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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양현 Mar 01. 2018

다양한 갈등과 분쟁 속으로

달콤하기도 씁쓸하기도 했던 7년 동안의 소기업 창업일기

회사의 갈등과 분쟁도 아스피린처럼 삼키면 단번에 해결될 순 없나요?

살면서 남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향적인 성격 상 떠들썩하게 내 입장을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거나 초지일관 고집불통을 부려 의견을 관철하는 쪽은 아니다. 갈등이 발생하면 상대방과 대화로 푸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창업을 해보니 회사 운영은 내 의지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개인이었다면 겪지 않았을 다양한 갈등과 분쟁들이 단지 회사와 경영자라는 이유만으로 발생했다. 이 갈등과 분쟁은 회사 대 회사인 경우도 많았지만 회사 대 개인인 경우도 빈번했다. 창업 후 분쟁을 처음 경험했을 때의 아찔함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이후로도 편두통처럼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갈등의 상황들은 늘 처음 대하는 일처럼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아스피린처럼 삼키면 시원하게 해결되는 일이면 좋으련만 해결책은 늘 요원하고 어려웠다.   


제 아무리 성인군자와도 같은 덕성과 품성을 지닌 이도 회사를 운영하면 갈등과 분쟁을 숙명으로 여겨야 한다. 역설적으로 갈등과 분쟁이 발생하지 않으면 그 회사는 영업활동을 하지 않는 회사 즉 죽은 회사일 수 있다. 애플이나 구글, 한국의 삼성, 현대 같은 거대 다국적 기업들은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을, 심지어 국가까지 상대해야 하는 소송을 해마다 수십, 수백 개를 진행한다. 재단의 자선사업이 아닌 이상에야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의 속성상 회사의 영업행위와 성장과정은 필연적으로 갈등과 분쟁을 동반한다. 보통의 스타트업은 시장에 들어가 남의 피자 조각을 빼앗으며 기존 기업과 경쟁을 하는 것이다. 당연히 피자 조각을 빼앗긴 쪽에서 피해를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갈등과 분쟁이 발생한다.     



돈을 떼여 미수금이 발생하는 경우


대기업이나 어느 정도 비즈니스 모델이 안정된 회사의 경우 회사 간의 분쟁은 주로 지적재산권 즉 IP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소기업 입장에서 분쟁을 경험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일을 해주고 받아야 할 돈을 제때 받지 못한 상황, 전문적인 용어로 매출채권이 발생했을 때다. 물론 대기업도 영업이나 제품의 하청 제작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매출채권이 발생한다. 대기업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미리 적립금을 쌓아놓는 개념인 대손충당금과 회계처리 중 하나인 방식인 대손상각비라는 것을 설정해서 매출채권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또 분쟁의 상황에서는 법무팀이 즉각적으로 개입해 소송이나 채권추심 같은 실무를 진행한다.       


그러나 회사 규모가 작고 자금사정이 녹록지 않은 소기업은 법적인 절차를 진행하는 것도 어렵고 몇 번의 미수금만으로도 회사가 휘청이게 된다. 나 역시 회사를 운영하지만 수차례 미수금을 받지 못했고 매출채권은 해마다 조금씩 쌓여서 천만 원을 넘어간 지 오래다. 궁색한 변명이지만 돈을 받아내야 할 회사가 망해버리거나 담당자가 잠수를 타버려서 채권을 청구할 대상을 설정하는 것도 버거웠고 고발이나 소송 같은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것도 시간이나 비용 측면에서 도저히 엄두가 안 났다. 최근에는 회사 홈페이지 리뉴얼을 맡긴 업체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 환불을 요구했지만 돈을 떼인 경우도 있었다. 백만 원이 되지 않은 소액이라 변호사를 통한 정식 소송은 생각지도 못했고 현재 홈페이지 리뉴얼을 진행한 직원이 홈페이지 제작 업체를 상대로 전자소송을 진행 중에 있다.     



