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randol Feb 05. 2019

황새 좀 따라 하면 어때서?

붉은머리오목눈이, 뱁새의 개명 

이게 뱁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진다'라고 할 때의 바로 그 뱁새. 언제부터인가 정식 이름을 '붉은머리오목눈이'로 바꿨단다. ‘뱁새라는 좋은 이름이 있는데 구태어 이름을 바꾼 이유는 뭔가’ 하며 분개하는 새 전문가도 봤다. 긴 건 사실이지만 그럭저럭 모양을 잘 묘사한 이름 아닌가? 게다가 뱁새와 황새를 비교한 속담의 낙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아마 붉은머리오목눈이는 개명한 걸 다행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개명한 사람들 사연을 들어 보면 나름 별 안타까움이 다 있더라. 


뱁새를 처음 보고는 좀 놀랐다. 참새 같은 그런 흔한 새 또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새인 줄 알았기 때문에. 근데 망원경 속에서 만난 이 새는 만져보고 싶을 만큼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연분홍빛이 포인트. 다음번 볼 때서야 작은 부리와 긴 꼬리도 눈에 들어왔다. 신기한 일일세. 


붉은머리오목눈이는 곤충을 잡아먹고, 열매나 곡식도 먹는단다. 도감의 설명대로, 갈대밭에서 갈대에 매달린 씨앗 안에 든 무얼 열심히 쪼아 먹는다. 애벌레를 파 먹는 거라는데, 이 모습은 나도 자세히 지켜봤다. 휘청거리는 갈대 줄기에 매달려 있는 모습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지. 색과 질감이 참 잘 어울린다. 


나름 개성 있는 저게 왜 황새와 비교되어 평생 쪽팔려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설마 정말 다리가 찢어진 사례가 있는 건 아닐 테고, 한때는 참새만큼이나 흔한 텃새였던 걸까? 아님 황새가 있는 곳에 흔히 뱁새가 함께 발견되었다는 그런 전력 아님 전설이라도 있는지. 자연에서는 다 사라지고, 사육장 안에서만 존재하는 황새에게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고, 또 다른 새 전문가에게 문의해 봐야겠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진다' "분수(分數)에 맞지 않거나 힘에 겨운 일을 욕심내어하면 오히려 해를 입을 수 있다는 뜻" 인터넷의 어느 속담사전에 올라와 있는 풀이다. 표현의 의도는 그닥 나무랄 것 없지만, '황새 따라 하다가 뒈지는 수가 있다. 그냥 그리 살아라' 기분에 따라 이렇게도 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건 나도 뱁새라서?  그래, 가진 게 없다 보니 별게 다 꼬운 거라고 해두자. 


황새와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사이즈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뱁새는 기껏 13cm 정도. 손이 큰 사람이라면 새를 압박하지 않고 손으로 감싸 쥘 수도 있을 것 같다. 추측하건대 둘은 사는 곳도 환경도 달라, 면식도 없는 사이일 터다. 키 1m 안팎의 황새와는 디폴트가 다른 종류인데 말이지. 또 생각해 봐도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억울하다. 따라 하면 좀 어때서. 요즘 같은 세상에. 


작가의 이전글 서어나무의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