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최양현 Jan 12. 2019

친구의 충격적인 증언

전범이 된 조선인 포로감시원의 르포르타주

포로 환자 수용소 경비 업무

나는 일반 포로수용소에서 포로 환자 수용소의 경비로 업무가 바뀌었다. 사방이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이 건물은 몇 달 전까지만 하도 수녀원이었다. 중앙의 예배실이 있던 자리에는 지금도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큼지막하게 걸려있어 환자들의 예배실로 쓰인다. 잔디밭의 정원, 잘 구획된 담장들, 어두컴컴한 지하실 같은 공간들은 오랜 기간 동안 수녀들이 하느님에 대한 절실한 염원을 단련하던 곳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공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방 한 칸이 사무실로 쓰이기 위해 치워 질 때는 한 질도 넘은 괘종시계가 부주의로 넘어져 깨져버린다. 병사 한 명은 구둣발로 주변의 물건들을 빵빵 차 버린다. 벽에 걸린 장식품이나 아기자기 꾸며놓은 정원의 물건 등이 모두 한쪽 쓰레기장으로 옮겨진다. 군화는 닥치는 곳마다 파괴하며 위력을 발휘한다. 


새로 부임한 수용소장 간다 대위는 군의관이다. 그는 평소에 “의술은 인술이다. 생명은 존중되어야 한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 차에 포로가 된 군의관을 동승하고 동분서주한다. 의약품, 우유, 빵 등이 궁색한 와중에서도 포로들에게 최대한 공급된다. 그는 부하의 경례에 부하처럼 차례 자세로 답례한다. 우리는 그를 구세주라고 불렀다. 세상에 악마가 있긴 하지만 악마가 있기에 구세주가 있는 모양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이 수용소 안에 평화가 깃든다. 의약품의 부족, 자재의 부족, 영양 부족에다가 침대, 침실의 허술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마음에 평화를 느낀다.


나는 수용소 환자실을 돌아봤다. 시멘트 바닥에 약간 삐뚤게 깔린 침상들이 있고 그 위로 헌 옷을 걸치고 누워있거나 앉아 있는 환자들, 조그마한 조립식 침대도 보인다. 그들이 어떤 병에 걸렸고 병세가 정도인지는 내 알 바가 아니다. 치료실엔 주사와 각종 약, 연고들이 보인다. 뜰에 나서니 좌각에 몸을 의지하고 한 걸음씩 걸어보는 환자도 보인다. 


간혹 수녀가 심야에 넘어 다녔다는 전설이 있는 높은 담벼락 모퉁이에는 밤새 전등불이 요란하다. 전등불 아래엔 모기 벌레 등 곤충류가 모여든다. 수용소 안에는 여러 마리의 도마뱀이 덜컥 덜컥 먹이를 잡는다. 녹색의 비늘 가죽이 두터운 큼직한 도마뱀도 보인다. 그것들은 우리의 찬장이나 밥그릇에도 거리낌 없이 달려든다. 우리는 모기와 도마뱀과 파리와 함께 살고 있으며 피할 길은 없다. 


오지 않는 교대부대

우리가 군복을 입고 군속의 문에 들어선 지도 만 2년이 지나갔다. 약속의 2년 기한이 지났는데도 우리를 교대할 부대는 오지 않는다. 하긴 교대인원을 수송할 배조차도 없다. 배가 있으면 군수물자를 우선 수송해야 할 형편이다. 하지만 계급이 있어서 진급이 되는 것도 아니고 봉급을 올려준다는 약속도 없다. 우리와 같이 왔던 소위는 이제 대위가 되었다. 직무가 그대로라 할지라도 그들은 계급에 따라 허세를 부린다. 우리가 조선인만 아니었다면 항의도 하고 불평도 호소했겠지만 그들은 우리의 형편에는 아랑곳없다. 전시 상황이니 모든 국민은 승리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마지못해 몇 명에 게 군속고원(군속 가운데 근무성적이 좋은 몇 명을 최하급 관리인 판임관 대우의 고원으로 승격해주었다)이란 계급을 달아줬지만 업무는 매 마찬가지다. 


