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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ndol Jun 03. 2017

장항습지에서

버드나무와 말똥게 그리고 펄콩게의 게걸음 이야기

비포장 도로를 달린다. 앞차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흙먼지를 인다.  도시의 냄새나는 새까만 매연이 아니라 그런지, 멋있어도 보인다.  사람 발길 드문 곳에서 종종 느끼듯이, 이곳은 딴 세상이다.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지 않다면, 이렇게 딴 세상으로 남아나진 않았을 거다.


자동차로 자유로를 달리면서도, 항상 한번 들어가 봤으면 하는 호기심이 있었는데... 특히 낙조를 배경으로 나는 새떼를 볼 때는 정지하고 싶었다. 누구라도 한 번은 그런 생각했을, 이곳은 장항습지.

습지, 갯벌이라고 하면 전라남도 순천만이나 강화 어디쯤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바로 지척에 이런 곳이 있었다는 것을, 눈 앞에서 확인하고서야 놀랐다.

하늘이 마주 닿을 듯하고,  논이 있고, 앞으로 시야가 트였다. 다행이다. 곤충처럼 시야가 그렇게 넓었더라면, 이런 기분은 못 느꼈을 거야.

물론 뒤로는 자유로 자동차가 쌩쌩 달리지만, 후다닥 하고 날아드는 꿩 한 마리에 그 사실은 곧 잊히고 만다.  아까시나무도 있고, 족제비싸리도 많지만, 밖에서 본 초록 덩어리 대부분은 버드나무다.

장항습지가 우리나라 최대의 버드나무 군락이 이곳이란 것도 처음 알았다. 물 좋아하는 버드나무라지만, 서해의 짠물이 가시지 않은 이곳에 뿌리박고 군락을 이룬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버드나무 숲 사이로 난 비밀의 통로 같은 길을 따라 들어간다. 제법 단단하지만 게 구멍이 뻥뻥 뚫린 습지 바닥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산다는 네 종의 게 중에 하나인 말똥게가 들랑달랑. 사람이 들어오는데도, 게눈 감추듯 사라지지 않고 말똥처럼 자리 잡고 슬슬. 하지만 말똥구리처럼 말똥을 먹는 게 아니라, 습지에 떨어진 버드나무 잎이 주식이란다. 젖어 부드럽고 눅눅해지면, 그게 그렇게 맛있다나... 공기가 통하지 않는 습지에 말똥게는 숭숭 공기 구멍을 내주고 버드나무의 호흡을 돕는다. 그렇게 둘은 공생으로 약속한 절친이라는, 다 알려진 비밀도 새로 알았다.   


생각보다 쉽게 보이는 쓰레기에 놀랐다. 텐트치고 노는 장소도 아는데. 한 달에 두 번 이곳까지 물이 차오를 때 저 멀리 서해에서부터 밀려온 것이란다. 그중에는 중국산이 적지 않다는 설명을 듣고, 다시 한번 아! 쓰레기를 줍고 환경부가 해로운 식물이라고 지정한 '가시박'을 뜯어낸 다음 좀 더 강 가까이로 들어가 본다.

이어지는 버드나무 숲을 지나 도착한 습지는 제대로 갯벌을 닮았다. 검은색 흙 습지가 강까지 펼쳐진다. 강 너머 멀리로 김포 신도시 아파트 꼭대기들이 살짝 드러나고, 30도쯤의 각도로 창공을 나는 장난감 같은 비행기가 보인다. 딴 세상에서 보는 비현실적인 데자뷔 같은 거랄까.

하지만 땅으로 고개를 돌리면, 선명한 고라니 발짜국이 눈에 찍힌다. 깊이와 모양으로 추측하건데, 푹하고 체중이 실렸다. 달린 흔적인데 어디까지 가다 버드나무 숲 속으로 쏙 들어간 것일까? 따라가 보고 싶지만, 한두 마리 자국이 아니다. '아, 그러니까 바로 근처에 야생이 있었네' 하며 쪼그리고 앉는 순간, 이곳이 습지, 갯벌이란 사실을 다시 실감한다.

무엇이든 다 알려주는 네이버에서 '환경부님'의 설명에 따르면, 습지는 1년의 일정기간 이상 물에 잠겨 있거나 젖어 있는 지역이다. 논, 밭, 갯벌, 늪, 뻘 등이 모두 습지인 셈이다. 습지(濕地 wetland)의 기능과 가치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홍수조절, 해안선의 안정화 및 폭풍 방지, 영양분과 먹이의 공급, 기후조절, 수질정화, 생물종 다양성 유지.

종종종 옆걸음 치는 손톱보다 작은 '펄콩게'를 발견하고, 그중 마지막 '생물종 다양성 유지' 항목을 눈으로 확인한다. 람사르 조약을 외기보다는 역시 현장을 목격하는 것이 공부다.




펄콩게의 옆걸음에 나도 한번 횡으로 길게 줄을 그어본다.

앞으로만 가는 직선의 어느 한 군데에서 지쳐 선 나는

그의 게걸음에서 어떤 이유라도 찾아볼 요량으로 들여다본다.

다리 열 개의 이 작은 갑각류도 혹시 직선의 목적을 의심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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