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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ndol Jul 17. 2017

달맞이꽃

해운대 바다 달빛 들면 달맞이고개 활짝 피어나요.

달맞이꽃. 흔히 해가 저문 밤에 핀다고 알려진 꽃이다. 높은 기온에서는 꽃이 피지 못하는 특징 때문이다. 빛에 반응해서 어두워야만 꽃이 핀다는 그런 뜻은 아니다. 벌과 나비가 퇴근한 후에야 꽃이 피면 수정은 어떻게 하느냐고? 밤에 일하는 야행성 나방이 기다리고 있다. 노란 꽃 속으로 고개를 들이민 나방이 나올 때면 한껏 농익은 꽃가루가 딸려나온다. 진득한 액이 거미줄처럼 나방 발에 걸쳐 그렇다.

하지만 누구든 밤보다 낯에 달맞이 꽃을 본 적이 월씬 더 많다. 낮에도 필뿐만 아니라, 뭐든 밤에는 잘 안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낮에 노랗게 핀 달맞이꽃을 보면서, 바로 이 것이 밤에 피는 달맞이꽃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듣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저녁때쯤 제대로 피어나 눈길을 끈다는 뜻인지 일본에서는 '석양의 벚꽃'으로 영어로는 Evening promise란다.

'달맞이'라는 이름에 뭔가 전통적인 느낌 가득하다. 둥근 보름달이 있는 밤하늘이 연상되기도 하고, '달맞이고개'의 달맞이꽃 군락을 한번 생각해 본다. '교교'한 보름달빛이 비치는 해운대 바다를 배경으로 핀 노란 꽃을 상상하는 것이다. 아는 사람 알겠지만 해운대 해수욕장 위쪽으로 달맞이 고개가 있지 않나. 화려한 관광지로 변한 지금 그런 공간이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이름은 우리 정서지만, 알고 보면 이 꽃은 먼 타향에서 이곳으로 와 정착했다. 도시 주변이나 산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풀처럼, 아무데서나 잘 자란다.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건, 누구에게는 평생의 소원이기도 하다. 칠레가 원산지라는데, 언제부터 우리 땅에 살게 된 지는 잘 모르겠다. 갸름한 잎들을 키워내며 곧게 자라다 무더운 여름 이때쯤 노란 꽃을 피운다. 꽃이 지고 없어도 질서정연한 모양으로 난 잎을 보면 분간하기 어렵지는 않다. 사람 손을 잘 타지 않는 곳에서 풀들 점점 자라는 모습을 보면 놀랄 때가 많다.  달맞이꽃도 도시의 크고작은 공원이나 나대지에서 흔히 본다. 어른 무릎 아래 오는 작은 종류를 주로 보지만, 1m가 넘고 줄기도 단단하게 키운 것들도 종종 있다.

여느 2년생 풀처럼 달맞이꽃도 로제트 상태로 겨울을 난다. 로제트란 풀이 겨울을 나는 한 방편이다.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에도 체온을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에너지만을 사용해 버티기 위해 납작 엎드린 상태. 이런 상태로 몇 년씩을 버티는 사람도 많다. 십여 년을 버티고 있는 친구에게 비결을 물었지만, 얼마나 납작하게 엎드리느냐가 관건이란 어려운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다. 로제트는 아주 납작하게 그 작은 잎을 바닥에 쫙 붙인다. 조금이라도 햇빛을 더 받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추운 공기를 피하기 위해서.

로제트는 힘겨운 상태지만 예쁜 모양일 때가 많다. 로제트란 말이 Rose, 장미가 어원이란 것을 생각하면 당연하기도 하다.  특히 달맞이꽃 로제트는 전형적인 장미의 패턴을 가진다. 해서 꽃이 피기 한참 전의 로제트 모양에서부터 달맞이꽃이란 걸 쉽게 알 수 있다. 가운데로 죽 그은 줄과 군데군데 테두리가 뚜렷하지 않은 점들까지 알아본다면 백퍼 달맞이꽃이다.

이번 장마 속에서 본 달맞이꽃. 비가 퍼붓다 말다 한 DMZ 안에서 만났다. 세찬 비에 꽃잎이 젖어 색이 벗겨진 것처럼 투명한 부분이 있다. 그래도 잎은 단정하게 건디고 서, 노린재 한 마리에게 안식처까지 마련해 주었다. 또 하나는 저녁에 피었다 한밤을 지내고 새로 아침을 맞이한 달맞이꽃이다. 마지막, 우리가 아는 달맞이꽃과는 전혀 다른 색 꽃은 낮달맞이꽃. 원예종인데, 이것도 멕시코 남미 태생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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