계약의 주체가 복잡한 상황


계약과 일의 주체가 단순히 갑과 을이 아닌, 하청이나 재하청까지 내려가면서 갑-을-병-정 형태로 사업의 구조가 복잡해지면 분쟁이 일어날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쉽게 이야기해서 갑은 을에게 일을 주었는데 을이 일의 일부를 떼어 병이나 정에게 하청을 떼준 상황을 말한다. 분쟁이 발생하기 쉬운 이유는 복잡한 계약관계로 인해 업무 진행과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아파트나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편의점에 가면 작은 모니터가 어딘가에 부착되어 있고 그 안에서 광고나 홍보영상이 돌아가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형식의 미디어를 통칭해서 디지털 사이니지라고 부른다. 기존의 전통적인 TV나 극장이 아닌 새로운 개념의 뉴미디어인 셈이다. 디지털 사이니지 영업을 전문으로 하는 에이전시는 다양한 장소들에 미디어 인프라를 미리 깔아놓고 광고주가 될만한 대상, 예를 들어 지역의 병원이나 식당 혹은 관공서 같은 곳을 접촉하며 매체 홍보 일감을 따온다. 그 안에 돌아가는 콘텐츠는 에이전시에서 직접 만들지 않는다.  제작비용은 서비스로 제공하거나 비교적 소액을 책정하는 경우가 많으며 보통은 영상제작업체에 외주 형태로 맡기게 된다.      


창업 초기에 나도 에이전시의 의뢰를 받아 디지털 사이니지용 영상을 여러 번 만든 일이 있다. 한 번은 에이전시가 공기관의 매체 홍보 일감을 물어왔다. 우리는 공기관이 홍보해야 할 정책을 영상으로 만드는 일을 진행했고 진행하기 전에 기획안과 스토리보드를 만들어 내용을 협의했다. 협의의 당사자는 공기관이 아니라 우리와의 계약 주체인 에이전시였다. 몇 차례의 내용 수정 끝에 컨펌이 되어 영상제작을 완료하였다. 그런데 공기관이 시사를 한 후 내용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을 요구했다. 요구사항을 들여다보니 완전히 다시 제작을 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이 정도가 되면 내 회사는 돈을 벌기는커녕 손해를 감수하면서 일을 진행해야 판이다. 나는 에이전시에 우리는 기획안과 스토리보드를 준수해서 제작을 했고 그렇기에 요구한 수정 작업은 못한다고 단호하게 통보했다. 내가 한 발도 물러서지 않으니 중간에서 일을 중개한 에이전시의 담당자도 공기관과 우리 사이에 낀 상태가 되어 난감해했다. 그러나 나 역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일을 할 수 없었기에 더 이상 일을 못하겠으니 소송을 하려면 소송을 하라고 버텼다. 옥신각신하는 과정 속에 서로 간에 고성과 험악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결국 에이전시는 자신들에게 큰 광고주였던 공기관과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다른 업체와 수정 작업을 진행했다. 그 뒤로 그 에이전시와는 다신 거래를 하지 않게 되었고 당연히 담당자와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개인과의 갈등 - 외부인


