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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양현 Dec 07. 2017

소기업이란 무엇인가?

달콤하기도 씁쓸하기도 했던 7년 동안의 소기업 창업일기

VC투자를 받지도, 엑시트도 못한 회사경험을 소개해도 괜찮을까?

바야흐로 창업의 열풍이다. 그 한복판에 서 있는 나는 어느덧 창업 7년 차 소기업의 대표가 되어 있었다. 2011년 9월에 회사를 창업했으니 햇수로 정확히 7년이다. 이 정도면 회사 운영에 그럭저럭 간을 본 연식일 것이다. 사실 나는 회사를 누구나 보란 듯 자랑할 만한 깜냥은 안된다. 회사를 운영하기엔 너무 개인주의, 자유주의 성향을 지녔고, 그래서 적성에도 맞지 않는 창업으로 지금까지 밥 먹고사는 이 상황 자체가 감지덕지하다고 생각한다. 회사를 코스닥에 상장시키지도 떠들썩하게 벤처캐피털의 막대한 투자를 받거나 혹은 거금을 받고 엑시트를 하지도 못했다. 그렇기에 당연히 그럴싸한 성공담을 이 자리에서 자랑할 수도 없다     


하지만 가늘고 길게 생존하고자 노력하면서 겪어온 조그마한 소기업의 일상과 생존기를 다른 이들에게 소개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최근에 다른 이들이 스타트업이나 창업에 관해 쓴 글들을 읽어보았는데 많은 이들의 현실과는 솔직히 동떨어져있는 내용이 더 많았다. 명문대의 IT 관련 학과를 졸업 후 자신이 연구한 기술을 토대로 창업을 하고 사업계획서를 들고 투자자들 앞에서 멋들어진 PT를 해서 수십억 투자를 받아 스타트업을 만드는 상황들이 과연 보통의 창업자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을까?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나눠주기보다 주입하려는 태도도 썩 맘에 들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기업의 성공은 경영자의 뛰어난 경영능력과 안목, 혜안보다는 시대 조건과 운이 대부분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어찌 보면 시대 조건조차도 사실 운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회사가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을 오랫동안 바꾸지 않고 추구하여 성공하면 경영학자들은 시류에 흔들지 않고 한 분야를 오랫동안 깊게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비슷한 모델의 다른 회사가 쇠락하면 이번엔 시대에 뒤쳐져 혁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반대로 어떤 회사가 새로운 사업모델로 성공했다면 트렌드를 읽고 혁신을 잘했다고 칭찬한다. 그런데 새로운 사업을 하려다가 망한 다른 회사가 있다면 이번엔 한 분야에 집중하지 못하고 너무 사업을 다각화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국 이런 아전인수식의 분석들은 역설적으로 회사를 경영하는 데는 별로 정답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스타트업은 반드시 이래야 하네, 창업의 몇 가지 법칙 등등 이런저런 경영상의 코칭을 하는 것도 사실은 부질없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창업자의 역량, 기업가정신, 비즈니스 전략, 마케팅, 혁신적인 기술 등 경영의 주요 요소들이 회사를 만들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 약간의 기여는 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회사의 성공에 있어 상당 부분은 거의 운에서 오는 것이다.     


회사 창업과 운영에 어떤 원리가 있다는 데 결연히 반대한다

나는 회사의 창업과 성공에는 반드시 어떤 핵심적인 원리들이 존재한다는 논리에는 결연히 반대하기에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단지 먼저 창업이라는 과정을 먼저 경험한 이로서 내가 어떻게 아직까지 폐업하지 않고 회사를 지탱하고 있는지를 들려주고 싶다. 창업 7년 차는 데쓰밸리라고 부르는 3~5년 차의 혹한기를 가까스로 통과해 약간의 맷집이 붙은 회사를 이야기한다. 물론 여전히 오아시스는 발견되지 않고 신기루만 이따금 보이긴 보이는 상황이다.      


내가 지금부터 적어내는 글들은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어느 자영업자의 좌충우돌 생존기일수도 있고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겐 먼저 이 길을 겪어본 한 선배의 경험담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어떤 이는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진 개인이 창업을 토대로 지금의 한국사회와 경제구조를 바라보는 시각을 담은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해석되든지 상관은 없다. 다만 이 책이 현재 회사를 운영하는 이들에게는 자그마한 공감과 위로를 줄 수 있다면,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단 한 가지의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왜 이 글을 쓰게 되었는지 설명하다보니 서두가 조금 길었다. 오늘은 일단 내 회사의 정체성, 즉 소기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는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제작자도 아니고 엄청난 부가가치를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뽀로로 같은 킬러콘텐츠를 만든 사람도 아니다. 당연히 내가 대표로 있는 파란오이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그런 회사가 아니다. 내 회사의 규모는 대기업도 중견기업도 중기업도 아닌 정말 딱 소기업 정도다.


