 된다.
회사를 그만두고 이제 열흘 정도 쉬었다.
친구네 가게에서 며칠 아르바이트도 했으니 다 쉬었다고는 못하더라도 어쨌든 일에 대한 특별한 스트레스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가능하다면 이렇게 계속 지내고는 싶지만 먹고 살아가는 문제가 있다 보니 마냥 그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 크게 고민하지는 않는다.
모아둔 재산이 있어서가 아니라 몸이 건강하니 뭘 하다라도 밥벌이는 할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아직 몸이 건강하니 드는 생각일 뿐이다.
호기롭게 자신의 노후나 현재의 밥벌이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건강'을 유지하고 있을 때나 가능하다.
몸이 아프게 되면 그런 호기와 계획들이 아무 쓸모도 없어지는 걸 나는 몇 번 봐왔었다.
육체의 병약함은 그 어떤 계획과 자신감도 모두 쓸모없게 만들어 버린다.
설사 지구를 들었다 놓을 힘이 있다 하더라도 병이 들고 몸이 망가지면 내 손가락 하나도 들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그것에서 어떤 자신감과 어떤 계획들이 쓸모가 있겠는가.
그래도 그때가 온다면 그래도 최소한의 '품위'만큼은 지키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모를 일이다.
이것도 건강하니 하는 생각이니 말이다.
정작 그런 상황이 닥치게 된다면 내가 그때 품위를 지키게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그렇게 하겠다고 생각이라도 품고 있어야 되겠지.
살아있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은 잘 지내고 싶다.
그리고 좀 더 나은 인간이 되었으면 한다.
어떤 게 좀 더 나은 인간인지에 대해선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스스로도 잘 지내고 타인에게도 가능한 친절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새롭다고는 못하더라도 예전과는 다른 삶을 시작하려고 했으니 그 삶에 대해서도 충실히 일상을 만들어 쌓아나가고 싶다.
하고 싶은걸 다 할 수는 없겠지만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선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지금보다는 조금만 더 부지런한 사람이 되고 싶고 무의미한 생각들은 조금씩 줄이고 싶다.
적고 보니 예전부터 하려고 했었던 것들이지만 아직도 잘 못하고 있는 것 들이다.
그래도 이렇게 부족하나마 하루를 쌓고 있다.
내가 일기를 적든 적지 않든 나는 살아가고 있으며 하루를 시간을 쌓아가며 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날씨가 쌀쌀해져 있었다.
어제만 하더라도 '뭔 늦더위가 이렇게 기승이냐'하고 투덜거렸는데 내 투덜거림을 듣기라도 했는지 기온이 하루 사이에 뚝 떨어져 버렸다.
Winter is coming
어쩌면 내 삶의 겨울이 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따뜻한 옷들을 꺼내놓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