회사는 개인과도 갈등을 일으킨다. 개인은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외부인일 수도 있다. 내 경우 주로 회사 내부 인력이 할 수 없는 일을 외주 작업자 즉 외부인을 일시적으로 고용해 맡겼을 때 발생했다. 계약을 하고 일을 진행했는데 외주 작업자가 일을 제대로 못했다고 판단하면 회사 측 입장에서는 본전 생각이 날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아직 주지 않은 잔금을 깎고 싶어 할 수도 있다. 반면에 작업자 입장에서는 나는 정상적으로 일을 했는데 회사가 괜한 트집을 잡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작업자는 회사 측의 작업료 인하 요구 자체를 아예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작업자가 자신의 실수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회사 측에서 잔금 지불에 대한 협상 과정을 부드럽게 진행하지 못하고 너무 일방적이다고 판단하면 당연히 서로 간에 갈등이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회사 대 개인의 갈등은 아무리 회사가 소기업이라 하더라도 개인이 불리한 경우가 다반사다. 일단 개인은 회사에 밉보이면 일감이 끊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잔금을 떼여도 회사에 문제제기를 끝까지 진행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또 작업자 입장에서 체불된 수백만 원의 작업료를 받아내기 위해 역시 수백만 원이 드는 소송비용을 감당하는 자체가 쉽지 않다. 이러한 맹점을 악용해서 작업자에게 지불할 비용을 체불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못된 대표들도 주변에서 봤다. 톱스타에게는 벌벌기며 제작을 끝내기도 전에 연기료 완불을 하는 외주제작사가 정작 작업에 참여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들인 스태프들의 작업료 지급을 미루는 것도 이런 구조상의 취약성을 악용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나도 한때 무소속의 프리랜서로 일을 해봤기 때문에 개인이 회사를 상대로 겪는 설움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회사 대 개인 간의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회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상황을 프리랜서가 그냥 꾹 참고 수용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창업자는 개인과 분쟁이 발생한 경우 불리한 입장인 작업자를 존중하고 충분히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작업료 같은 민감한 이슈를 협의해야 한다면 서두르기보다 동의와 이해를 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인과의 갈등 - 직원


개인과의 갈등은 외부인이 아닌 내부인 즉 직원과도 생길 수 있다. 보통 부당한 업무를 지시받았거나 혹은 철야근무처럼 무리한 처우를 창업자나 회사가 요구하는 경우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사실 이런 갈등의 시작은 회사를 내 분신이라고 생각하는 창업자와 회사는 단지 주어진 업무를 감당하면 되는 일터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직원과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직원과 갈등이 생긴 경우도 보통은 회사가 유리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가진 돈까지 다 털어서 회사에 올인하는 창업자 입장에서는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직원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회사 운영에 대한 모든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고 성공에 대한 과실을 독차지할 수 있는 창업자가 고용된 직원에게 창업자와 동일한 주인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일 수 있다. 수억의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면, 궁색하고 빠듯한 소기업의 살림살이에서 직원에게 주체적인 자율을 기대하는 것은 더욱이 난센스다. 그렇다면 직원과 갈등이 발생했을 때 상대방 즉 직원의 입장에서 더 적극적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갈등과 분쟁은 창업자의 업보다.

이렇게 회사 운영에는 크고 작은 갈등이 필연적이다. 분란 거리를 아예 만들지 말자라고 생각하기보다 차라리 창업자의 업보라고 생각하는 것이 속편하다. 그러나 갈등과 분쟁이 많아지면 회사의 이미지는 좋을 리 없다. 게임개발사 들 중에는 야근을 너무 많이 시켜 개발자들에게 악명이 자자한 블랙리스트들이 있다. 역시 디지털 콘텐츠 분야에도 낮은 처우와 혹독한 업무환경 때문에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회사가 있다. 이런 회사들의 구인광고는 365일 연중 쉴틈이 없다. 나 역시 다양한 회사 대표들과 미팅을 하기 위해 여러 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대표가 직원을 어떻게 대하는 지만 보더라도 그 회사의 잠재적인 갈등 요소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대표가 아랫사람 종 부리듯이 직원에게 차를 시키거나, 미팅 중 대표의 발언을 수동적으로 받아 적기만 하는 직원의 모습을 보면 회사에 내재되어 있는 직원들의 불만과 갈등은 뻔할 뻔자다.


내 경험상 갈등과 분쟁을 조정할 수 있는 출발점은 대상이 개인인 경우에는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을 하는 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대상이 회사라면 당장 코 앞에 닥칠 결과보다 조금 더 멀리보고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나았다. 특히 소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과도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갑 앞에서 당장 일감이 떨어진다고 매번 굽신거리고 비굴한 모습을 비추는 것보다 회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하면 단호하게 행동하는 것이 회사에도 도움이 되었고 같이 일하는 동료나 직원들에게도 덜 미안했다. 그러나 나에게 아직은 갈등과 분쟁은 늘 어렵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거나 득도를 하지 않는 이상은 아마 평생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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