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6일
조금 전 꽤 늦은 저녁을 먹었더니 적당한 포만감과 나른한 졸음이 기분을 몽롱하게 좋게 한다.
마치 따뜻한 욕조속에 있는 것 같다.
꽤 늦은 저녁을 먹은 이유는 오늘 일이 제법 늦게 끝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조금 부끄러웠던 일이 있었다.
업무상 마지막으로 들렀던 마트에서였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마트의 무빙워크 끝쪽엔 이용객들이 쇼핑한 물건들을 담아갈 수 있게 자율 포장대가 있었는데 자율 포장대를 지나야만 주차장으로 나갈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런데 자율 포장대와 나가는 문이 있는 공간이 좁아 늦은 시간엔 괜찮지만 사람이 몰리는 시간대엔 제법 혼잡할 것 같았다.
마지막 일을 마치고 주차장을 가기 위해 그 무빙워크를 탔을 때 갑자기 내 앞에 서있던 부부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웬일인가 하여 보았더니 자율포장대와 주차장으로 나가는 문의 중간에 누군가 빈 카트기를 두고 갔고 앞에 서있던 부부는 카트를 두고 간 사람의 비매너에 대해 투덜거렸던 것이었다.
보아하니 포장대에서 포장만 하고 카트는 보관 장소까지 가져가기가 귀찮아 두고 간 모양이었다.
투덜거림까진 좋았다.
그런데 통로를 버젓이 막아놓은 그 행동에 대해 투덜거림 만으론 부족했는지 좀 큰 언성으로 꽤 심한 욕을 한동안 하였다.
사실 공간이 좁다고는 하지만 빈 카트는 적당히 한쪽을 밀어놓고 지나가도 무리가 없는 일이었는데 누군지는 모르는 비매너 사람에게 저주 비슷한 욕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에 대해 지적을 하는 건 옳은 일이지만 거기에 보태 개인의 감정, 그것도 걸러지지 않은 시커먼 속내의 감정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저주와 악담이 고루 섞인 그 부부의 말들은 아무 상관없는 내 감정마저 좋지 않게 만들었다.
어쨌든 나는 일을 마쳤으니 집으로 빨리 가야 했고 그 부부도 장을 본 것들을 정리해야 하니 잠깐의 엇갈림 이후엔 서로 각자의 길을 갔다.
아마 그 부부도 몇 번의 악담 이후엔 그 일을 잊었으리라.
감정이란 게 쉽게도 달아오르지만 쉽게도 가라앉으니 말이다.
또 우리 생각이란 게 어디 한 가지에만 그렇게 진창 매달려 있지는 않지 않는가?
나도 회사에 간단한 업무 보고를 하고 곧 그 일을 잊은 채 집으로 운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한 십분? 십오 분? 쯤 지났을까?
내 왼쪽 차선에서 나보다 아주 약간 앞에 가던 차가 미처 피할 틈도 없이 우측 깜빡이와 동시에 내 차선 쪽으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급브레이크를 밟고 속도를 줄여 다행히 사고는 안 났지만 브레이크를 밟음과 동시에
아니 이게 무슨?!!! 미쳤나?!!!!
이런 야!이! 씨XX!!
하는 말이 바로 튀어 나오는게 아닌가?
하..참... 잘못에 대해 감정을 앞세워 욕하는 게 옳지 않고 듣기 싫다고 생각했던 게 바로 조금 전인데 내가 그러고 있다니.
순간 좀 부끄러웠다.
나도 참 누가 보면 꽤 과민하고 재수 없는 녀석이라고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약간의 부끄러움과 약간의 반성을 하는데 아니 이게 또 뭔가?
나는 직진으로 잘 가고 있는데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는 차량이 내가 오는걸 빤히 보고도 속력을 줄이지도 않고 들어오는 게 아닌가?
심지어 주의하라는 필살의 '빵빵이'까지 울렸는데도.
이런 미친 개XXXXXXX!!!!....
아..아니지 내가 반성한 지가 오분도 안 지났는데...ㅠㅠ
그랬다.
이게 오늘의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다.
보기 싫어 하는 행동을 내가 한게 부끄럽고 나도 보기 싫은 사람 중 하나라는 게 또 부끄러웠다....
쓰고 보니 별거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별게 아닌 건 아닌 것 같다.
말과 행동이 쌓여 습관이 되고 습관이 쌓여 성격이 되고 운명이 되는 것인데 이렇게 툭하면 욕을 해대다간 언젠가 욕이 운명이 돼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운전을 하다 보면 '욱'하는 일들이 가끔 있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면 그렇게 욱할 일들은 아니란 생각이다.
사고를 내고 싶어 내는 사람은 없을 거고 그런 상황에서 다행히 사고가 나지 않으면 그걸로 좋은 것인데 거기다 괜한 감정에 휘말려 욕을 하는 건 맞지 않는 일이다 싶다.
하긴 뭐 사람이란 게 감정이 올라오면 욕도 좀 할 수 있지만 그것도 그냥 한 번의 욕으로 끝내고 그걸로 순간의 화가 풀리는 게 좋은 일이지 않나 싶다.
나를 위해서도 상대를 위해서도 지구를 위해서도 말이다.
아무튼 생각해보니 요즘 들어 욕을 좀 많이 하는 것 같아 또 조금 부끄러워진다.
이러다 순간의 화가 순간의 화로 끝나지 않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말도 행동도 좀 더 조심해야겠다.
나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제 몽롱한 졸음을 넘어 아주 어지러운 졸음이 온다.....
어쨌든 오늘도 무사하고 평온한 하루였다.
감사한다.
내일도 아름다운 하루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