소기업이란 무엇인가?

그럼 소기업의 정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중소기업법 시행령 제8조에 의하면 소기업이란 출판, 영상, 방송통신, 정보서비스업 계통에서 평균 매출액이 50억 원 이하의 기업을 칭하는 것이라 한다. 회사의 규모가 작아서 대충 소기업으로 부르는 게 아니라 실제로 파란오이의 연간 매출이 50억이 되지 않기에  법률에 의한 기준에 의해 정말로 소기업이 맞다.


소기업 중 규모가 더 작으면 다시 계급이 강등된다. 매출이 작은 것도 서러운데 총직원이 5명이 채 되지 못하는 기업의 대표가 되어버리면 소상공인이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실제로 2014년 파란오이는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이 잠시 줄어들면서 대표를 제외한 4대 보험의 적용자가 총 4명인 경우가 있었다.(규모를 정식으로 따질 때는 보통 대표는 제외하고 카운트를 하는 경우가 많다)  


당시 지자체에서 용역 발주한 콘텐츠 제작 사업에 입찰을 하기 위해 중소기업 확인서를 뗄 일이 생겼는데 웬걸 소상공인 확인서가 진짜로 발급되었다. 회사에 근무하는 상시 근로자가 4인 미만인 상황이라 소상공인 자격기준이 자동적으로 적용된 탓이다. 프린터에서 출력되어 나온 소상공인 확인서라는 종이쪼가리를 받아 든 순간 내 정체가 못 박혀버린 것 같은 씁쓸한 느낌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중소기업 확인서라는 것을 발급받는 일은 사업을 영위하면서 때때로 중요하다. 특히 정부과제를 할 때나 나라장터 등을 통해 용역 입찰사업에 참가하고자 하면 이 증빙을 요구할 때가 많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 육성과 발전을 중요시하니 당연히 특정 사업 가운데 중소기업이 꼭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사업은 대기업을 배제시키고 중소기업을 우대하고자 합니다. 그러니 중소기업이라는 것을 증빙하세요”      


하고 국가가 정한 중소기업 인증 절차의 완성이 바로 중소기업 확인서 발급이다.          


그런데 이 문서를 발급받으려면 “제 회사가 요구하신 대로 구멍가게 수준입니다.”라는 사실관계를 증빙해야 하기 때문에 재무제표, 경영 소유주, 주주명부 등 회사의 정체와 규모와 관련된 다양한 증빙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매년 이 내용들을 업데이트를 해야 중소기업 확인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이 복잡한 과정은 <중소기업현황 정보시스템>이라는 사이트에 접속해서 진행해야만 한다. 주소는 아래와 같다.          


http://sminfo.mss.go.kr/


중소기업확인서 신청서 작성의 첫화면이다. 보다시피 일일히 회사의 다양한 정보를 확인해서 집어넣어야 한다.


접속해보면 바로 알겠지만 회사 규모, 재무정보와 관련된 각종 숫자들을 일일이 처넣고 집어넣어야 할 내용도 많다. 그리고 입력해야 할 내용 중 화룡점정은 바로 회사의 당해연도 법인세 신고 파일 제출인데 이 부분은 회사 내부에 재무팀이 별도로 있지 않은 이상 대표 본인이 직접 하거나 회사의 세무대리인에게 별도로 연락해서 진행해야 한다.     


이렇게 절차가 간단하진 않으니 꼭 미리미리 직전 연도 회계결산이 끝나는 연초마다 사이트에 접속해서 ‘중소기업 확인’하자. 어떤 사업에 들어가려는 와중에 발주기관이 중소기업 확인서를 떼라고 해서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재무자료를 업데이트를 하지 못해 발급이 안된다면 얼마나 낭패이겠나? 실제로 이 종이쪼가리 한 장을 못 떼서 중요한 용역입찰을 들어가지 못한 다른 회사 대표의 슬픈 눈동자를 몇 번 봤다. 


내 회사의 명의로 발급받은 중소기업 확인서다. 매출, 고용인원을 기준으로 소기업 형태를 인정받았다.


소기업에서 잠시 벗어나 한때 소상공인이 된 상황에 대한 변명을 몇 자 더해보겠다. 우리 같은 회사는 프로젝트 베이스의 콘텐츠 제작과 개발의 특징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프로젝트들 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개발 기간만큼 탄력적으로 인원을 채용한다. 프로젝트의 출발과 종료에 따라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당연히 계약기간만큼만 고용되기 때문에 고용상의 신분도 우리가 싫어하는 어감 중 하나인 비정규직. 계약직이다. 영화제작사가 영화를 제작할 때는 수십 명씩 스태프들을 고용했다가 끝나면 해산시키는 상황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고용노동부가 싫어하는 기업의 전형?  