계약기간이 지난 후부터 음주와 술주정 상관에 대한 폭행 그로 인한 군법회부 육군 형무소행 같은 사건들도 간혹 발생한다. 여기서도 육군 상사를 폭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상관 폭행죄를 처리하는 것을 보니 다시 한번 비애감을 느낀다. 고국에서도 차별은 다반사였지만 만리타국에서도 내선의 차별은 완연하고 불가항력이다. 게다짝(일본 전통 나막신)의 민족은 이 땅의 많은 종류의 인종 중에서 단연 최상의 위세를 누릴 수 있는 종족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무데서나 조선인이니 조선민족이니 하는 단어를 쓰지 못한다. 필요한 때도 없으며 자랑스러운 것도 아니며 자칫하면 경멸의 대상이 될 따름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본인처럼 일본어를 잘 구사하였으며 이름도 창씨 개명되어 겉으로는 누가 일본인이고 조선인인지 곧바로 구별해낼 수 없다. 


아니다. 나는 일본인이다.

어느 날 나는 포로에게 넌지시 말한 적이 있다. 

“일본 본토는 지금 공습이 심하다. 도쿄는 지금 재가 되었다. 전쟁은 비관적이다.”

그러자 그는 방금 마음을 튼 친구가 된 듯 말했다. 

“그래 이 전쟁은 빨리 끝나야지. 당신은 코리아 사람이지?”

나는 당황했다. 그들은 우리의 국적을 정말로 알고 물은 것일까. 그러나 나는 단호히 대답했다. 

“아니다. 나는 일본인이다. 일본인”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나는 약간의 죄책감을 가졌다. 나와 민족을 속이고 살아야 하다니. 그러나 지금 나의 상황에서는 내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면적인 갈등과 불평과는 달리 외면적인 행동은 이기주의적인 방향을 취했다. 


어렸을 때부터 가정이나 학교에서 일본에 항거해야 한다느니, 어디서 독립투사가 고군분투하고 있다더니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없다. 1940년 무렵에는 만주의 공비도 이미 평정이 되었고 만주국 황제가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국 황제와 우의를 교환했다. 일본군 가는 곳에 항복이나 후퇴는 없다. 패전이란 오직 전멸 즉 옥쇄가 있을 뿐이다. 포로가 된다는 것은 천황과 국가에 대한 불충이며 군인으로서 더없는 치욕적 사건이다. 


생명을 존중하는 서양인

총을 버리고 두 손을 들고 나온다... 그리고 구속되어 끌려간다... 다음날부터는 오직 능멸을 받고 궁핍한 생활을 계속한다... 이러한 일은 생각하기도 싫다. 그것은 오직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이다. 그들은 생명을 제일 존중한다. 조금만 위기에 처하면 곧잘 두 손을 들고 나온다. 포로가 된 후에는 집에 남은 처자에게 안부 편지나 주고받는 것을 제일의 낙으로 삼는다. 그들은 전쟁이 끝나서 집으로 돌아가면 명예로운 귀환 용사가 된다. 이러다 할 전투 한번 못했는데도 사령관 이하 전 장병이 위로를 받는다. 


여기 그 증거가 수두룩하다. 수많은 포로와 이들을 데리고 있는 수용소가 있지만 전투가 벌어진 흔적은 드물다. 나는 여기서 공습으로 파괴된 몇 채의 주택과 몇 척의 배, 그리고 망가진 고사로 몇 문을 보았을 뿐이다. 그들은 도주하고 모여들고 또 도주하고 모여든 끝에 결국은 백기를 내건다. 투항을 하니 일단 생명은 건진 것이다. 


만주나 중국에서는 무절제하고 끝없는 살육을 감행한 일본군이지만 여기 동남아에서는 싸워야 할 적군이 대부분이 문명국이며 국제 협약이 겉으로는 효력을 발휘하는 곳이었기에 어느 정도 관용을 베푼 것도 있을 것이다. 언제 답장이 올지도 모르지만 서신을 허용하고, 장교에게 봉급을 지급해 부식품을 구입하게 하고 노역을 시키지 않는다. 국제 적십자사를 통해 형식상으로도 일용품을 분배하고 있다. 그러나 급양의 부족으로 포로들의 몸은 지방질은 빠지고 뱃가죽은 엷어져 덜렁거린다. 


