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정도였다. 강아지를 데리러 간만큼을 다시 올라와야 했다. 주인 내외분은 건강하게 잘 키워달라며 집 앞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입양 계약서를 손에 쥐고 감사하다며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드리겠다고 하고 서둘러 출발했다.
데리러 가는 길에는 약간의 설렘과 긴장감이 있었다. 어떤 친구가 있을지, 어떤 첫 만남이 될지 몰랐으니까. 뒷자리의 조그마한 상자 안에는 어리둥절한 모습의 강아지가 엎드려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왠지 모를 후련함과 이제 저 작은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약간의 부담감이란 씨앗이 마음에 심긴 듯했다. 깊게 심지는 않았지만 나 여기 있다는 표현의 봉긋한 흙무더기 정도랄까. 저 강아지가 정말 우리의 가족이 될까?라는 생각을 수백 번 되뇌었다.
백미러로 흘깃 쳐다보니 다행히 멀미는 하지 않는 듯했다. 성격이 태평하여 잠을 자는 것인지 아니면 생경한 스트레스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부모를 떠나 다른 가족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어쩌면 저 강아지의 삶에 큰 변곡점이 될 터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와 딸아이는 강아지의 이름을 짓기로 했다. 부를 호칭이 필요했으니까. 한 여름에 데리와 왔으니 ‘여름이’, 새 하얀 털을 가졌으니 ‘두부’, 성격이 순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순심이’, 엉뚱한 아빠가 두서없이 떠올린 ‘찰리’, 지금은 약간 노란 배냇털이 있어서 ‘인절미’ 등등 다양한 후보군이 나왔다. 그때였다.
‘덕배 어때?’
아내가 말을 꺼내고는 자신도 어이가 없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나중에 덩치가 커져도 성격은 순딩 순딩해서 촌스러운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까 했단다. (세상의 모든 덕배분들에게 죄송한 마음도 있다.) 딸아이는 덕배라는 이름이 그다지 내키지 않는 듯했다. 당연하지. 나중에 친구들에게 소개할 터인데 초롱이, 하양이, 두부 같은 귀여운 이름이 아니라 덕배같이 아저씨 같은 이름을 말해주면 좀 그렇지 않은가. (다시 한번 세상의 모든 덕배분께 사과드립니다.)
‘재이야 덕이 무슨 뜻인지 알아?’
내가 물었다.
‘내가 알아. 덕은 다른 사람을 위하는 넓은 마음이야’
초등학교 방과 후 시간에 한자수업에 배웠단다. 그래, 그 넓은 마음을 두 배, 세 배 가지라고 덕배라고 짓는 건 어떠냐고 되물었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어쩌겠는가. 아빠와 엄마가 이미 덕배라는 이름에 마음을 빼앗겼는걸. 돌아오는 두 시간 동안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덕배만 한 이름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딸아이도 반은 포기한 듯싶었다.
옳지, 이제 너의 이름은 덕배다. 송덕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