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3월 21일
나를 '킹'이라고 불러주는 벗이 하나 있다.
그렇다고 내가 왕이란 뜻은 아니다.
하지만 왕이 아니란 뜻도 아니다.
나는 당연히 왕이 아니다.
왕과 같은 구석은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설사 내가 108번을 환생한다고 해도 왕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십만의 군대는커녕 내 한 몸 겨우 가지고 있을 뿐이며,
황금이 넘치는 지하는커녕 빚으로 가득 찬 통장만 있을 뿐이며,
용기와 강함은커녕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만도 빠듯할 뿐이다.
다스릴 백성은커녕 내 집 하나 건사하는데도 게으르며,
정의를 집행하기는커녕 실수와 변명만 가득하며,
근엄하고 잘생기기는커녕 늙어가고 있는 몸뚱이에 눈코입만 그런대로 달려있을 뿐이다.
어느모로보나 나는 왕이 아니다.
세상 어느 누가 보더라도 단번에 왕은커녕 왕의 핏줄 만분의 일도 섞이지 않은 사람이란 걸 알아챌 정도로 왕과 나는 전혀 다른 존재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벗이 나를 킹으로 부르는 이유를 어느 정도는 안다.
타인에게 관대하고 따뜻한 미소를 지어줄 것.
슬픔이 오더라도 그것에 파묻히지 말고 잠깐 슬퍼한 후 털고 일어나 다시 걸어갈 것.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당당히 인정하고 잘못된 일은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릴 것.
분노의 순간이 오더라도 역시 그것에 파묻히지 말고 화를 한 번 내고 말 것.
모든 일에 있어 경솔히 굴지 말고 무겁고 차분하고 의연히 대처할 것.
타인에게 친절하고 자신에게도 친절할 것.
많이 웃고 많이 기뻐하며 되도록 즐겁게 살아갈 것.
혼자여도 혼자가 아니니 너무 외로워하지 말 것.
절대로 절대로 남을 해하지 말며 나쁜 짓을 하지 말 것.
왕이 아니라도 스스로의 왕이 되어 왕과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
나는 왕이 아니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누군가에게 '킹'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이 아주 가끔은 나를 붙잡아주고 힘을 주게 하기도 한다.
화가 나다가도 문득 내가 '킹'이란 생각을 하게 되면 화를 내는 상황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힘이 들다가도 내가 '킹'이라 불린다고 생각하면 힘이 나기도 한다.
늘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그렇게 불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것이 때론 내게 힘이 되고 벗이 되고 위안이 되어준다.
그리고 조금은, 아주 조금은 킹의 마음과 킹의 자세로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왕은 아니지만 왕으로 불리기도 한다.
비록 단 한 사람만이 그렇게 부르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불린다.
내가 왕으로 불리울수 있다면 세상 누구나가 왕으로 불리울 수 있다.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은 스스로의 왕이 될 자격이 있는 것이다.
평범하고 때론 평범에도 미치지 못할지라도 가슴에 자신만의 왕 하나쯤은 품고 살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왕은 폭군이 아니라 지혜의 왕이요 자비의 왕이며, 봄날의 바람처럼 따사로운 왕일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고 수천만의 국민을 아우르며 국가의 번영과 안녕을 위해 고뇌하는 사람도 왕이지만 우리 개인의 만 가지 마음을 살펴보고 그것들을 아우르며 자신의 번영과 안녕을 위해 고뇌하는 사람도 왕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나 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꼭 그렇게 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자신이 '왕'이란 그 사실이 때로는 스스로에게 힘이 될 수도 있을것이며, 어둠이 자신에게 손짓할때 붙들어주는 손이 될 수도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