날짜의 신을 사귀어놓으면 앞으로 또 다가올 날들을 빨리빨리 지나버리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그것은 무서운 일이다.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이 전쟁이 끝나지 않으면 나는 이 고뇌의 서러움을 어디에 배설할 것인가. 역시 날짜는 날짜대로 24시간씩 흘러가는 것이 좋겠다. 


세레베스 섬 행 포로선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

오늘부터 1개월 후에 나는 포로 수백 명과 같이 티모르 섬에 가서 비행장 건설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가기 전 1개월 동안은 군사훈련을 열심히 하란다. 티모르 섬은 이 나라의 동쪽 끝에 있는 꽤나 큰 섬으로 적국인 호주와의 거리는 채 500km도 안된다. 우리는 수카부미라고 불리는 고원지대의 선선한 소도시에서 맹훈련을 받는다. 잔디밭에 엎드리니 흙냄새가 코를 흥분시킨다. 밥맛도 매우 좋고 몸은 튼튼해진다. 훈련이 끝날 즈음 명령은 변경되어 비행장 건설은 취소되었다. 자칫하면 잃을지도 모를 생명줄이 다시 이어진 것에 자위했다. 본 대로 돌아가니 동료 몇 명이 새로 들어왔다. 그중 동향의 친구 하나를 만났다. 그의 눈언저리엔 몇 바늘 꿰맨 흉터가 있었다. 

포로수용선들 침몰지를 표시한 지도, 연합군의 무제한적인 잠수함, 전투기 공격에 의해 상당수가 격침되었다. (http://www.powresearch.jp에서 인용)


“너 어디 가서 눈에 흉터를 만들어 가지고 왔니?” 

“야 나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 

“어쩌다가...?” 

“세레베스 섬(현재는 술라웨시섬)에 가려다 못 가고 왔어.” 

“뭐하러 갔어?” 

“포로 2백 명을 데리고 배를 타고 가는데 그만... 차마 못 볼 거를 봤어. 글쎄 세레베스 섬으로 비행장 건설을 하러 가는데 중간쯤 가다 잠수함 공격을 받아가지고 배가 물속에 침몰돼버린 거야.” 

“그래서?”

다잡아 물었다. 

“간신히 바다에 뛰어들어서 헤엄치고 있는데 좀 있다 조그마한 배가 하나 오더니 우리를 건져줬어.” 

“그래서 다 구출되었어?” 

“배가 빙빙 돌아다니며 군인들을 구출했지.” 

“그리고?” 

“그리고 나서 적선이 오더니 총으로 마구 갈겨대는 거야.” 

“그래 어찌 되었어?” 

“그리고 배가 빙빙 돌면서 바다에 마구 총을 갈겨대니까 바닷물이 벌개졌지.”

“그래 그들이 어떻게 했어?” 

“살아남은 사람들은 물속에 고개를 처박고 또 들고 했는데 나도 남김없이 갈겨대더라고”

 “흠...” 

“나는 처음 꽝 하는 순간 바다에 뛰어들 때 눈을 다쳤어. 눈에서 피를 줄줄 흘린 채 구출 되가지고 병원에 옮겨져서 몇 바늘 꿰매고 이주일 동안 치료를 받았어.” 

“그래 지금은 괜찮아?”

“그래 이제 괜찮아. 하지만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그래 다행이다. 운이 좋았네. 하지만 참 비참한 일이다.” 


동향 친구의 말을 듣고 나는 티모르 섬에 안 가게 된 것을 무척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티모르 섬은 세레베스 섬보다 더 멀고 험한 곳이다. 거기에 갔더라면 틀림없이 봉변을 당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정황들은 전세가 불리한 국면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전 13화 하푸카스 여인과의 만남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조선인 포로감시원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