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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ndol Aug 20. 2017

100일의 여름

구기고 나와도 붉게 100일, 한 여름 그의 스타일

장마가 다 끝났다는데, 어제도 내일도 또 며칠 연이은 비와 예보다.

입추가 지났다고 하지만, 가을비라고 하기에는 이르고.

그럴수록 아직은 여름이라며 더 붉게 타오른다.

여름 석 달, 100일을 붉다고 하여, 100일 홍이라 하였으니.

여름을 감당하겠다며, 책임지고 나선 투사와도 같은 이.


멀리서 보면 나무 하나가 온통 분홍빛.

초록을 배경으로 여름 한철 지치지 않는 배롱나무의 꽃.

빗속의 붉은 꽃은 더 뚜렷하니, 시선도 발길도 그쪽으로 간다.

온통 초록이 있으니 돋보인다. 역시 배경이 중요해!


가볍게 쭈글거리는 꽃잎만 보면 구분도 되지 않지만,

활짝 핀 그 아래를 받치고 있는 6개의 꽃받침이 알려준다.

공처럼 동그란 꽃봉오리에서 이렇게 구기고 나올 일이 무얼까.

굳이 사육신을 이 여섯 개 꽃잎에 매칭 한 옛사람들의 감정도 생각나고.  


6개의 꽃잎을 하나하나 다리미로 쫙 편다면, 이 꽃받침 모양이 될 듯하다.

참 독특한 스타일,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

"피고 또 피고, 이렇게 백일 정도 버티다 접을 거다. 그게 내 스타일이니까"

스타일이 더 중요해!






<40여 개의 수술. 그중 가장자리에 있는 6개의 수술은 특히 길다. 암술은 1개로 길게 나온다.> 어디를 찾아봐도 이렇게 설명하는데, 암술이 어떤 건지를 모르겠다. 꽃잎 안으로 노란 것이 보인다. 이게 수술인 듯하다.

처음에 모여있는 모습은 '뇌'를 닮았다. 예전에는 왜 이걸 못 봤을까? 빗물 때문인지, 엷은 막 같은 것이 둘러싸 딱 그래 보인다. 초록 천지인 여름에 이토록 뚜렷한 꽃(나무)이 드물어서인지, 이때쯤이면 지난여름에 올렸던 배롱나무 기사의 조회가 많다. 그 이유가 궁금하던 차에 다시 붉이 꽃을 유심히 보게 됐다. 지난여름과 또 다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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