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그루 매화나무는 답답해
학교 운동장에 실내체육시설이 들어선다. 수영장을 갖추고, 강당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넓은 시설이다. 무엇보다 비와 눈이 오거나 춥고 더운 날씨에도 수업할 수 있어 참 좋다. 새 건물이 뭔가 좋은 학교 같아 보여 그런지, 부모들도 반긴다. 때문에 교육청 예산을 확보해 학교에 이런 시설을 마련하는 인사들의 능력 지표이기도 하다. 실내체육시설이 들어서면 아이들의 체력을 기르는 데 더 도움이 되고,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수업을 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운동장을 빼앗기는 속상함은 어쩔 수 없다. 운동장이란 뛰고 노는 곳이기도 하지만, 흙을 밟고 노는 기본적인 즐거움과 넓은 공간이 주는 개방감은 실내 운동시설과는 다른 차원이다. 단순히 운동의 효율이나 기능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신체 성장발육도 중요하지만, 건강한 정신이나 자연의 감성을 담보해야 하지 않을까. 자연과 맞닿은 공간인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웃고 떠들 수 있고, 소소한 놀이와 운동회 같은 큰 행사들이 벌어진다. 사람들에게 이런 기억은 추억이 된다. 운동장은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손자 손녀까지 삼대에 걸쳐 공감할 수 있는 드문 공간이요 컨셉이다. 물론 실내 운동장이나 농구장, 수영장에서도 추억이 만들어지고, 미래에 훌륭한 선수가 자라날 텃밭이 되기도 할 테다. 그래도 운동장 한편을 뚝 떼어 보란 듯 멋진 건물이 들어서는 것이 반갑지만은 않다. 쳐다보면 마주하는 넓은 하늘 한 귀퉁이가 접히고, 떨어지는 빗방울과 펄펄 날리는 눈송이 맞으며 뛸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드는 아쉬움 때문에. 호연지기라는 게 항상 거창한 것만은 아니다. 탁 트인 운동장이란 익숙한 풍경에서 자연스레 키울 수 있다. 교실 창 너머 보이는 운동장 밖의 다양한 풍경이 사라지는 건 또 어쩔 건가. 밖으로 보이던 찻길이며 철따라 변하는 가로수의 모습도 가려질 것이다. 운동장을 차지한 체육관의 콘크리트 벽에는 계절이 없다. 학교 운동장에 건물을 지어 올릴수록 아이들은 되레 갇힌다고 하면 과한 생각이라고 하겠지만, 그렇다고 본다.
이런 생각은 나뿐만이 아니다. 우리 동네 초등학교 화단에 사는 나무들도 찬성한다. 특히 매화나무 두 그루는 적극적으로 내 생각을 지지하는 바이다. 겨울이 싹 빠진 이때쯤, 매화나무뿐 아니라 곁에 사는 여러 나무 친구들이 바쁘다. 그중에서도 매화나무가 정성을 놓지 않는 건 향기 때문. 봄바람이 순하게 잘 부는 날이면, 학교 운동장을 질러 맞은편에서까지 향기가 번져간다. 낮에는 잘 알 수 없다. 밤이 되어야 잘 느낄 수 있다. 눈을 통해 수많은 것들에 감각을 빼앗기는 낮보다는, 밤이 되어서야 후각이 적극적으로 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운동장 한편에 큰 건물이 떡하니 들어서니 두 그루 나무는 답답하다. 낮에는 눈길이 막히고, 밤에는 바람길이 막히고. 상상 속에서는 벌써 봄밤 매화나무 앞. 향기에 그만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