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망

2020년 02월 07일

by 천우주

얼마 전부터 자주 가는 커피집이 있다.

오픈한지 이제 한 달이 좀 넘은 곳인데 요즘 들어 많이 생기고 있는 브랜드 커피집이다.

커피도 내 입맛에 맞고 무엇보다 집과 가깝고 출근할 때도 들르기 좋아 거의 매일을 이용하고 있다.

아침 첫 모금으로 시원한 커피를 마시면 기분도 마음도 한결 상쾌해진다.

게다가 사장님이 아주 친절하다.

언제나 변함없는 싹싹함과 친절함은 커피의 맛을 두 배로 좋게 해 준다.

그 가게 근처에 그곳보다 커피맛이 더 좋은 곳도 있음에도 그곳을 가는 이유는 편리함과 더불어 친절함도 크게 한몫을 한다.


그런데 한 달 좀 넘게 이곳을 다니다 보니 이 가게는 휴일이 달리 없었다.

새해에도 구정에도 늘 문을 열었었다.

가게만 아니라 사장님도 휴일이 없는 것 같았다.

쉬는 날 없이 일한다는게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생각에 구정을 며칠 앞둔 어느날 여느때 같이 커피를 주문하며 인사 겸 '참 피곤하시겠다'라고 얘기를 하려다 뭔가 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말을 아꼈었었다.


그날 밤 퇴근을 하고 잠시 산책 삼아 집 앞을 어슬렁거리다 그 생각이 다시 났었는데 말을 아끼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곤하다'라는 건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였다.

사실 내가 보는 타인의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때는 무척 많다.

불행하게 보인다던지 행복하게 보인다던지 하는 것들도 알고보면 내 생각과는 다를때가 많았다.

쉬는 날 없이 매일을 일한다는 게 당연히 피곤이야 하겠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시간을 뿌듯하게 쓰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빈틈없는 시간을 보낸 뒤 기분 좋은 포만감으로 하루를 마감할 수도 있다.


나도 예전 직장은 다른 많은 곳과 같이 주 5일 근무에 연차까지 쓸 수 있어 휴일이 제법 많았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직장은 연차도 없고 쉬는 날도 실상 일주일에 한 번 밖에는 되지 않는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업무 특성상 휴일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보내는 시간에 대한 만족도가 이전 직장보다 못한 건 아니다.

어찌 보면 오히려 일주일에 힌 번 쉬는 지금의 직장이 내게는 더 낫다는 생각도 종종 든다.

예전 직장에서는 쉬는 날이라고 하더라도 대개 별 의미 없이 시간들을 보내곤 했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고 시간을 알차게 쓰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괜스레 낭비하는 시간은 좀 더 줄어들었다.

거기다 일을 하는 동안은 여타의 불필요한 생각들도 줄일 수 있어 좋기도 하다.


아주 허기가 질 때 식사를 하면 어떤 음식이든 정말 맛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거기다 허기진 위장을 음식으로 채우고 식사를 마친 뒤 드는 그 포만감은 세상 어떤 행복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다.

다들 기분 좋게 배부른 경험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남아도는 시간이 많다는 건 시간을 잘 쓰는 사람에겐 유익한 일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겐 그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시간을 잘 쓰는 법을 몰라 대부분의 시간을 불완전 연소하면서 보내고 있다.

나무 하나를 불에 던졌을 때 절반만 타고 절반은 물에 젖어 타는 듯 마는 듯하다 이내 불이 되지 못하고 바로 재가 되어버리는 것과 비슷하다.


팔방미인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저것 재주가 많다는 말이다.

그러나 팔방미인은 다재다능한 재주는 있지만 그 중 한 가지라도 빼어나게 특출 나지는 못하다.

할 줄 아는 게 많다는 건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것과도 상통한다.

여러 가지에 재주 있으면 한 가지에만 집중하기는 어려운 법이니까.

물론 특출난 일부 사람들은 다르다.

이것도 저것도 빼어나게 잘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부의 이야기일 뿐이다.

로또 당첨자가 매주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이 내 얘기는 아닌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 보통의 사람일 뿐이다.


시간 역시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주어진 시간이 아무리 많더라도 그것을 적절히 쓰지 못한다면 시간이 적은 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시간이 적음으로 해서 무언가 다른 것, 취미나 휴식 같은 그런 것에 더 집중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 가게의 사장님도 그럴지도 모른다.

남들이 보기엔 쉬는 날도 없이 힘들고 피곤하게 일을 하지만 실제로는 굉장한 만족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니만큼 몸은 피곤하겠지만 시간을 빠짐없이 꼭꼭 채워쓰는 포만감은 그 피곤함을 충분히 덮고도 남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 분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그 사장님이 피곤함에 지쳐 하루를 마무리하는지 아니면 만족감에 가득 차 기분 좋은 피곤함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지는 나는 모른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다만 내가 생각하는 게 전부는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섣불리 오지랖 넓은 질문을 던지지 않은 게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사람은 왜 그렇게 늘 무언가를 원하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배가 고프면 식사를 생각하고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어떤 맛있는 것을 생각하고 원한다.

시간이 난다면 어떤 어떤 것들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상황이 좀 변하게 된다면 또 어떻게 어떻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혼자일 때는 외롭다고 생각을 하며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둘이 되었을 때는 소통과 교감의 부재에 또 그렇게 빈 곳을 채워줄 무언가를 원하게 된다.

지금 가진 능력보다 좀 더 다른 어떤 능력을 갖고 싶어 하고 지금의 상황보다 조금 더 나은 무언가를 이루고자 원한다.

나도 종종 입버릇처럼 하는 얘기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사람은 항상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갈망'

어쩌면 갈망은 인류를 이만큼이나 발전하고 진화시킨 큰 힘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원하기에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한계를 뛰어넘으며 때론 잔인한 일도 서슴지 않고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작은 짐승이나 식물들은 생존에 대한 갈망 외에는 거의 가지고 있지 않지만 유독 사람만은 인구수만큼이나 다양한 갈망들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시시각각 때에 따라 그 갈망들은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만족을 모른다

하나가 채워지면 곧 또 다른 하나를 원하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배고픔과도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당장의 한 끼를 배불리 먹었다고 해서 내일도 배가 부른 것은 아니니 말이다.

인간 이외의 생명들이 '생존'을 위해 그들의 갈망을 써서 지금의 환경에 적합한 '생존 능력'을 획득한 것이 진화라고 한다면 인간은 다양한 갈망들을 다양하게 성취함으로써 지금의 진화를 이룩해냈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갈망을 만들어 내면서 앞으로도 진화해 나갈 것이다.

그 과정 속에는 좋은 일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들도 들어 있을 것이다.

나의 목마름을 채울 때에는 애석하게도 내 옆에 사람은 내가 물을 마시는 동안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니 말이다.


아무튼 나는 내일 아침에도 출근길에 그 가게에 들러 커피를 한 잔 사 먹을 것이다.

그래서 잠이 미처 덜 깬 아침의 정신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밤새 잠에게 양보한 목마름이란 감각을 해소할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사장님 역시 그만의 방법으로 하루를 시작할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저마다의 방법으로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곤 서로 원하는 바를 찾아 또 그렇게 다른 길들을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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