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 기억난다. 저어기 기억의 골짜기 밑에서 뾰로롱 하면서 선명하게 고개를 내밀었다. 10년 정도 전의 일이다. 서울에서 맞벌이로 직장을 다니다가 강원도 원주로 내려온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우리에게 아이는 없었다. 출산을 위해서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처갓집이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왔지만 임신이 사람의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절히 깨닫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파트 앞 상가 2층에 작은 강아지 분양하는 곳이 있었다. 애견호텔과 강아지 분양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아이의 빈자리와 그보다 큰 헛헛함을 채워줄 어린 생명이 필요해서인지는 모르겠다. 더구나 평소 반려견에 대해서 일언반구 없었던 우리 부부는 그냥 산책 삼아 다녀오자 동의했다.
그 가게는 남매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얼핏 봐도 강아지를 좋아하는 누나와 누나의 일을 도와주는 착한 남동생이 운영하는 듯했다.
'어떤 아기 찾으세요?'
'아 요기 앞 아파트에 사는데 구경삼아 와봤어요'
'아, 네 그러시구나. 편하게 둘러보세요'
구경삼아 와봤다니..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위험한(?) 워딩이지만 쨌든 구경하러 온 것은 사실이었다. 그중 우리의 눈길을 끄는 친구가 있었다. 샤페이라는 견종이었다. 유명 아이돌이 키우는 견종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던 강아지였다. 주름은 자글자글하고 주둥이가 짧아서 못생김 그 자체였다. 중국에서는 황실에서 키우던 개라고 하며 털이 짧고 거칠어 모래 사자를 써서 샤페이라고 한다고 했다. (글 첫머리에 있는 그 강아지다)
안타까운 것은 그 친구가 이미 다른 집에 한번 다녀왔다고 했다. 무슨 말이냐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파양 당했다는 말이었다. 입양한 가족이 하루 만에 못 키울 것 같다고 다시 돌려주었다고 했다. 강아지의 표정에서 억울함과 슬픔이 느껴졌다.(원래 그렇게 생겼는데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돌아오는 길에 그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를 우리 집에 데리고 올까 라는 의견도 나왔지만 선뜻 그러자라는 합의가 되지 않았다. 내 기억에는 서로 주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도 없는 상황에서 강아지를 키운다고 하면 양가 부모님들이 어린아이 대하듯 잔소리를 늘어놓을 것이 뻔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가 아직 또 다른 생명을 책임질그릇이 못된다는 것을 은연중에 인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만약 그 친구를 우리 집에 데려오자고 했다면 그 아이가 덕배가 되었을까?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살고 있을까? 좋은 가족을 만났을까?
예전 그 아이와는 다르게 새하얗고 꼬불꼬불한 털을 가진 덕배가 지금 내 의자 밑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덕분에 10년 전 덕배가 될뻔한 한 아이의 생각에 잠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