프로젝트가 끝나버리면 자동 해고가 되는 식이라 어찌 보면 고용노동부가 가장 싫어하는 기업의 전형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나름의 변명을 좀 해보겠다. 우리 같은 콘텐츠 개발 업체는 대기업과 거래선을 터서 지속적으로 매출을 올리거나 제품이나 서비스의 상용화에 성공해서 B2C를 정착시킨 기업이 아니면 채용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 매년 안정적인 매출을 파악하기도 힘들고 그렇기에 체계적인 연간계획을 세울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사람을 무턱대고 뽑으면 그 회사는 망하는 지름길로 달려가는 것이다. 한번 뽑아놓은 사람을 퇴사시키는 것은 한국의 노동법으로도 어렵지만 회사의 구성원에 책임감을 가진 경영자라면 하나의 인간이기에 더욱 쉽지 않다. 아무리 밉상이고 일을 못하는 직원이라도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는 해고 통보성의 문장은 목구멍에서만 감돌뿐. 감정이 퇴화되어버린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해고 통보는 애정이 식어버린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콘텐츠 제작, IT계통의 인력들은 회사에 대한 애착이 그리 크지 않은 경우도 많다. 물론 이쪽 회사들이 일반인들에게는 듣보잡이고 작은 규모가 대부분이라 삼성이나 현대처럼 회사 자체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프라이드가 생기는 그런 상황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반대로 이쪽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본인이 무슨 콘텐츠를 어떤 포지션으로 참여했는지다. 쉽게 말하면      


“내가 영화 명량의 제작 스태프였어, 뽀로로의 애니메이터였어”     


라고 자랑을 하며 다른 이에게 자신의 이력을 어필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회사의 대표 입장에서는 회사에 대한 애착이 없는 것은 너무 아쉽다. 그러나 어쩌겠나? 우리는 픽사도 디즈니도 아닌 것을.       


그렇기 때문에 보통 이쪽 사람들은 정규직이 되는 것에 대해 별 미련도 없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아 쿨하게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업기획운영, 콘텐츠제작관리같은 역할을 하는 회사의 운명을 어느 정도 공통으로 책임질 수밖에 없는 이른바 이사급의 순장조를 제외한 나머지의 인력은 고무줄처럼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고용 상의 특수상황은 회사에 많은 약점을 만들어낸다. 그중 핵심은 잦은 인력의 교체로 인해 기술이나 콘텐츠의 노하우가 제대로 회사 내부에 축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가내수공업자
  

소기업, 소상공인 이야기를 해보려다 변명이 좀 많았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나 스스로가 디지털 시대의 가내수공업자라고도 생각한다. 일단 규모가 작은 회사라 1년에 개발할 수 있는 콘텐츠의 양 자체가 많지 않다. 제작방식이 디지털이라고는 하지만 마우스와 키보드질을 적절히 이용해 매우 더디고 꼼꼼하게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다루고 적용하는 기술들이 까다롭고 어렵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시행착오들이 발생한다. 망치와 정만 안 들었지 정말 가내수공업과 매우 흡사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항간에는 컴퓨터가 발전했으니 예전보다 훨씬 쉬워지지 않았나요? 하고 묻는 질문도 있다. 그런데 저작툴이라고 부르는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제아무리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일을 자동화하는 건 한계가 있다. 일례로 3D 입체영상 제작과정 중에 컨버팅이라는 과정이 있다. 원래 3D 입체영상은 왼쪽과 오른쪽 카메라 두 대를 이용해 만드는데 컨버팅은 카메라 한 대로 찍고 후반 작업 과정을 거쳐 두 개 이미지를 뽑아내는 제작기술을 의미한다. 프레임 바이 프레임, 일일이 디자이너가 프레임 하나하나를 만지면서 작업을 진행하는데 당연히 작업공정이 너무 노동집약적이라 자동화가 연구개발 이슈로 떠올랐다. 실제로 막대한 정부예산이 투여되어 컨버팅을 돕는 자동화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었다. 그런데 사람 손으로 진행하는 기존 컨버팅 과정의 자동화가 0%이라면. 그 프로그램의 자동화율은 10% 미만이다. 나머지 90%는 여전히 사람 손을 거쳐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런 노동 집약화의 과정을 실제로 현장에서 노가다질, 삽질이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이런 척박한 노동 작업을 있는 그대로 소개하기에는 다소 멋쩍어 가내수공업 형 소기업을 포장하기 위한 마케팅 용 단어를 하나 고안해내어 가끔 써먹는다.     


부티크 형 프로덕션!

부티크 형 프로덕션 파란오이!      


부티크! 아주 멋있고 세련된 이름이지 않나? 이 단어의 어감은 내가 꼭 상류사회 사람들을 위해 맞춤복을 제작하는 디자이너가 된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착각도 자유니 포장도 내 자유겠지하고 속으로 자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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