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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ndol Oct 19. 2018

서어나무의 시간

서어나무 군락에 앉아 읽어본 한 쪽, <내 젊은 날의 숲>

서어나무 군락에도 가을이 한가득이다. 그 독특한 줄기의 무늬와 질감과 달리, 서쪽에서부터 왔다는 또는 보였다는 싱겁기 짝이 없는 어원의 이름을 가진 이 나무. 하지만 언제나 이름을 수식하는 한 단어. 극상림. 기나긴 시간의 손길이 최후의 극상림을 만들었다는데, '극상'을 찾아보니 영어로 climax. 절정이 오래가는 법이 없지 않나. 그 상태로 지속될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극상이란 말이 찰나의 순간일 뿐이라, 46억 년의 지구 나이로 보자면 한 이백 년 간다는 극상림의 시간은 찰나일 수 있겠다. 한 몸 안에 삶과 죽음을 다 담고 살아가는 나무에게 극상의 시간이란 또 어떤 의미일까. 한반도 극상림이라는 서어나무 군락에 들어앉아 읽어본다. 김훈의 소설 <내 젊은 날의 숲> 264쪽

봄이 와서, 낮이 길어지고 빛이 강해지면 깨어서 움직이고, 가을에 밤이 길어지고 빛이 약해지면 휴면에 들어가는 것이 나무들의 기본적 생리라고, 수목원에 처음 왔을 때 안요한 실장이 가르쳐주었다. 그때 안실장의 목소리는 느리고 고요해서 밤이 오면 어두워지고 아침이 오면 밝아진다고, 너무나도 분명한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는데, 텅 빈 말로 안실장은 나무의 운명을 부러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탯줄이 아니라 씨앗으로 태어나서 비바람 속에서 빛과 더불어 자고 깨는 나무의 안쪽에 안요한 실장은 말을 걸고 있었다. 가을에, 잎을 떨구는 서어나무를 들여다보니까, 안실장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나무의 씨앗과 풀들의 씨앗이 바람에 퍼져 온 산맥을 그 종족으로 뒤덮어도 그것이 혈연은 아닐 것이었다. 나무들은 각자 따로 따로 살아서 숲을 이룬다는 것을, 가을의 서어나무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숲은 나무와 잎으로 가득 차서 서걱이지만 숲에는 피의 인연이 없다. 가을에, 나는 그걸 알았다. 가을에, 숲은 빛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서서 숲의 먼 안족이 환하다. 잎 지는 가을의 서어나무를 들여다보면서 때때로 아버지와 나의 인연의 끈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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